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세상을 담는 그릇

세상을 담는 그릇


이타적인 학생이 공부를 잘한다.

왜 그럴까?

이타적인 학생은 누가 물어보면 대답해 주기 때문이다.

대답해 준다는 것은 답을 알고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답을 알고 있는 것과 그 과정을 설명 하는 것은 다르다.

그러니 과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는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간에 더 많은 것을 알아낸다.


전교1등에게 전교 2등이 수학문제를 물어봤다.

이렇게 하는 거야 라고 조금만 얘기해줘도 안다.

왜냐하면 막혔던 곳만 풀어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타적이라는 말은 무엇인가?

전교 꼴찌가 물어봐도 알려준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

알려준다.

그런데 전교 꼴찌는 질문부터가 다르다.

황당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다.

황당한 것이란 본질이다.

방정식을 물어보는데 어려운 문제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본질을 물어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X의 제곱근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다.

"왜 저 X옆에는 2가 그렇게 작아? " 대충 이런 질문 말이다.

전교1등은 대답해 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도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화를 내고 면박을 주면 오히려 자신이 성장할 기회를 놓친다.

선생님에게 여쭤봐도 모른다.

결국 위키피디아를 통해 알아낸 것은 250년 전 뉴튼의 제자가 실수로 쓴 것이 가독성이 좋고 구별이 잘 되어서 그렇게 쓰자고 약속한 것이 내려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자신이 하는 일에서 본질을 알려면 자신의 일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설명은 자신의 일과 관련없는 사람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스티븐 사손이라는 사람이 있다.

디지털카메라를 만든 사람이다.

그 사람은 코닥이라는 필름기업에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어떻게 디지털카메라를 만들게 되었나?

자신의 어린 조카가 물었다.

어디에 다니냐고 말이다.

그래서 코닥이라는 곳에 다니고 그곳은 필름을 만든다고 했다.

조카는 필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말문이 막혔다.

필름은 사진을 현상하도록 만든 화학물질인데 이것을 도대체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쉬운 말로 조카에게 설명했다.

" 필름은 그릇이야. 세상에 아름다움을 담는 그릇"


스티븐 사손은 아이에게 설명하며 필름의 본질을 본 것이다.

그런데 그날 이후 자신의 회사에서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여러 그릇들이 보이기 시작햇던 것이다.

매일 보던 카세트테이프를 보고 "아! 이것은 소리를 담는 그릇이구나"

이렇게 말이다.

그렇다면 그릇이 꼭 아날로그일 필요가 있을까?

아니다 컴퓨터의 메모리에 사진을 담을 수도 있겠구나.

그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디지털 카메라다.


세상을 담는 그릇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꾸었을 뿐인데 혁신적인 발상이 떠올랐다.

정주영 회장은 이런 면에 있어서 뛰어난 통찰력이 있는 천재다.

서산 앞바다 방조제 공사를 할 때 유속이 빨라 자갈이나 돌을 쏟아부어도 쓸려내려가 도저히 공사를 마무리 할 수 없었다.

본질은 좁은 통로를 막는 것이다.
통로가 좁아지니 유속은 점점 더 빨라지고 이정도의 길이를 가지고 무거운 것이 무엇이 있을까 했다.

그러다 폐유조선이면 이정도 길이는 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스웨덴에서 폐유조선을 들여와 막고 방조제 공사를 마무리 했다.

결국 본질은 막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시멘트건 아니면 폐유조선이건 말이다.

만약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면 폐유조선보다 더 싸게 물길을 막을 수 있을까?

막는 것이 목표라면 그 공사마무리 구간만큼 길이와 넓이 높이를 맞추어 쓸려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크게 만들어 육상에서 콘크리트 구조물을 제작하여 가지고 와서 구간에 떨어뜨려 물을 막는 것은 어떨까?


디지털 카메라는 처음에는 사진만 찍다가 동영상을 찍도록 바뀌었다.

디지털 카메라의 본질은 사진을 아름답게 찍는 것일까?

아니다.

사진은 찍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이 생에 아름다운 순간을 기록하고 간직하는 것이 목표다.

그것이 디지털일 때 더 유용했다.

그러나 더 깊은 본질이 있다.

나 혼자만 볼 때는 기록하는 것이 본질이다.

그러나 사진을 찍는 목적이 나 혼자만 보는 것일까?

아니다.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남들에게 보여주려면 필름카메라는 한계가 있다.

앨범의 형태로 돌려볼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는 웹과 연결되어 전세계 사람들과 공유된다.

그렇다면 남에게 보여줄 때 사진의 형태가 나을까?

동영상의 형태가 나을까?

동영성의 형태가 낫다.

기록의 본질은 더 생생하게 더 잘 보여주려는것이 목적이니까 말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면 더 좋으니 말이다.

무슨 얘기인가?

웹으로 전세계의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은 공간의 초월이다.

시간의 초월은 무엇인가?

과거, 현재, 미래를 잇는 저장의 형태가 될 것이다.

선사시대라는 말이 있다.

역사가 없었던 시절이라는 뜻이다.

선사시대 이후를 뭐라고 하나?

역사시대라고 한다.

역사시대는 무엇이 있는 시대인가?

기록이 있는 시대다.

기록은 무엇으로 하는가?

문자와 그림으로 한다.

문자와 그림의 형태로 역사가 기록되어 왔다.

그런데 문자와 그림은 그 시대를 생생하게 옳바로 보여줄 수 없다.

역사는 해석의 여지가 끼어든다.

그래서 E. H. Carr 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했다.

그런데 만약 생생하게 기록된 사진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시대에 대해 후손이 더 잘 알 수 있지 않았을까?

만약 동영상이 있었다면 어떨까?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그러니 세상을 담는 현존하는 최고의 그릇은 동영상이다.

그러나 동영상에 한계가 있다.

동영상은 2차원적인 평면에 기록된다.

3차원적인 공간에 기록되는 것은 더 발전된 의미의 기록이다.

그것은 AR, VR의 형태가 될 것이다.

AR, VR의 형태는 무엇인가?

가상현실은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느낌을 전달하는데 동영상의 형태보다 더 발전된 형태의 그릇이다.

그래도 AR, VR은 한계가 있다.

2차원이라는 것이다.

그것보다 더 실감이 나려면 홀로그램의 형태가 아닐까?

그렇다. 

홀로그램은 세상을 담는 그릇의 더 발전된 형태이다.

그러나 홀로그램은 3차원이기 때문이다.

홀로그램보다 더 발전된 형태는 무엇일까?

3차원인데 만질 수 없는 것인 홀로그램보다 실제 만질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형태가 아닐까?

이것은 시각을 떠나 감각까지 느낄 수 있는 세상을 담는 그릇의 형태다.

감각이란 무엇일까?

오감이다.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미각이다.

그럼 이것을 느끼는 것은 실제 만져서 느끼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이것은 뇌의 전기신호다.

즉 뇌에 자극을 주면 마치 만져지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 촉각이다.

앞으로의 세상을 담는 그릇은 뇌에 전기자극을 주어 오감을 느끼고 공간을 느끼는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세상을 담는 그릇은 더 사실과 가깝도록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은 사람들이 더 행복해지고 좋아하고 더 부가가치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세상을 담는 그릇은 진화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업은 성공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업을 알아보는 사람도 부자가 될 것이다.


JD 부자연구소
소장 조던
http://cafe.daum.net/jordan777

매거진의 이전글 재테크 하면서 이것저것 다 귀찮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