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Michael Haneke, 2012
종종 길을 걷다보면 백발의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가는 모습이 보이곤 한다. 내 고향 경상도에선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라 두 분의 끈끈한 애정이 퍽 새롭고 부럽다. 문득 나도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고 느낀다. 남자친구와의 미래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조르주와 안느가 딱 그런 사랑을 한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진짜 사랑같은 사랑을 한다. 그들은 어디서나 함께 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 아침 식사, 제자의 공연, 클래식을 들으며 독서를 즐기는 하루의 마지막 시간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른다. 그들의 깊고 진하게 숙성된 사랑의 향기가 내 마음에 은은하게 스며든다.
행복도 잠시, 안느의 병은 빠르게 악화된다. 이에 질세라 조르주는 평생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그보다 더 그녀를 지지하고 아낌없이 보살피며 사랑한다. 안느도 그를 안심시키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기 위해 노력한다. 육신의 병과 죽음이 주는 두려움 앞에서 부부는 본인의 몫을 충실히 이행하고 표현의 인색함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집을 방문한 이들에게 부부로서, 부모로서, 스승으로서, 고용자로서의 역할을 할 뿐 고통에 대해 내색하지 않는다.
그러나 초연한 태도를 취할수록 모든 방문자들은 잔잔한 연못에 무심코 돌을 던지듯 그들의 마음을 후벼판다. 이내 평정을 찾는 듯 보이지만, 부부를 생각해서 꺼낸 말, 감정, 행동은 이 내 큰 물결이 되어 그들을 조금씩 죽게 만든다. 나를 후벼판 것도 아닌데 가슴이 미어졌다. 영화를 떠올리며 글을 써내려가는 지금도 아프다.
안느의 뺨을 내려치고 사과하는 때가 가장 아팠다. 뺨을 맞은 안느가 잠시 정신을 되찾고 물을 마시는 순간도.
인간의 사랑은 열렬함으로 시작해 인내와 분노, 용서를 반복하며 부드러워진다. 인간의 이면을 다루기 좋아하는 미카엘 하네케가 말하고 싶은 사랑이 받아들여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순간에 입을 틀어막을 정도로 놀라긴 했지만 받아들여졌다. 나 같아도 그렇게 했을 거니까.
무뎌진 감각이지만 매우 정성스러운 손길로 그녀를 닮은 어여쁜 꽃송이를 하나씩 하나씩 씻는다. 제일 예쁜 옷을 꺼내 갈아입힌다. 마치 그녀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수호천사처럼. 남겨질 또 다른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아주 사소한 것까지 빽빽하게 편지를 쓴다. 떠날 준비를 마친 그는 부엌의 작은 창고방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진다.
아무르, 사랑. 인간에게 사랑을 빼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들이 죽었을까? 그들은 이생의 모든 순간 끝까지 사랑하고 있기에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죽음의 문턱을 지나 우리가 알 수 없는 다른 공간에서 여전히 사랑하며 살아갈 두 영혼을 추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