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곧 부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갈리아니가 한 말이다.
이 말은 칼 맑스가 그의 철학논고에서 노동가치론의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했다.
인간이 곧 부고 부가 곧 인간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란 어떤 사람일까?
부자란 그 사람이 가진 재물의 총량을 뜻한다.
즉 물질만을 뜻한다.
그러나 인간이 곧 부(富)라는 말은 무슨 말인가?
물질이 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큰 역량과 욕망을 가졌는가가 부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정신이 곧 부라는 뜻이다.
그러면 혼란이 일어난다.
부는 외부에서 찾는 물질의 획득기술이 아니라 내부에서 찾는 인간의 정신의 발현이라는 것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런 말이 나오게 되었는가?
16세기 이탈리아의 북부도시들에서 처음으로 부자도시들이 생겨났다.
중세를 거치며 부자도시란 개념이 없었다.
왜냐하면 중세는 철저히 농업중심이고 농업으로 부를 일구는 것은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그 농업의 생산물도 영주와 성직자가 가져가버려 도시에는 빈민이 넘치는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북부도시에서 처음으로 부자인 도시가 생겨난 것이다.
그럼 왜 그들은 부자가 되었는가?
동방과 서방의 통로에 있었기에 이러한 상업을 통한 교역으로 부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들도 처음에는 영주와 성직자의 수탈로 인해 가난한 삶을 살았다.
그러다가 도시인들은 누구든 자신의 재산을 건드리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그 도시인들은 그들의 재산권에 탐을 내는 대주교를 하나 희생시키고 영주와의 전쟁을 거쳐 그들의 도시에서 나오는 생산물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허가를 인근 영주와 성직자들에게 받아낸다.
그 이후 그 도시는 번영에 들어섰다.
그 후 인근의 도시는 가난과 궁핍으로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해도 그 도시 안에서는 비단과 향신료, 도자기 등이 넘쳐나는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이에 그들은 가만히 자신들의 부의 원천이 무엇인가 골똘히 연구했다.
연구결과 자신들의 역량이 인근의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과 다름을 발견한다.
글을 읽을줄 아는 사람이 많았고 악기를 다루는 능력, 외국어를 할 줄 아는 능력 등이 뛰어났고 욕망 또한 넘쳐났다.
결론은 자신의 역량이 인근 도시인들에 비해 훨신 뛰어남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돈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하였고 그 교육으로 인해 그 도시들은 더 부자가 되었다.
그럼 역량을 개발하는 것이 왜 부자인가?
인생을 풍요롭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풍요롭게 산다는 말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돈만 있다면 무슨일을 하겠는가?
남들에게 과시하는 소비나 과시하는 자를 따라 흉내내기 소비를 하게 된다.
비싼 차를 타고 비싼 양주를 퍼 마시고 매번 백화점에서 명품을 소비하는 것이 풍요롭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풍요의 관점을 자신의 욕망에따라 바꾼다면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지식의 관점으로 바꾼다면 인간의 삶의 의미를 찾고 정의로운 사회의 의미를 찾고 토론하는 삶이 풍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의미를 명예, 아름다움, 자녀의 교육, 가족의 사랑, 자신의 취미의 발현, 여행 등으로 바꿔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부자라 하더라도 그는 부자가 아니고 물질적으로 부자가 아니라도 부자인 상태가 된다.
물질적인 삶은 중요하다.
없으면 굶어죽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어느정도 빈곤의 상태를 벗어난다면 물질의 추구보다는 자신의 삶을 살찌우는 것이 더 풍요로운 삶이 아닐까 라는 것이다.
다만 이런 역량개발은 남을 위한 역량개발이어서는 안 된다.
아는 지인 중에 은행을 다니던 사람이 있었다.
은행을 다녔으니 연봉도 많았고 남 부럽지 않게 살았다.
그런데 문제는 역량의 개발은 은행에서 승진에 필요한 역량개발만을 했다는 것이다.
은행에 있을 때 필요한 각종 자격증과 승진시험에 매달렸다.
물론 승진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잘리니까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40대 초반에 지점장까지 했다.
그리고 돈을 번 것만큼 많이 썼다.
골프도 치고 큰 차도 몰고 다니고 해외에서 가족과 동반여행을 하는 중이라는 전화도 하곤 했다.
많은 연봉을 받는데 그 것을 다 쓰고도 모자라 마이너스 통장을 쓴다했다.
그러다 40대 중반에 명퇴를 당했다.
지금은 백수다.
가끔 취업을 하는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오래 다니지 못한다.
다른 경우가 있다.
공기업을 다니는 사람이었는데 처음 발령지가 충남 공주였다.
그 때 자신의 사수가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수의 친구가 일본인이었는데 주말에는 그들을 모시고 충청도 인근을 돌며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답사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 명퇴를 하고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을 가지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그것을 보고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집이 서울 중구인데 주민 중 고궁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재능기부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그길로 신청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지금은 중국어를 배우고 잇다고 한다.
중국인들에게 아름다운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고 싶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중국이나 해외의 문화유산에 대해 틈틈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문화유산을 답사하며 세계를 다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책을 쓸 수도 있고 방송에 출연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역량을 성취와 발전을 통해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과연 부란 재불을 늘리는 과정이고 재물을 늘리는 획득의 기술만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면 얼마나 각박한 삶이 될까?
재물의 부는 우리가 향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미래의 교환가치로서만 벌고 쓰면 되지 않을까?
재물 획득의 기술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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