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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바다에 누워 Jun 18. 2021

서울: 내가 선택한 모든 게 있는 곳

문래동 기획회의 04.

'인서울'하여 살아남은 지방사람이 쓰는 서울, 서울, 서울




중학교 동창 보미가 임신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가끔 생각해보면 신기하지. 그래도 너랑 나는 둘다 상경해서 자리 잡았고, 결혼도 하고 여기에 터전을 잡았잖아. 심지어 네 아이는 고향이 서울이야! 와, 보미야. 이로써 우리 2세들은 '서울 사람'이야."


천안시 신부동 명문 독서실 문 앞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휘영청 밝은 달을 보며 "넌 뭐가 하고 싶어?" 같은 걸 서로 물어보던 여고생 둘은 꿈꾸던 서울에 입성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함께 상경한 몇몇 친구들이 다시 천안으로 돌아가거나 해외로 나가는 동안 묵묵히 서울살이를 견뎌냈다. 그렇게 30대가 되어 직장인으로서도 어엿하게 자리를 잡고, 결혼도 하여 서울에서 가정을 꾸렸다. 둘 중 하나는 벌써 엄마가 되었다. 


날 때부터 '서울 사람'인 사람들이 들으면 우스울 수도 있다. 그게 뭐라고 자화자찬할 일이냐면서. 하지만 '서울이 아닌 곳'에서 나고 자라 대입 수험생이 되는 동시에 '인서울'이 꿈이 된 지방 태생들은 이 별것 아닌 우리만의 '업적'이 담은 유구한 의미를 아마 잘 알 것이다.


서울살이 14년째


가까이서 보면 게을렀지만 멀리서 보면 참 아둥바둥 열심히도 살았다. 20대 때는 전반적으로 엄마 돈 까먹으면서 편히 살았지만(지금은 아닌 것처럼 말하지만 과연...), 내 나름대로 척박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안쓰럽기도 하다.

일도, 사랑도 어느 것 하나 손에 잡히지 않던 때였다. 모든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우습게 봤던 건 아닌데, 그래도 너무했다. 하긴 너무 어리기도 했다. 아예 안 겪었으면 더 좋았을 일들, 아니면 잔뼈가 조금 굵어진 뒤 겪어도 될 일들을 너무 어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겪었다. 여린 맨살을 회초리로 맞는 것처럼 아팠다. 하여 그때그때 많이 울었고 심하게 서러워하던 날들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20대가 전체적으로 우울하거나 불행하진 않았다. 

확실한 건 아무 것도 없는데, 내가 뭘 하고 싶은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20대 한복판의 어느 해 여름은, 급작스럽게 사랑에 빠졌는데 실연을 당해서 남성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언니랑 배드민턴을 죽도록 쳤다. '이러다 런던 가겠다'라고 농담처럼 말하면서. 서브를 팔 빠지게 세게 넣던 동작이나 그 운동장의 습한 기운, 땀에 다 젖었다가 그 차림으로 집까지 걸어오며 옷이 말랐던 느낌 같은 것들이 생생하다. 그때 좋아했던 버러지 같은 남자 애의 싸이월드에 들어갔다가 망연자실했던 날도 기억난다. 인생에 아무 쓸모도 없는 인연이었는데도, 이런 기억은 참 생생하다. 


일에서도 사람에게, 사랑에서도 사람에게, 사람으로부터의 상처를 온몸으로 받으며 20대의 나날이 흘러갔다. 그러다가 마치, '어느날 갑자기'그렇게 된 것마냥 나는 상처받지 않을 만한 타인과의 거리와 내 나름의 행동 강령(?) 그리고 어지간한 것에는 '상처랄 것까지' 하며 태연해 하는 맷집도 생겼다.


물론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비단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서울이어서 생긴 것은 아닐 거다. 천안이었든, 어떤 다른 도시였든 누구나의 20대는 그 나름의 상처와 두들겨 맞는 듯한 통증 같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또 그만큼의 뜨거운 행복도. 

그때만이 알 수 있는 활화산 같은 마음들. 똑같이 술을 마셔도, 똑같은 여행을 가도 그때만 느낄 수 있는 흥겨움 , 설레임, 너무 즐거워 미치겠는 그런 것들.


나에겐 그게 '서울'이어서 더 특별했다.


서울에 있다고 내 하루에 프리미엄이 붙는 것도 아니었고 서울이 다 내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서울에서' 일하고 '홍대'와 '이태원'을 누비며 술을 마시고, 매일 한 번씩 '한강'을 건너는 일들이 나에겐 더없이 특별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오매불망 바랐던 서울. 내 좁은 세상에선 여기가 최고의 무대였다.


천안에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대부분 엄마의 선택과 또 어쩔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애초에 내가 거기서 태어나는 것 자체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하지만 여기선 다르다.


여기에 오기로 한 것부터가 내 선택. 여기서 힘들 것도 여기서 울 것도 여기서 일할 것도 여기서 사람을 만날 것도 여기서 행복해질 것도 내가 선택했다. 남이 하라고 해서 억지로 하게 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내 세상. 가끔 혼자 방 안에 누워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 거린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이 단 하나도 없어.' 


그러니 그 모든 게 기특하고 사랑스러울 수밖에.

가끔 이 많은 것들을 망각한 채 무채색의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 하늘을 본다. 지하철 창밖을 본다. 내 명함을 본다. 우리의 결혼 사진을 본다. 내가 고른 부엌의 타일을 본다. 함께 술을 마시며 웃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의 눈을 본다. 

그래, 나 지금 되게 어엿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서울 사람. 치열하고 팍팍하고 매연 가득한, 밤이 예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고 내 삶이 무럭무럭 자라는, 지겹고 낯선 도시 서울에서. 나는 오늘도 살고 있다.  


                                                                                                                                         -끝



방실방실 아조씨 | 포차성애자. 소녀 감성과 아저씨 취향 그 사이 어디쯤에서 소맥을 말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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