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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 PD Mar 25. 2018

영상이 토론보다 중요하더냐

#MeToo 운동 긴급 토론회를 다녀와서

2018년 2월 28일


언제부턴가 결혼식에 잘 가지 않는다. 대개 축의금만 보내거나, 식장에 가더라도 당사자랑 인사만 하고 식은 보지 않는 게 일반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식까지 봤던 게 누구 결혼식이었더라,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했던 건 기억난다. 결혼식 영상 찍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들이 식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구나


딱히 그 분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결국 남는 게 사진’이고 ‘남는 게 영상’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면 사진이 예쁘게 나오고 영상이 잘 찍히는 게 중요하지. 그런데 사진 찍고 영상 찍느라 결국 하객들이 신부 신랑 얼굴도 제대로 못보고 당사자들도 그 구도에 맞춰서 100% 몰입하기 보다는 일종의 역할놀이 밖에 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뜬금없이 결혼식 생각이 난 건 월요일에 다녀온 #metoo 긴급 토론회 현장에서였다. 꽤 큰 행사였던 만큼 온갖 방송사에서 카메라 나오고 누가 봐도 정보보고 or 기사 작성 중인 기자들도 많아보였다. 그런데 첫 발제자인 이나영 교수님이 쭉 이야기를 이어가시는 와중에 누군가 갑자기 “@#$@@! 걸려요!”라고 고함을 쳤다. 아마도 누군가가 자기 카메라 프레임에 걸렸나보다. 발제의 흐름은 끊길 수밖에 없었고, 이야기에 귀기울이던 모든 사람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다들 황당해하는 반응이었다(나는 속으로 뭐하는 인간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했다), 주최측은 발제가 종료된 뒤에 굉장히 정중한 태도로 발언할 게 있으면 손을 들어달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카메라에 자신이 원하는 장면을 담아야 하는 게 그 카메라 담당자의 ‘직업정신’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누가 봐도 그 상황에서 몇 초(조용히 다가가서 비키라고 말할 시간) 정도 화면을 못 쓴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었다. 사진기자든 영상기자든 현장에서의 취재 경쟁 때문에 거칠게 일하는 문화가 있다는 건 익히 들었지만 그래도 그 정도 판단은 해야되는 거 아닌가. 나중에라도 주최측에게 사과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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