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급 박사 Jun 26. 2020

마흔을 준비하면서..

2년 차 #5 되돌아보기

  행복한 시간들과 힘겨운 시간들을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이 보내다 보니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노곤해지면서 센치해 지기 시작했다. 아홉수를 조심하라고 했던가? 마흔을 앞에 두고 그간의 인생을 다시 돌아보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리저리 돌려가며 생각해보았다.


  한 자 한 자 다 공개하기는 부끄럽지만 그즈음에 썼던 일기를 조심스레 공개해본다.




    최근 부쩍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잡생각이 늘었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측면도 있으나, 지금 하는 일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부분도 꽤 있다. 20대에 하던 미래에 대한 구상과는 많이 다르다. 고려하는 부분도 더 많아졌고, 뜬 구름 잡는 내용보다는 보다 현실적으로 바뀌었다. 내 결정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 적어도 내 아내와 아들의 미래와도 직결되기에 결정의 부담감도 더 크다.  

  

  아내와 아들의 미래가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큰 고려사항이다. 부족한 나의 능력과 시장 상황은 제약조건이 된다. 그러나 맘 한편에서 일어나는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더 깊이 생각해봐야 된다고 믿는다. 적어도 몇십 년 후에 지금 시점을 되돌이켜 봤을 때 후회하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현재 살아있는 사람은 시간적으로 크게 세 가지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과거, 현재, 미래가 그 세 가지인데 나는 이를 유산, 노력, 소망으로 바꾸어 부르고 싶다. 내가 받아온 교육과 노출된 환경으로 받은 유산에 따라,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의 방향과 강도에 따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사는지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나는 성실하지만 고지식하신 아버지와 인자하고 넉넉하지만 다소 즉흥적이신 어머니의 영향 아래 자란 경상도, 그것도 대구 출신의 장남이다. 엄격한 교회의 울타리에서 평생을 지낸 골수 크리스천이고, 학교에서 교수님들의 학생들에 대한 헌신에 많이 감동했던 소심한 학생이었다. 10년 전 20대 후반의 나는 그렇게 교수를 꿈꿨던, 열심은 있으나 유연성은 부족한 젊은이였다. 들어가기 꽤 어렵다는 공공기관에 감사하게도 합격하여 지난 10년을 그때와 다름없는 성실하지만 뻣뻣한 자세로 살아왔다.  


  정상적으로 학위를 받게 된다면 내년에는 적어도 교수가 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춘 수많은 지원자 중의 하나가 된다. 미래의 교수로서는 그다지 뛰어난 지원자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정확히 그 대상은 알 수 없으나, 10년의 공공기관 근무 경력을 갖고 있는 박사학위 소지자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적어도 내가 갖고 있는 소망의 방향에 따라 내가 뭔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믿고 싶다.  


  20대 후반 이후를 보낸 나의 경험과 지난 2년간의 영국 생활은 내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지금의 나는 20대 후반의 나와 어떻게 달라졌을까? 조금은 유연해지지 않았을까? 내가 알 수 없는 곳의 가능성이 있고,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매 순간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배운 것은 아닐까?   


   그리고 20대 후반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서 변하지 않은 가슴속 소망이 있을까? 또 그 기간 중 새롭게 생겨난 희망은 무엇일까? 학교로 오는 길에 문득,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 세대에 대한 마음이 아닐까 싶었다. 20대 후반에 품었던 "실력 있고 비전 있는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교수가 되자"는 치기 어린 욕심이 현실에 깨지고 깎여서, "적어도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내가 경험하고 배운 지식과 노하우들을 전수해줄 수 있는" 정도의 전문가가 되자는 작은 다짐으로 바뀐 것은 아닌가 스스로 평가해 본다.  


  박사과정을 마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도 그러한 방향에 맞추어지면 좋겠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돌아본다. 과연 이 방향이 최선인지? 아내와 아들을 위해서도, 그리고 "왜?"라는 맘 한편의 질문에도 말이다.  


  40대 중반에도 어떻게 살아야 될지 잘 모르겠다던 회사 선배의 푸념에 "그 나이가 되어도 결정이 되지 않는가?"라고 반문했던 20대의 나였다. 40을 앞에 둔 나는 그런 질문은 죽는 날까지 계속되고 매일매일 새로운 다짐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시 읽어봐도 부끄럽고 혼란스럽다. 그렇지만 살아가는 여정의 어느 시점에서 내가 했던 고민들과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기에, 오늘의 내 모습에 충실하게 된다. 오늘의 내 모습이 미래 어느 시점의 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으나, 맘속으로는 무척 혼란스러웠던 늦깎이 2년 차 박사과정 학생은 그렇게 마흔을 맞으면서 3년 차로 가는 첫 발걸음을 떼었다. 


자주 가던 Dryham Park의 넓은 초원 (저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알 수 없던 2년차)


이전 20화 결국은 극복될 어려움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