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쪼바다에 누워 Jun 18. 2021

나의 소우주

문래동 기획회의 03.


Dear. J


방과 후 그룹 영어 시간이었어, 그 당시에 그런 게 흔하진 않았는데 동네 친구들끼리 모여서 영어 그룹 과외를 받았었거든. 교재를 덮고 그때 친구들이 나를 모두 동시에 쳐다보더라고. 그날은 내가 이사를 정해놓고 마지막 수업이 있었던 날이었어. 그 까맣게 어린 열한 살 짜리들이 헤어지는 거에 대해서 뭐 얼마나 알겠어. 그냥, 그 첫 이별 자체가 어색하고 생경할 뿐이었겠지. 나는 그 순간에도 되게 씩씩한 여장부였어.


“서울에서 별로 안 멀대. 사당동 자주 놀러 올게.”


마치 동작구 사당동의 지박령이 될 것처럼.


초등학교에 들어가 뭔가 제대로 된 사회 환경과 인간관계라는 게 조금씩 선명해지는 나이 즈음인데 그때 나는 뭘 제대로 알긴 알았던 걸까? 단지 어색함이 불편하고 싫었던 걸까. 동네 친구들과 그렇게 웃으며 나는 친구의 집을 걸어 나왔어. 아직도 기억이 선명해. 그 친구들 사이에서 나를 좋아하던 준규라는 남자 아이가 있었는데 내가 친구 집 앞에서 운동화를 고쳐 신는데 준규가 내게 빼빼로 과자와 왜 그 있잖아, 종이접기로 동서남북하는 거. 그 종이를 휙-하니 던지듯 건네더라고. 그 종이에는 동서남북 온통 자기 집 전화번호와 주소가 적혀 있었어. 그걸 보고 그 자리에서 울었던 기억이 나. 아니, 그 기억이 너무 선명해. 그 당시, 서울을 떠나 이름 모를 지역으로 간다는 건 정말 지구에서 먼 목성, 아니 명왕성으로 이사를 가는 기분이었으니까.


‘경기도 파주시 금촌동’이라는 곳에 아빠는 가게를 얻었어. 십 년 정도를 다니던 엘지전자 서비스센터를 그만두고 처음 시작해 본 자영업이었던 거야. 우리 네 식구는 그 작은 가게 안쪽에 1.5룸 짜리 방에서 함께 살았어. 우리가 티비에서 봤던 동네슈퍼에 있음직한 그런 형태의 방있잖아, 가겟방. 방을 나오면 가게가 있는 구조였고 밥을 먹다가도 손님이 오면 그대로 나가 손님을 맞이하고, 아빠는 가게에서 일을 마치고 문만 열면 5초 컷 퇴근이었던 셈이지. 그 어린 열 한 살 짜리는 서울을 떠나온 것 따윈 금세 잊고 그 작은 행복이 아주 큰 우주처럼 느껴졌어. 그땐 그랬어.


금촌초등학교 라는 곳으로 전학을 하는 첫날, 아빠의 트럭을 타고 엄마와 함께 정문 앞에 내렸어. 흰색 봉고 프런티어 4륜 구동짜리가 정문 앞에 딱 서는 순간부터 나는 아마 그 초등학생들의 이방인이 되었던 게 틀림없어.


새 담임 선생님은 친구들에게 나를 ‘서울에서 온’이라는 지역적 수식어를 붙이며 친구들의 관심을 끌더라고. 그 뒤로 나는 반에서 ‘서울 친구’가 되었어. 서울 친구인 나는 욕이라고는 ‘바보’, ‘멍청이’가 전부였는데 전학 간 첫날부터 엄청 묵직한 쇼크를 먹었어. 말 끝마다 ‘시발’이라는 욕을 친구들이 달고 살더라고. 그게 어찌나 충격적이고 신선했는지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내 말 끝에 ‘시발’이 붙은 채 뱉어지더라. 그 당시 우리 가족들의 표정을 난 잊지 못해. 어쩌면 우리 엄마는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뒷목을 잡았을 지도 몰라.


저녁이면 나는 준규에게 편지를 썼어. 동서남북 4곳에 온통 적혀 있던 준규의 집 주소로 손편지를 써서 보냈어. 편지 봉투 왼쪽 상단에 ‘경기도’로 시작하는 우리 집 주소와 준규의 ‘서울특별시’로 시작되는 주소가 그땐 왜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을까.


우리 엄마는 그래도 서울에서 지낼 때 주말마다 항상 함께 했던, 광화문 교보문고를 갔다가 맥도날드에서 해피밀 세트 먹는 즐거움을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느끼게 해주었어. 사실 그 당시 파주에서 서울을 나가려면 빨간색 광역버스를 타고 통일로를 지나, 1시간 30분 정도를 달렸어야 했거든. 그 정도로 내가 살던 경기도와 서울의 거리는 물리적으로도 엄청났던 거야. 그런데 그럼에도 아빠를, 엄마를 원망했던 적은 없어. 서울을 떠나오고, 서울 친구들과 헤어지게 된 아쉬움 정도는 있었지만 나는 사실 그 작은 가겟방의 온기가 너무 좋았거든. 작고, 비좁고, 허름하고, 볼품없으면 어때. 나한텐 둘도 없는 따뜻한 우주였던 걸.





평강 | 삼십 둘, 취미는 사랑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우리 아포 갈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