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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ak Sep 20. 2022

"화양연화(花樣年華)" 왕가위, 2000

"In The Mood For Love" Wong Karwa, 2000

사랑에는 셀 수 없는 수많은 모양이 있다. 그 중에서도 남녀 간의 사랑은 나에게 있어서 가장 경험치가 적은 일이다. 그래서인진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남자와 여자가 호감을 가지고 연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일이 더욱 어렵게 다가온다. 감정을 쫓아가기에는 책임져야할 것이 늘었고 이성을 쫒아가기에는 마음이 버겁다. 영화제목처럼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을 온전히 누리기엔 현실과 마음의 여유가 빠듯하다.

두 주인공은 이미 사랑의 과정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평생의 동반자와 함께하는 삶을 꿈꿨지만 어느새 외로움과 고달픔만 남았다. 이 세상에서 나만 사랑해줄 거라고 확신했고 나 또한 그러리라고 약속하며 사랑의 증표까지 나눈 이가 내가 아닌 사람과 입 맞추고 사랑을 속삭인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실감과 절망을 안겨주게 될까. 내 옆에 있어야할 사람이 없고 내 옆에 있으면 안되는 사람이 같은 처지에서 서로를 위로한다. 한때 자신들이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는 사람을 구석에 박아둔 채 서서히 스며든다. 하지만 상처를 준 그들과는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아이러니한 도덕적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그들은 결국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이들이 한 행동은 선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밀회라고 하기에도, 그렇다고 응원을 해주기에도 애매하다. 옅게 생각하면 누군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오롯하게 집중했던 시간은 호텔에서 함께 무협소설을 쓴 장면 뿐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모든 시간 그 자체였다고 말하고 싶다. 서로를 위하고 챙겨주면서 가치를 공유하는, 이 둘이 만든 사랑의 모양 하나하나가 세상에 널리고 널린 불륜 스캔들이라고 단정짓기엔 아름답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파서 아름다웠고 그래서 슬펐다.



화양연화는 음지의 시선에서 주인공들의 감정과 표정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다른 인물의 등장은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는 둘의 마음을 조명하기 위한 도구로만 활용된다. 처음에는 컷전환이 기존에 보던 친절한 구성과는 다르게 너무 절제된 나머지 끊어지는 느낌을 받아 당혹스러운 면이 살짝 있었지만 중반부로 갈수록 사건과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인물을 들여다보는 것에 초집중해서 감상했다.

솔직히 나는 중국의 빨간 분위기와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 중에 한명이다. 특히 중국어 톤은 거슬리게 들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국영화는 잘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장만옥과 양조위의 연기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들의 마음이 읽히게 되는 것을 오랜만에 느꼈다. 특히, 양조위의 아주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다음 씬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찾는 맛이 있었고 내가 이들의 행동을 보면서 대부분 이해되고 동화되었다는 것이 가장 큰 희열이었다. ‘연기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속을 채운 눈빛과 호흡은 이런 거구나’를 후반부에서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두고두고 뜯어먹고 싶은 영화를 찾았다. 더 많은 감상을 이 글 뒤에 계속 붙여두고 싶다. 아프겠지만, 두 주인공이 끝내 사랑을 전하지 못한 마음을 한켠에 남겨놓고 평생을 되뇌이며 꺼내먹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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