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울에 도움이 된 책들

by 조제

몇 년간은 우울과 싸우면서 나는 우울함에 관한 많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우울함에 관한 책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앤드루 솔로몬의 <한낮의 우울>일 것입니다. 훌륭한 책이고 우울함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책이 너무 두꺼워서 우울로 난독이 생긴 내가 읽기에는 힘들었습니다.


이 책 저 책을 읽다가 발견한 수 앳킨슨의 <우울의 심리학>은 내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일단 이 책의 저자는 우울증을 직접 앓은 당사자였기 때문에 의사나 상담가가 쓴 책보다 더 공감되고 겪은 사람만 알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문장이 그렇습니다.


우울증에 빠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삶 자체가 너무 어둡고 공허하다고 느낀다. 또 일부는 먹기나 마시기처럼 생존에 필요한 몇 가지 행위를 가까스로 하지만 이러한 행위조차 할 수 없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41쪽)


많이 우울할 때는 긴 글을 읽기 힘든데 이 책의 저자 또한 그 사실을 잘 알아서 책의 내용을 짧게 짧게 끊어서 썼습니다. 그래서 응급 시 필요한 부분은 찾아서 읽고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문장이나 내용 또한 아주 상냥하고 위안을 많이 주었습니다. 그래서 힘들어서 책을 읽을 때 같은 고통을 주는 동료가 힘을 주고 지지를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책은 우울증의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으로 설명하는 것부터 시작해 우울한 날을 위한 조언과 우울증이 나아지기 위해 하면 좋을 여러 가지 것들, 버리면 좋을 것들, 문득 악화되는 순간에 대한 대처법 등을 조곤조곤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39개의 장으로 나눠서 우울의 여러 가지 상황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어 필요한 순간마다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어느 날 우울한 날이 왔을 때 나는 챕터4 ‘우울한 날을 위한 조언’을 찾아봅니다. 그러면 내게 도움이 되는 문장들이 주르륵 있습니다. 가령 이런 것들입니다.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점은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에 대한 죄책감에 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한 죄책감은 당신을 더욱 힘들게 할 뿐이다. (...) 당신이 동굴로 피신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므로, 잠시 동굴에 머물면서 당신 자신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 우울한 사람들이 배워야 할 기본적인 규칙은 바로 ‘자신에게 친절하기’이다. (50쪽)


하나만 더 살펴볼까요. 우울함이 문득 크게 악화되는 순간에도 이 책은 내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 챕터 36 ‘문득 악화되는 순간에는 이렇게 대처하라’를 폅니다. 그러면 거기에 나의 상황이 그대로 쓰여 있습니다. 일단 거기서 공감을 받는 듯한 안심을 받습니다.

우울증의 극복은 순조롭지도 쉽지도 않다. 우리의 기분은 순간순간 좋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한순간에 특별한 이유 없이 삶을 부여잡은 우리의 손아귀에 힘이 빠지게 된다. (299쪽)


이런 문장들 사이를 울면서 읽다 보면 저자는 상냥하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다가올 10분의 시간에 맞설 수 있을 정도의 충분한 힘이다. 하루 종일 버텨내야 한다는 생각은 소름 끼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일주일을 버텨내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 끔찍해서 공황 장애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10분은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 나는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늘 해야 할 일과 오늘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의 목록을 작성했다. 목록에서 행한 일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다 보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다. (300쪽)


이런 식으로 저자는 자신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우울을 견디고 나아지게 하는 다양한 노하우들을 아낌없이 차근차근 알려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우울함이 올 때 이 책이 잠자리 머리맡에서 상냥하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도움이 된 책은 <우울할 땐 뇌과학>입니다. 이 책은 우울증에 대한 나의 생각을 어느 정도 바꿔놓은 책입니다. 일단 이 책을 읽으면 우울할 때 ‘내 잘못’이라는 생각보다 ‘앗! 뇌가 또 혼란스러워졌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매우 좋았습니다. 하하. 그러니까 익숙한 죄책감으로 ‘내 탓’을 하기보다는 ‘뇌 탓’을 하게 되어서 좋았던 거지요.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것입니다.

우울증은 기본적으로 생각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과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 사이의 의사소통이 잘못된 결과 나타난다. (전자책 46쪽)


이런 식으로 우울증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알려주니 신뢰가 가고 믿게 됩니다. 그래요, 이제부터 우울증이 오면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뇌의 의사소통이 잘못된 때문입니다.


이렇게 우울과 불안에 대한 뇌과학적인 사실들을 알려주고 나서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우울함이 나아질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사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방법들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방법들입니다. 운동, 수면, 좋은 습관, 감사하기, 사람들 속에 있기 등 말이지요.


그런데 다른 점은 그 모든 사항에 뇌과학적인 근거가 달려있다는 점입니다. 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일들이 그렇게 눈에 보이고 믿을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대고 설득하니 전보다 조금 더 하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신기한 일이지만 그렇더라고요.


예를 들어 사람과 함께 하는 게 우울함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더라고 겁이 나 그러기 힘들었다면 11장 ‘그저 사람들 속에 있기’에 있는 설명을 떠올려봅니다.

우리는 함께 생존하도록 진화해왔고, 우리의 뇌는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가장 건강하다. 이 말은 연결이 끊어졌다는 느낌이 들 땐 파괴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행히 가족, 친구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과, 심지어 반려동물과 상호작용을 하면 우울증의 진행 경로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 연구들이 있다. (전자책 331쪽)

그러면 조금이라도 다시 사람들을 향해 갈 의욕이 납니다.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과 말을 하지 않더라도 공원이나 어디든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하니까요.


코로나 시대에 사람들과 접촉하기 어렵게 되었지만 내가 시험해 본 바에 의하면 꼭 오프라인이 아니라도 온라인이라도 유의미한 접촉이 있으면 기분이 나아지곤 했습니다. 카톡이나 전화를 해볼 수도 있고 여력이 된다면 화상 통화나 화상 모임도 좋을 거예요.


자, 이 두 권의 책은 하나는 같은 경험에서 온 구체적인 방법과 상냥함으로, 또 하나는 과학으로, 우울이라는 긴 여행을 가는데 내게 큰 도움이 된 책들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감정과 친구가 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