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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급 박사 Jun 26. 2020

풍성한 선물들

2년 차 #3 크리스마스

너무나 좋은 사람들과 삶을 나누면서 행복을 느끼던 시간.. 우리 집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


일 년 중 가장 풍성한 때는 언제일까? 한가위, 설, 어린이 날 어버이 날이 같이 있는 5월 초.. 영국에 와 보니 이 곳에서 가장 풍성한 때는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크리스마스라고 하지 않고 크리스마스 시즌이라고 쓴 것은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시작되는 대강절(Advent)부터는 도시 전체가 완전히 축제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교회력에서도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 30일부터는 성탄을 기다린다는 의미에서 대강절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대강절이 오면 도시 곳곳이 크리스마스 마켓 준비로 분주해진다. Bath는 영국 내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예쁘고 아기자기하기로 유명하다고 들은 적이 있다. 과연 그 명성대로 도시 곳곳이 약 1평 정도의 조그만 나무집으로 가득 찬다. 그 나무 집안에는 각자가 팔고 싶은 물건들을 갖고 나오는데, 온갖 물품들이 다 있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다 보니 크리스마스 장식이 많다. 그 시절에만 볼 수 있는 초, 인형, 장신구들이 눈길을 끈다. 지역 명물도 많이 볼 수 있다. 목공예품도 있고, 그림도 있다. 먹거리들도 빼놓을 수 없다. 와인에 시나몬과 각종 과일을 넣고 끓인 Mulled wine이 단연 인기다. 추운 날씨지만 따끈한 Mulled wine 한잔이면 온 몸이 녹는다고 한다. 선천성 알코올 소화 불능이 있는 나는 냄새만 맡았는데, 실제 많이 마셔 본 아내의 말이 그렇다.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파는 Mulled Wine

거리 곳곳에는 거리의 악사들이 대목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동안 갈고닦은 솜씨를 뽐낸다. 교회나 학교에서 단체로 나온 아카펠라 성가대들의 노래도 귀를 한참 붙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평소 같으면 6시만 되면 한산할 거리건만 10시가 되어도 불이 꺼질 줄 모르고 이곳저곳을 장식한 조명들은 깊은 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을 것만 같게 만들어준다.


마침, 아들의 학교에서 아들이 속한 학년이 Bath 성당(Bath Abbey)에서 개최하는 대강절 축하 예배의 공연팀으로 선정되면서 도시 한가운데 있는 Bath 성당에 공식적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의 학년은 영국 공교육이 시작하는 만 4세 연령의 Reception으로 우리로 치면 유치원 정도로 볼 수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Bath 시내에 있는 학교를 대상으로 학교 별로 한 학년씩 랜덤으로 뽑아서 캐럴 공연을 하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아들의 학교에서는 Reception이 선정된 것이었다. 팀이 뽑히지 않은 학교도 있는 데다, 그 학년이 꼽히기는 정말 어려운데, 우리 가족에게는 정말 좋은 경험이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연 시작 1시간 전부터 가서 줄을 서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이 슬슬 줄을 서기 시작했다. 나는 두 번째로 성당에 들어갔으나 자리를 잘 못 잡아 사진을 제대로 남기지는 못해서 두고두고 욕을 피할 수 없었다.

Bath Abbey 에서 열린 대강절 행사에 초청된 아들과 친구들


거의 한 달 내내 들뜬 기분으로 보내다가 크리스마스이브가 눈 앞에 다가왔다. 우리가 출석하는 한인 교회에서 갑자기 다 같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어보는 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너무 좋을 것 같다고 모두 동의했는데, 문제는 장소였다. 교회는 파티를 열기에는 음식 준비나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있었다. 결국, 누군가의 집으로 가야 하는데, 가족이 머무는 가정집이면서, 어린 아기가 없고,... 기타 등등 조건을 따져보니 우리 집 밖에 가능한 곳이 없었다. 우리 집이 우리 세 식구가 머물기에는 넉넉하지만 간혹 손님 몇 명이 와서 하루 이틀 같이 지낼 정도는 되지만 대규모 파티가 과연 가능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다른 대안이 없었다. 첩첩산중인 건, 영국은 크리스마스이브는 온 상점이 다 문을 닫는 데다가 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장 먼저, 우리가 영국에 처음 왔을 때 우리 집에 놀러 온 이후로 친 형제가 같이 되어버린 바비큐 장인의 가족들은 몇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를 같이 보내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바비큐 장인은 아이들이 3명이나 되었기에 5인 가족에 우리 식구만 해도 벌써 8명이었다. 그리고, 모든 교회 행사를 같이 하는 영국 현지 가정 가족이 3명, 박사과정에 있는 부부 2명, 교수님 부부 2명, 이렇게 7명이 추가되었다. 게다가 아르헨티나에서 온 학생의 부모님이 방문 중이셔서 3명이 추가되고, 학부 학생들이 5명... 도합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리 집 식탁에 둘러앉았다. 우리 집 다이닝 룸은 원래 있던 식탁에다 야외용 식탁까지 붙여 넣은 데다, 집에 있는 의자란 의자는 모두 집어넣어 과연 식사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꽉꽉 찼다.

발디딜 틈 없는 우리집 식당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각자 준비해 온 음식들로 식탁은 풍성해지고, 돌아가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에 마음은 더욱 풍요로워졌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소소하게 준비한 선물을 나누면서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은 깊어만 갔다. 우리 가족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구면이었지만 각자 서로 처음 보는 사이도 꽤 많았음에도 그 밤에는 그 어떤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각자의 사연으로 고국을 떠나 이국에서 만난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기 예수님의 이 땅을 향한 사랑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모두 자정을 훌쩍 넘기고 넘겨서도 그 밤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각자의 처소로 발길을 돌렸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잠자리에 들면서 고국을 떠나오면서 했던 기도가 기억이 났다.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지만,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올 축복을 꼭 누릴 수 있도록 해주세요."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내면서 난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공유하면서 내가 얼마나 많이 받은 사람인지를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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