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쉽게, 어렵지 않게 돌봄이 필요 없는 집을 짓는 법
나는 2018년에 창업했다.
시니어가 집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걸 아이템으로 잡았다.
더 나아가서 노후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나 제품을 소개하고 연결해 주는 플랫폼을 개발했다.
마침 건축공학을 전공했고, 장애인편의시설 실무경험도 있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의 연이은 죽음을 경험하면서 이어진 선한 의도로 시작된 창업이었고 다들 좋은 아이디어라고 해서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그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기가 늙어 간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다치고 죽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뭔가 집을 고쳐서 예방한다는 개념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첫 번째로 실패했다.
하지만 그 실패는 경험이었다.
나는 포기했지만 중단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효테리어의 방향이 분명해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집을 고친다는 말을 좋아한다.
사람들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건설경기는 좋지 않다고 하지만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고 집을 리모델링하고 인테리어로 예쁘게 꾸미는 산업은 점점 규모가 커져간다.
하지만 내게 집을 고친다는 의미는 인테리어 잡지에서 말하는 ‘예쁜 집’으로 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지금 상표출원이 진행 중인 효테리어, 내가 만든 이 말에는 훨씬 더 실질적이고 절실한 의미가 담겨 있다.
효테리어는 ‘효(孝)’와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다.
누군가를 돌보기 전에 그들의 존엄을 지켜주는 구조를 만드는 일,
그게 효테리어의 본질이다.
우리는 부모님의 노후를 준비한다고 하면 보험, 연금, 건강검진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분들이 매일 살아가는 집의 구조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오랫동안 현장에서 노인 가구를 방문하며 느꼈다.
“위험은 병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시작된다.”
넘어져 다치는 낙상 사고,
욕실에서 미끄러지는 부상,
전기나 가스의 오작동.
오염된 공간과 방치된 가구들
이 모든 건 복잡한 기술이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그래서 나는 현장에서 만나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을, 공간을 관찰한다.
내가 생각하는 효테리어는 공간을 바꿔서 사고를 예방하고 자립성을 유지하게 하는 디자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돌봄이 필요 없는 집을 만드는 일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말이다.
효테리어는 돈이 많이 드는 리모델링이 아니다.
생활 습관과 시야를 바꾸는 일부터 시작된다.
아래는 내가 제안하는 ‘효테리어 공간별 빠른 진단’이다.
턱이 있거나 높지는 않은가?
신발을 신을 때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는가? 또는 잡을 수 있는 손잡이가 있는가?
조명이 자동으로 켜지는가?
불필요한 신발과 물건들로 어지럽지는 않은가?
소파와 테이블의 간격이 너무 좁지는 않은가?(일어설 때 부딪힐 위험)
TV 전선이 바닥에 어지럽게 놓여 있지 않은가?
자주 사용하는 리모컨이나 물건이 손 닿는 곳에 있는가?
소파에서 일어날 때 신체를 지지하거나 붙잡을 수 있는 게 있는가?
집의 공간이 한눈에 보이는가?(사각지대 없애기)
바닥이나 소파테이블 등에 정리정돈이 되어 있는가?
바닥이 미끄럽지는 않은가? (욕실 실내화가 미끄럽진 않은가?)
욕실 입구 바닥에 마른 수건(미끄러질 위험)이 있는가?
좌변기 옆에 손잡이가 있는가?
조명이 충분히 밝은가?
앉아서 샤워를 한다면 샤워기를 걸어 둘 곳이 있는가?
싱크대 높이가 키에 맞는가?
자주 쓰는 조리도구가 너무 높거나 낮게 있지 않은가?
조리대, 싱크대 위 조명이 충분한가?
가스안전타이머가 있는가?
침대 높이가 너무 높거나 낮지는 않은가?
침대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다면 안전가드가 있는가?
누운 상태에서 조명을 조작할 수 있는가? (취침등이나 센서등이 있는가?)
이불, 옷장, 가전 등 조작위치가 모두 손 닿는 범위에 있는가?
밤에 화장실 갈 때 불을 켤 수 있는가?
