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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박사 Jun 28. 2020

유럽의 학회들

3년 차 #3 학회, 학회, 학회

'최대한 빨리 학위과정을 마친다'는 목표를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본다'로 선회하면서 예상치 않게 많은 기회들이 찾아왔다. 가장 먼저 참석하게 된 학회는 박사과정생들을 대상으로 한 Leicester 대학 경제학과의 PhD 컨퍼런스였다. 레스터 대학은 영국의 중부 지방에 위치한 대학인데, 학문적 명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학에서는 박사과정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전 세계의 경제학과 박사과정 학생들의 논문을 제출토록 한 뒤 그중 우수하다고 판단되는 논문의 저자를 직접 초청해서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다른 학교의 박사과정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무척 소중한 데다가, 레스터 대학에서 숙소와 교통편을 제공해주니 지원할 유인이 충분했다.


나는 직접 피티를 하는 발표자 대신 포스터를 전시하는 포스터 발표자로 선정되었다. 처음에는 발표를 하지 못하게 된 점이 못내 아쉬웠으나, 참석하는 학생들의 면면을 알게 된 이후에는 포스터 발표자로 선정된 것만으로 엄청난 행운이구나 싶었다. 발표를 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학교의 박사과정생들이었다. 영국 내에서는 캠브리지, LSE, 워릭 출신의 학생들이 발표를 했고, 미국의 유펜, 노스웨스턴 대, UC 버클리 같은 곳에서 연구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 외 나처럼 포스터 전시를 하는 학생들도 유럽 내 유수의 대학들 출신이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스위스 바젤, 이태리 보코니,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렇게 다양한 곳에서 경제학 연구를 하는 친구들이 있구나 싶었다.


컨퍼런스를 마친 소감 중 가장 크게 남았던 점은 다른 발표자들로부터 받은 지적인 도전이다. 주요 국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지적 수준과 경력, 또 그들의 개인적인 고민들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정말 큰 수확이었다. 한국을 떠나 영국에 있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한 것인데, 주요 유럽 국가들과 미국에서 몰려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 스스로의 경쟁력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되었다. 


컨퍼런스 내용은 정치와 보건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면서 경제학적 관점에서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에 대한 답을 어떻게 내리는지에 대한 것이었기에 무척 새로우면서도 재미있었다. 총 4년의 박사과정 중 2년 차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음에도 한 사람 한 사람의 발표 내용이 상당히 알찼다. 


식사시간과 티타임 시간 등을 통해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눴는데, 무척 특이한 사항중 하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부부터 박사과정까지 같은 학교에서 했다는 사실이다. 캠브리지, 워릭, 더럼 대학 등 영국 대학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의 학생들이 대부분 그랬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학부 때부터 관련 분야에서 지적인 자극을 받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교수님들과 교류하면서 학위를 해 나간 것이 그 원인인 듯싶다.


또 하나 놀랐던 부분은 이번에 만나게 된 학생들이 내놓은 연구결과뿐 아니라 그것을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국적을 불문하고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만의 연구 주제가 왜 의미 있는지를 그 분야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인 사람들에게도 주어진 시간 내에 흥미를 갖게끔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인상 깊었다. 특히, LSE의 중국 학생은 모든 면에서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줬는데 중국 학생들의 저력에 공포감이 들 정도였다.


레스터 대학에 컨퍼런스로 다녀온 이후에는 박사과정 학생들로만 구성되지 않은 현직 교수들과 연구자들이 강연자로 참석하는 정식 학회의 컨퍼런스에도 발표자로 참석하기도 했다. 퀸 메리 런던 대학(Queen Mary Univ. of London)에서 개최한 Behavior Finance Working Group 컨퍼런스와 프랑스의 Aix-en-provence 대학에서 개최한 프랑스 거시금융 학회에서 내 논문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 여러 학회에서 발표자로 또는 단순한 참석자로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되었다.


소중한 기회였기에 최대한 많이 배우고 얻어 오기 위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들어가는 모든 세션에서 질문한다. 둘째는 세션 중간중간 쉬는 시간과 식사시간에는 꼭 어떤 그룹에 들어서 이야기한다 였다.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했지만, 두 원칙을 지키다 보니 영어 때문에 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모든 발표에 대해 질문을 하기 위에서는 우선적으로 다른 사람의 발표를 귀담아 듣고 만약에 이렇다면 어떨까 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비판적으로 듣게 된다. 발표자의 발표 내용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항상 "What if?"라는 질문을 거쳐서 받아들이는데, 발표 도중 스스로 그 "What if?"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거침없이 질문을 던지곤 했다.  


