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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박사 Jun 28. 2020

마무리 방향 잡기

3년 차 #1 방향 잡기

Dr.K와 합의한 3개월 동안 라이팅 작업에 전념한 결과 드디어 바라던 Writing-up 승인을 얻게 되었다. Writing-up과 동시에 일어난 변화는 개인 연구실이었다. 2인 1실이기는 하지만 같이 오는 친구가 Bristol이라는 도시에서 통학을 하고 있어 연구실에 잘 오지도 않을뿐더러, 학위 과정을 채 마치기 전에 영국 통계청에 취업을 하게 되면서 결국 혼자서 쓸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얻게 되었다. 또 다른 하나는 지도교수님의 공식적인 논문 지도 의무가 없어졌기에 거의 매주 있었던 지도교수님과의 미팅이 자율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라이팅에 집중하게 되면서 거의 한 달에 한 번도 보지 않은 적도 있었다. 대신, 논문을 더 꼼꼼히 읽고 더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코멘트도 받게 되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다 보니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적으로는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좀 더 늘릴 수 있었는데, 아내는 이왕 영국까지 나온 것 모든 박사과정생들이 경험하는 잡마켓도 경험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해주었다.

개인 연구실로 이동하는 날 싼 짐들 (좌), 7층 연구실에서 본 뷰 (우)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잡마켓에서 무슨 일들을 겪는지 경험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르고, 실제 잡 오퍼를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의 실력과 상황에 대해서 점검해 볼 수 있지 않겠냐고... 듣고 보니 그 말이 맞았다. 나는 애초에 전혀 계획에 없던 잡마켓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잡 마켓에 나가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조금씩 정보를 얻게 되었다.


영국의 경우 잡마켓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논문 저술 실적이다. 영국의 경우 논문이 실리는 학술지를 4등급으로 구분한다. 흔히들 탑 저널이라고 알려진 저널은 가장 높은 등급 즉 4 star로 분류되고 박사과정을 졸업하면서 4 star 저널에 기재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그다음은 탑 저널은 아니지만 거의 그에 준하는 3 star로 분류된다. 학교마다 조교수, 즉 lecturer 직위에 공모하기 위해서는 최소 3 star급 저널 기재 실적 2편 또는 4 star급 저널 기재 실적 1편이 필요하다.  


나중에 부교수, senior lecturer 직위에 공모하기 위해서는 최소 4 star 2편 또는 3 star 5편 이상의 기재 실적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이와 근무 기간에 상관없이 랭킹이 높은 저널에 기재를 많이 하게 되면 부교수, 나아가 정교수 professor까지 될 수 있는 곳이 영국 학계의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잡마켓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보였는데 갑자기 노선을 바꾸면서 알게 되었다. 그럼 논문 기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논문을 써서 학술지에 보내면 되는데, 보내기 전에 자신이 작성한 논문이 다른 연구자들이 보기에 학술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그리고 적정한 방법으로 작성되었는지 검증하기 위해 컨퍼런스나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는 과정을 거친다. 


세미나는 다소 비공식적인 분위기에서 개최되는데 학교 내에서 교수님들 또는 동료 박사과정 연구생들 앞에서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세미나는 누군가가 논문을 읽고 토론해주는 과정이 없고 연구결과만을 발표하기 때문에 사전 검증의 강도가 컨퍼런스에 비해 약한 편이다. 그러나, 교수님들의 경우 다른 학교에서 열리는 공식, 비공식 세미나에 초청되어 발표를 하고, 해당 분야의 권위자가 그 세미나에 참석해서 질문이나 코멘트를 줄 경우 그 사실을 학술지에 보낼 때 적시해서 보내주면 학술지의 평가자가 관련 사안들을 주의 깊게 본다고 한다.


컨퍼런스의 경우 세미나보다 좀 더 공식적이다. 특정 학회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한다고 인터넷이나 여러 경로를 통해 공지를 하면 많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 논문을 컨퍼런스 주최 측에 보낸다. 그러면 주최 측에서 해당 컨퍼런스에서 발표할 만한 흥미로운 논문을 선정해서 발표 대상자를 선정한다. 발표 대상자로 선정이 되면 논문 전문을 읽고 토론해줄 토론자를 선정하여 해당 논문을 송부한다. 주로 주제별로 여러 세션을 두는데, 각 세션마다 세명의 발표자를 선정하고, 발표자와 토론자가 서로 상대방의 논문에 대해 토론하지 않도록 세 명이 각각 다른 논문에 대해 토론하도록 토론자를 배정한다. 그렇게 세션이 구성되면 학회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참석자들이 관심 있는 세션에 참여하여 발표와 토론을 모두 듣고 질의하는 방식으로 학회 컨퍼런스가 구성이 된다.


유명한 학회가 주최하는 콘퍼런스의 경우 생각보다 발표자로 선정되는 확률이 낮다. 그래서 연구자들의 CV를 보면 프레젠테이션을 한 이력을 가득 적어놓기도 하는데, 유명한 학회에서 발표할 경우 그것 자체가 하나의 스펙이 될 수 있다. 


결국 잡마켓에서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좋은 학술지에 논문을 기재하고, 유명한 학회에서 개최하는 컨퍼런스에 참여해서 발표를 많이 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 외에도 연구나 강의 조교를 꾸준히 하면서 학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어떤 과목을 실제로 가르칠 수 있는지 입증하는 것도 하나의 평가 요소가 된다고 들었다. 


이런 것들을 학위를 시작하는 시점에 누군가가 이야기해주었더라면 지난 2년을 좀 다른 방식으로 보냈을 텐데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갔으나, 나는 내가 처한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기에 후회나 미련은 없었다. 다만, 누군가가 학위를 마치고 교수가 되고자 한다면 처음 시작 시점에서 이러한 학계의 시스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시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정보를 알게 되었으니, 실행하는 일만 남았다. 금융, 경제와 관련된 컨퍼런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았다. 약 열 개가량이 바로 검색되었다. CV와 논문을 준비했다. Dr.K에게 계획을 얘기했더니, 어떤 식으로 이메일을 작성하는 게 좋을지 직접 초안을 써서 보내주었다. 내 논문의 핵심 내용과 나의 경력을 간략히 어필하고 그 학회에서 꼭 필요한 논문이니 나에게 연락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부탁이 포함되어 있었다.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내가 응모한 전체 컨퍼런스 중 절반 이상으로부터 발표자로 선정되었다. 특히 그중에 잡마켓 참가자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는다는 전미 경제학회(AEA)에서도 감사하게 선정 이메일을 받았다. 이 모든 것이 아내의 조언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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