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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코 Oct 25. 2021

'어른스러움'에 대해 생각하다

나이와는 꼭 상관이 없는 인격적인 성숙

'어른스럽다'는 것은 무엇일까? 꽤나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주제이다. 나이와는 꼭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먹어도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안타깝지만 죽을때까지 어른스러워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도 있다. 반면 나이가 어린데도 어른스러운 사람들도 있으며, 어른보다 어른스럽게 느껴지는 아이들도 존재한다. 이렇게 차이가 느껴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특성이 있겠지만, 나는 어른스러움의 핵심 요소로 인내심과 마음의 여유를 꼽고 싶다.


인내심, 즉 참을 줄 안다는 것이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 일이 있어도 분노를 표출하지 않을 줄 안다. 누군가 극도로 원망스러워도 조용할 줄 안다. 힘들어 죽겠어도 내색하지 않을 줄 안다. 인생을 살다보면 참아야 하는 순간들이 수도 없이 생겨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앞에서 참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실수하기 마련이다. 초인이 아닌 이상 고통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부정적인 상황들과 감정들, 몸과 마음을 후벼파는 각종 고통들 앞에서 인내심을 발휘할 줄 아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고, 오직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들만이 이것을 해낼 수 있다.


마음의 여유 또한 마찬가지다. 가만히 있어도 살다 보면 마음의 여유를 뺏어가는 온갖 일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마음이 황폐하고, 자존감이 낮고, 마음에 보호막을 치고 있으면 마음의 여유가 없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가? 날카롭고 방어적인 태도로 일관하게 되며, 매사를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위로, 사랑을 갈구하게 되며, 세상을 원망하게 된다.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부정적인 상황과 여건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베풀 줄 안다. 위로를 건네고 조언을 전달할 수 있다.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다. 시간을 들여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을 남에게 주지 못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남에게 줄 수 있는 것도 없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남을 돕고 베풀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줌의 마음의 여유조차 뺏어가버릴 듯한 온갖 힘들고 부정적인 상황들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사수할 수 있고 또 이것을 남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은 정신적인 성숙의 증거다.


살아보니, 충분한 인내심과 여유를 가진 사람은 손에 꼽을만 하다. 모든 여건과 상황이 좋다면 누구나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여건과 상황 속에서 인내심과 여유를 지니고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런 와중에 주변에 베풀기까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흔치 않다. 이런 사람들의 특성은 또 대체로 겸손하다는 것인데, 이 때문에 이와 같은 인내심과 여유는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인내심과 여유가 없는 사람은 금방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충분히 가진 사람들은 유심히 들여다 보아야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해변의 바닷물은 그 바닥을 누구라도 볼 수 있지만, 먼 바다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이 소란스럽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어른스러움 덕에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되어간다.


아이들에게 가지는 어른의 책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영화 <가버나움>에서 주인공 아이의 부모는 항변한다. 우리가 무슨 잘못이냐고. 우리가 이러고 싶어서 이랬냐고. 부모도 완벽하지 않다. 부모도 다 나름의 사정이 있고, 나름의 상황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아이들의 탄생이 아이들의 선택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아이들은 약자이기 때문이고,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어른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좁게 보면 부모는 자식들에게 책임이 있다. 크게 보면 한 세대는 그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여유가 꼭 필요하다. 아이들은 잉태되고 또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인내하게 만든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부모의 여유에서 비롯된 사랑을 먹고 자라며, 많은 어른들의 인내와 여유 속에서 자라난다. 우리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중에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어른스러움 속에 어른이 되었다.


인격적인 성숙함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인격적인 미성숙함은 세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성숙해야 하는 것, 어른스러워야 하는 것은 개인이 사회에 가지는 책임이기도 하다. 어느새 한 해가 저물어가고, 눈 깜짝할 새 또 다시 한 살을 더 먹을 것이다. 깊어가는 가을 속에서, 나 자신에게 다시금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얼마나 어른스러운가? 나는 지금 어떤 영향을 끼치며 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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