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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K Aug 21. 2023

그렇게 러너가 되어 간다

하루 3킬로미터, 45일 경과, 그리고 나는 심한 무릎통증 환자


뒤늦게 달리기라는 운동을 시작했다. 


어떤 운동이든 시작하는 게 어렵다고는 하지만 내가 '평생 시도하지 못 할 운동'으로 꼽은 달리기를 시작하는 데는 작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십년 전부터(10년 전이라는 표현에는 여지를 좀 두어야 한다. 마치 '90년대 음악'이라고 뚝 잘라 10년 단위로 편의상 부르는 것처럼, 내 기억 속의 이벤트들도 대충 잘라 그렇게 말하고 있다.) 무릎에 통증이 생겼고, 걱정이 되었고, 걱정이 되었으나 나이듦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무시하였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안고 사는 만성병같이, 무릎통증을 달고 살게 되었던 것이다. 아주 약간 불편하다가, 조금씩 더 불편하다가, 걱정을 하다가, 걱정만 하다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포기하면서, 내 인생이 원래 그랬던 것처럼 스며들듯이 익숙해져서, 무릎통증은 '안고 사는 디폴트값'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도 분명 튼튼한 무릎을 가지고 젊은 날을 팔팔하게 살아왔을 텐데, 그 기억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걸음이란, 마치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모를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마모되는 과정이므로 무릎이 다소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계단을 오르는 것이란, 에스컬레이터가 없을 때 피치 못하게 하는 고난이도의 걸음으로서, 남들이 눈치채지 못 하도록 신경 써 가면서 상당한 고통을 감수하며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달리기란, 내가 앞으로의 평생 동안 결코 시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 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두려움에 떨면서...


달리기, 평생 시도해서는 안 되는 운동


그렇게 러너가 되어 가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러너가 되지 못 하였다,가 될 수도 있다. 


아직은 한 달 반 정도를 매일 뛰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더워도 무릎보호대를 하고 뛴다. 한 달 반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뛴다'고 하는 것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좀 다르게 봐 주어야 한다. 나는 걷는 것도 아니고 뛰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보폭과 속도로 트랙을 돈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계속 뛴다는 것. 무릎이 아파서 펭귄처럼 기우뚱거리며 무게를 분산해야 하지만 매일 3킬로미터를 뛴다는 것. 뛴다고 정의할 수 없더라도 3킬로미터를, 걷거나 기지 않고 이동한다는 것. 


광고하는 사람으로서 광고로 예를 들자면, 런던 올림픽 기간 중 나이키가 했던 캠페인 [Find Your Greatness] 중 'Jogger' 편의 소년을 들 수 있겠다. 며칠째의 러닝이었는지 기억을 잘 나지 않는데, 고통을 티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뛰다가 문득 내가 달리는 모양이 누구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바로 이 캠페인에서 보았던 소년이었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10년 전의 그 소년처럼 달리고 있다. 나이키와 링크된 것이라고는 "NRC 안 쓰면 러너라고 할 수 없죠"라는 회사 직원(그는 크루들과 함께 러닝을 즐기는 팔팔한 젊은이다)의 조언을 듣고 깐 NRC(나이키 런 클럽) 앱 뿐이지만.

광고 내내, 소년은 카메라쪽으로 달려온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드러나는 소년의 몸매와 표정과 땀과 몸의 출렁거림과, 결정적으로 달리기의 속도는, 위대함이라는 개념에 파문을 던진다.

Nike [Find Your Greatness / Jogger] 유튜브 링크



뛴다고 정의할 수 없더라도 3킬로미터를, 걷거나 기지 않고 이동한다는 것

내가 도는 공원의 트랙은 612미터. 다섯바퀴를 돌면 3킬로미터가 된다. 저 멀리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고 있다.


아직은 시도 단계라 할 이 무리수가 어떤 결과를 낳을 지 모를 일이다. 뛰기 시작한 후 거의 매일의 상태와 기분을 메모해두고 있지만 그건 나중에, 어떤 결과가 나왔을 때 정리해 볼 생각이다. 아직은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시간만이 알 것이다. (아 제발 여기에서까지 며느리를 들먹이지는 말자 ㅜㅜ)


나는 아내에게 선언했다. 


처음의 두 가지 길에서 나는 이미 선택을 했다. 

이대로 무릎을 최대한 덜 쓰면서, 달리기는 꿈도 꾸지 않으면서 늙어 죽는 길.(그래도 모든 계단 위에서, 심지어 평탄하고 평화로운 길 위에서도 나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 무릎상태로도 달리기를 시도하는 길. 


그리고 내 앞에는 두 가지의 새로운 길이 놓여 있다고 했다. 

요행히 달리기를 하면서 몸무게가 줄고 다리에 힘이 붙어 계단을 무서워하지 않게 되는 부활의 길. 아니면 무리하게 달린 결과 무릎이 급격하게 나빠져서 더 큰 고통 속에 빠지고, 다시금 달리기를 꿈도 꾸지 않게 되는 길. 


어떤 길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사실 나는 두렵다. 두려움 속에서 무릎보호대를 하고, 달리기 전에 이미 1만보를 걸으며 워밍업을 하고, 양쪽 무릎에는 젤 형태의 파스를 듬뿍 바르고, 30분 정도의 뛰는 시간만이라도 약기운에 고통을 잊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아, 확실한 건 하나 있다. 

책상에 앉아 있는 지금도 나는 무릎이 아프지만(특히 왼쪽 무릎 아래부분), 오늘 밤에도 공원에 나가 트랙을 '다소 빠르게 이동'할 것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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