옷을 입고 벗을 때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는가?(옷을 갈아입다가 낙상을 당하는 경우가 많음)
손이 닿기 어려운 곳에 커튼줄이 있지 않은가?
창문을 열고 닫을 때 무리한 힘이 필요한가?
환기를 자주 할 수 있도록 조작이 편리한가?
커튼의 위생상태는 양호한가?
방충망이 설치되어 있는가?
방한대비가 되어 있는가?
집 안의 전체 밝기가 일정한가?
그림자가 생기는 구간이 많은가?
스위치가 조작 가능한 위치에 있는가?(또는 리모컨으로 조작가능한가?)
밤 중에 이동해야 하는 공간에 센서등이 설치되어 있는가?
실내에서도 외부 공기를 마시면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여유공간이 있는가?
불필요한 짐이 방치되어 있지는 않은가?
세탁기나 건조대가 있다면 신체에 무리하게 설치되어 있지는 않은가?
물을 쓰는 공간이라면 미끄럼 방지는 잘 되어 있는가?
이 집은 나를 편안하게 하는가?
온전히 독립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불필요한 물건이 너무 많아 시야를 어지럽히거나 이동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가?
이외에도 더욱 많은 관찰거리들이 있지만 간단히 소개해 보았다.
‘고치는 일’은 결국 ‘살리는 일’
나는 이 모든 것을 ‘수리(修理)’가 아니라 ‘회복(回復)’이라고 부른다.
집을 고치면, 그 안에 사는 사람의 마음도 고쳐진다.
무너진 자존감이 다시 서고,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용기가 생긴다.
효테리어의 목적은 노인을 위한 집을 만드는 게 아니라,
모두를 위한 집을 만드는 것이다.
아이, 부모, 나이 든 나 — 모두가 편히 살 수 있는 공간.
그게 진짜 유니버설디자인이고,
그 철학이 결국 ‘내 집에서 끝까지’의 의미다.
내가 창업을 하고 제일 처음 맡은 일은 90세가 넘은 아버지의 집을 고쳐달라는 의뢰였다.
50평쯤 되는 아파트에서 80대 어머니와 90대 아버지가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는데 두 분 다 노화로 거동이 불편하시고 특히 아버지는 파킨슨으로 몸의 떨림이 심하다고 했다.
그 댁을 방문해서 내가 내린 설루션은 안방 침대를 이동시켜서 안방 내 화장실과 거리를 최소화하고
화장실을 가는 길목에 안전손잡이를 달고
안방 내 화장실에 있는 쓰지 않는 욕조를 제거하고
대신 샤워공간을 만들되 욕실 내 모든 벽에 안전손잡이를 달았다.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우리가 공사를 하는 동안 큰 표정변화 없이 앉아 있던 두 내외분의 밝은 웃음이었다.
손잡이를 잡고 평소보다 빠르게 이리 저리 걸어다니는 모습을 보며 고객이 했던 말도 기억난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 날아다니시네"
이후에 그 일을 맡긴 고객의 감사 문자는 지금도 내게 초심을 잃지 않게 한다.
"달라진 발걸음에 평생 한 효도를 다 한 것 같다고, 얼마를 사시던 너무 잘해드린 일이라고."
몇 년이 지나서 우리가 큰 박람회에 참가하게 되었을 때 나는 그 고객에게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노라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때 달아드린 안전손잡이 덕분에 어르신은 여전히 건강하게 지내시고 있다고, 감사하다며 건승을 빈다는 응원과 격려가 더없이 따뜻했다.
그 첫 일이 나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별로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
일을 해내기에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꼭 이 일을 하는 것은
누군가의 일상을 조금 더 편하게 해주는 것,
넘어지지 않게 손잡이를 달아주는 것,
그게 곧 내가 생각하는 자립적인 노후 문화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효란 거창한 게 아니다.
효테리어는 마음을 짓는 일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결국, 집의 형태로 완성된다.
내 부모님을 위해서
아니, 어쩌면 나 자신을 위해서 나는 내 집에서 끝까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