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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바다에 누워 Jun 18. 2021

“사는 데 철학은 없고요.”

문래동 기획회의 01.



자리에 앉자마자 생선구이를 주문했다. 그날은 삼치가 물이 좋다는 사장님 말에 딱히 고민을 할 이유도 없었다. 사장님은 오이와 고추장을 먼저 내어주셨다. 소주를 마실 거긴 했는데, 무슨 소주를 좋아할지 몰라 잠시 냉장고를 보며 고민을 했었다. 역시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 않는 진로가 낫겠다 싶었다. 자연스럽게 진로 한 병을 꺼냈고, 주방 쪽으로 가 소주잔 두 개를가져와 자리에 앉았다. 차가운 파란색 소주병을 보니 갈증이 확 올라오는 것 같았다. 오이를 먼저 먹었다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아 일부러 고추장은 찍지 않았다. 입에 오이를 넣고 아삭아삭 씹어 먹고 있는데 가게 앞에 공유 킥보드를 막 주차하고 J가 들어왔다.


J는 마스크를 벗으며 내게 인사했고, 오이를 마저 씹어 삼키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J와 술자리에서 만나는 건 처음이라 영 어색했다, 만 오래 가진 않았다. J는 포장마차 안을 빙 둘러보더니 내게 말했다.


“여기 분위기랑 원피스가 되게 자연스럽네요.”


겨우 두 번째 만남에 그런 얘길 들어 당황할 법도, 황당할 법도 했으나 전혀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크게 웃었다. J는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에 올려놓은 소주의 뚜껑을 열고 빠르게 잔을 채웠다.


“킥보드 타고 오신 거예요?”

“그쵸.”

“마음이 급하셨나봐요.”


덤덤하고 담담한 그의 말투에 다시 크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잔을 부딪치고, 입에 차가운 소주를 모두 털어 넣었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소주 뒤로 남은 잔향은 오이를 고추장에 푹 찍어 함께 밀어냈다. 안주는 생선구이를 시켰어요, 오늘은 삼치가 물이 좋대요. 라고 이야기하자 J가 말했다.


“제가 강원도 사람인 거 말씀드렸었나, 삼척에서 나고 잠깐 자랐어요.”

“생선 무지 드셨겠네요?”


J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어릴 땐 생선이 싫었다고 했다. 동네 나가면 오징어에, 생선을 말리고 있는 그 모습이 싫었고, 냄새도 싫었다고 하기에 아차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방 쪽을 바라보는데 사장님은 무척 열정적으로 삼치를 굽고 계셨다.


“지금은 좋아해요, 생선.”

“그 말을 먼저 좀 하시지. 생선 혼자 다 먹어야 하는 줄 알고 잠깐 마음 졸였잖아요.”


오이에 소주 한 잔을 더 털어놓으니 두툼한 삼치가 테이블에 놓였다. J는 젓가락으로 섬세하게 삼치 살을 부드럽게 가르더니 내 접시 위에 살 한 점을 올려주었다. 따뜻하고 도톰한 생선살 한 점으로 소주 두 잔을 비웠다. 그 잔을 털고, 오이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데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어릴 때, 사당동에 살았었어요. 그 동네도 개발되기 전이라 골목 지나서 시장길로 조금만 나가면 그 왜 있잖아요, 빨간색 포장마차. 그게 미도파 백화점 근처로 몇 곳 있었거든요. 종종 아빠 퇴근 시간 맞춰서 엄마랑 기다렸다가 동생이랑 넷이 포장마차 들어가서 우동 먹고 그랬어요. 아빠는 꼭 소주 한 병씩 드셨구. 그 왜 있죠, 빨간 두꺼비. 우동 국물에 술 마시는 그 모습이 싫어서 그 쬐끄만 게 엄청 잔소리 했었어요. 근데 이젠 제가 그러고 있네요. 겨우 오이랑 고추장인데, 이게 뭐 그렇게 맛있다구.”


“좋아할 수도 있죠, 오이랑 고추장.”


J는 덤덤하고, 자연스럽게 그 말을 받아주었다.


“이게 뭔데, 슬프네요 갑자기?”

“아련하게 얘기했으니까.”

“아련한 게 슬픈 거예요?”

“슬픈 거죠. 그러니까 술을 마시는 거지.”


대화에는 빈틈이랄 게 없었다. 바람이 새어 나가는 틈 하나도 없이,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철학과를 졸업했다는 J는 어쩌면,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 그 순간엔.


“왜 인생은 슬픈 거예요? 아니다, 사람은 왜 슬픈 거예요?”


J는 잠시 한 곳을 응시하더니 이내 막잔을 털어넣곤 말했다.


“그 얘기 시작하면 아마 오늘 사장님 문 못 닫을 걸요? 아니다, 쫓겨나겠다. 지하철역에 쭈구리고 앉아서 날 밝을 때까지 얘기 들어야 할지도 몰라요.”


가만히 테이블을 보니 어느새 빈 소주 세 병이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갑시다.”     


더 슬퍼지기 싫을 땐, 도망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평강 | 삼십 둘, 취미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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