처음 컨퍼런스에 발표자로 초청되었을 때, 컨퍼런스에 참석하면 토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라서 교수님께 토론 준비하는 과정이 상당히 힘들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교수님이 해주신 조언은 논문이 가정하고 있는 내용들을 조금만 느슨하게 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금방 몇 가지 토론 사항들이 나온다고 말이다. 그 조언을 조금 변형해서 발표를 들으면서 논리 전개의 가정 또는 전제의 일부를 제한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물론, 누군가는 "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한 국제 학회에서 홀로 쓸쓸히 점심을 먹고 계셨던 일본인 교수님의 뒷모습이 쉬 지워지지 않는다. 모두가 삼삼오오 무리 지어 자신의 연구에 대해 가볍게 또는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동양인이 있어 계속 흘러가는 눈길을 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동료를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다. 약 한 시간이 넘는 점심시간 내내 자신의 접시에 홀로 음식을 담아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로 구석에 앉아 있는 모습이 무척 애처로웠다. 본인이 말하지 않더라도 어느 그룹에 끼어서 듣기라도 하면 좀 덜 눈에 띌 텐데... 안타까운 맘이 들었다. 그런 경우는 국제 회의장 같은 곳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구석에서 혼자 있거나, 자기들끼리 모국어로 떠드는 이들은 대부분 아시안이다. 혹자는 그런 현상을 "Asian Shyness"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영어의 능통함을 뛰어넘어 처음 만난 사람과 네트워킹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면 더 큰 배움의 기회를 스스로 놓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네트워킹을 적극적으로 한다는 두 번째 원칙을 지키기 위해 식사시간이나 티타임에는 일부러 몇몇이 모인 자리에 가서 같이 선다. 잠시 틈이 생기면 같이 해도 되겠냐고 물어본다. 대부분의 경우 흔쾌히 자리를 양보해주고, 간단히 소개를 한 후 짧은 대화를 시작한다. 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간략히 소개를 하기도 하고, 출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면 몇 가지 대화의 주제가 생긴다. 나와 대화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내가 대화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면 좀 더 이야기하다가 적당한 핑계를 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단지 나와 대화가 잘 안 맞는 사람이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말이다. 네트워킹은 단지 네트워킹일 뿐 너무 부담을 가질 필요도 또 반대로 너무 적극적으로 다가갈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종종 뜻밖의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얻게 되기도 한다.


한 학회에서 미국 출신의 노신사를 뵌 적이 있다. 마침 Washington DC에서 오셨다길래 과거에 출장 차 방문했던 기억이 나서 그 얘기를 좀 나누게 되었는데, 그 출장에서 만난 교수님과 절친한 사이셨다. 덕분에 학회 기간 내내 계속 대화를 나누게 되어 개인적인 대화까지 조금씩 나누게 되었다. 혹시 언제쯤 은퇴하실 것인지 여쭤봤더니, 지난 컨퍼런스에서 만난 일본인 교수님 이야기를 넌지시 꺼내셨다. 그 일본인 교수님이 마침 아버님과 같이 컨퍼런스에 참석하셨는데, 당시에 107세셨고 의사셨는데, 105세가 되어서야 환자를 그만 보기 시작하셨단다. 나도 105세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신다. 평생에 걸친 연구자의 자세를 그 짧은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학회를 통해 얻게 된 것은 꼭 학문적인 것뿐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자세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경험을 같은 학회에서 겪게 된 적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은 내 논문에 대한 토론을 듣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캐나다 출신 여교수님이셨는데, 내 영어 표현에 대한 지적이 있는 슬라이드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멈추시고는 내 눈을 맞춘 뒤에 "Constructive comment"를 하나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고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넘어간 슬라이드에서는 문법, 표현, 기타 등등 구구절절이 기록해 두셨는데, 좋은 저널에 출판하고 싶다면 영어 수준을 향상해야 되겠다고 "아주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셨다. 물론 나는 얼굴이 무척 화끈거렸지만 그분의 배려가 마음으로 전달되었고 감사한 마음만이 남았다. 세션 종료 후에 찾아가서 좋은 코멘트에 감사한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향후 수정된 버전이 있다면 꼭 읽어보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다.


두 번째 사례는 다음 세션의 한 중국인 교수님의 토론이었다. 그분의 영어는 내가 듣기에도 불편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 토론의 가장 큰 부분 발표자 논문의 영어 수준에 대한 내용이었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무척이나 직설적이어서 당사자가 아닌 내가 듣기에도 무척 불편했다. 물론 그분이 의도적으로 발표자를 당황하게 하거나 공격하기 위해서 그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의 표정이나 태도에서는 전혀 적대적인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분은 단지 영어로 에둘러 표현하는 매너를 모르셨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지적해야 할 때가 있다. 적나라하게 이야기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황이 많은 사람이 동시에 듣는 공개된 상황이라면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학자 대 학자, 전문가 대 전문가 이전에 사람 대 사람의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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