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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동이 Jan 27. 2021

엄마가 앉던 자리, 내가 앉다

  초하룻날이면 엄마가 쌀 한 말을 머리에 이고 절에 다녔다. 은행나무가 유명한 용문사라는 절이다. 절에 가면, 절 입구를 지키는 신장들이 무섭기도 하고, 화려한 단청들도 음산해 나는 관광 갈 때만 들리곤 했다. 

오십 중반이 돼서야 용궁사란 절에 다니고 있다. 괴기스러운 신장들은 없지만 천삼백 년 된 느티나무가 지키고 서있는 천년사찰이다.

용궁사 올라가는 길은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어우러져 청량하고, 새들의 지저귐은 나를 맑은 사람으로 만든다. 그리고 오롯이 혼자임을 느끼며 걷는 길은, 조금은 가파른 길이기도 하다.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은 간이식 건물로 지어져 있는데 지금은 대웅전을 새로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나는 거기에 소원 적은 기와 두 장을 불사하고 왔다.

절 입구 가까운 곳엔 용왕각이 있는데 바다에서 용신을 모셔와 모신 곳이란다. 나는 용띠라 소원을 잘 들어줄 것 같은 마음에 용왕신께 향을 피우고 절을 드렸다.

가장 오래된 관음전에 관음보살님은 한 손에 약병을 들고 계신다. “한 가지 병은 꼭 고쳐주시는 분”이라고 법사님이 얘기해 주었다. 몸이 아프거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관음전에서 기도하면 좋을 듯하다.

흥선 대원군이 쓴 ‘용궁사’라는 현판이 달린 요사체에는 그가 피신해 숨어 있던 방이 조그맣게 딸려 있다. 그 방을 쓰던 스님은,“피신 온 흥선 대원군이 발각될까 두려운 마음에 창문을 만들지 않아 창문이 없는 방.”이라고 말했다. 그 방에 기거하던 스님은 다른 절로 갔는지,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요사체는 앞 가운데 양쪽에 붉고 굵은 두 개의 기둥이 있는데, 스님은 이 기둥이 싸리나무로 만든 기둥이라 했다. 이렇게 기둥으로 쓸 만큼 굵고 튼튼한 싸리나무를 본 적이 없는 나는 믿어야 했지만, 얕은 마음에 ‘정말 싸리나무일까? 전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종도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싸리나무지만, 볼펜 굵기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어릴 적 아버지는 아침마다 마당을 쓸곤 했는데, 말린 싸리나무를 여러 개 묶어 만든 것이었다. 싸리나무 하나가 붓글씨 쓰는 붓 정도 굵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관음전 뒤편으로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원 바위가 있다.

넓적한 바위 위에 중간 크기의 돌이 두 개 놓여 있다. 불전함에 돈을 넣고, 이름과 생년월일, 소원을 빌고 절을 올린다. 그런 다음 두 개의 돌 중 하나를 손으로 잡고 시계방향으로 돌린다. 어딘가 걸린 듯 뻑뻑하게 돌아가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가볍게 빙글빙글 돌아가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재미 삼아 가끔씩 해보곤 하는데, 용궁사에 오는 분들도, 한 번씩 해보면 재밌는 얘기 거리가 생길 것이다. 엄마가 천 년이 넘은 은행나무가 서 있는 용문사에서 부처님 전에 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셨듯이 딸인 나 또한 천 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서 있는 영종도 용궁사에서 가족을 위해서 기도한다. 마음도 닦는 쉼터인 용궁사가 있어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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