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설디자인 적용, 우리 집에도 가능한가?
‘나 신념을 잊지 않기 위해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회사를 유지하기위한 무거운 마음으로도.
지난 글들에서 밝혔듯이, 선한 의도만으로 시작한 사업은 내생각처럼 활활 잘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거 우리집에 안단다" 하면서 손잡이와 장비들을 거의 내 쫓기다시피 쫓겨날 때도 있었고,
시니어비즈니스 업계에서 소위 잘 나가는 대표에게 조언을 빙자해 수치를 당할만큼 무시당할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중단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고령친화주거환경개선 사업같은 일들을 참여하면서 안타까운 일들을 너무나 자주 보고 있기때문이다.
사실, 모든 사업의 목적에는 당연히 '이익'이어야한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돈'이 끼어드는 순간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일이 많다.
이 일도 마찬가지라서 나는 누군가가, 또는 국가가 무언가를 해주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보다는 당장 불편한 것을 고쳐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어쩌면 더 빠르고 더 효과적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돌봄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에 들어온 건 아주 개인적인 경험에서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며 처음으로 ‘집이 사람의 생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알게 되었고,
그 이후 내 일과 생각의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집과 인간, 그리고 존엄을 향하게 되었다.
내가 그랬듯이, 사실 내가 이렇게 아무리 중요하다 떠들어대도 바로 내 옆의 누군가가. 내 부모가, 내 할머니할아버지가 당하는 일이 아니라면 공감을 할 수가 없다.
우리 엄마가 넘어져봐야,
내 할머니를 보살펴봐야, 그제서야 부랴부랴 그때 누군가가 이렇게 하라고 했었는데 하는거다.
『내 집에서 끝까지』를 연재하며,
나는 그동안 미뤄왔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가족의 이야기, 돌봄의 현실, 그리고 나의 일.
그건 단순히 시니어 인테리어를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철학’이 되는지를,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방향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기록하는 과정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 여러 번 울기도 했다.
가족을 잃었던 슬픔,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고단함,
그리고 여전히 바뀌지 않은 사회 구조를 마주할 때의 답답함.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켠이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결국에는 나 자신을 위한 일이구나를 깨닫고는 혹시 너무 이기적인 것은 아닌가 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이 글이 ‘가까운 사람, 그리고 나 자신의 미래를 떠올리게 하는 글’이 되었으면 했다.
이제 『내 집에서 끝까지』라는 제목은
나 혼자의 문장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하나의 약속이 되었다.
내가 창업을 하고 우리 회사의 슬로건을 처음 정할때의 그 마음처럼, 많은 사람들이 내 집에서 끝까지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나는 여전히 현장에서, 또 일상에서,
‘살기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여전히 결론은 같다.
살기 좋은 집이란, 나이 들어도 머물고 싶은 집이다.
앞으로는 이곳 브런치에서
조금 더 생활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풀어내려 한다.
유니버설디자인을 우리 집에 적용하는 작은 팁들,
비용이 많이 들지 않아도 삶을 편하게 만드는 방법들,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효테리어의 실천’들 말이다.
나는 여전히 전문가라기보다 배우는 사람이다.
다만, 조금 먼저 바라보고 한걸음 먼저 걸었기에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공간과 사람’을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이 글들을 끝까지 읽어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나도 내 집에서 끝까지 살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다면,
이 긴 여정은 이미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내가 아침에 눈 뜬 작은 공간 하나를 바라본다.
비울 것이 있는지, 낡은 곳은 없는지, 계절의 변화로 달라진 곳은 없는지.
그 모든 걸 고쳐가는 일 속에서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있다.
집은 그렇게,
우리를 닮아가며 함께 늙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