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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신 죽겠습니다"

성인 막시 밀리언 콜베와 아프칸에서의 무명 한국 여성

"60대 중반인 나는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


 내 나이 60대 중반을 넘어서지만 죽음은 여전히 두렵다. 살아갈 날이 살아 온 날보다 짧은 데도 그렇다. 죽음 앞둔 많은 중증 환자들이 운명하기 직전까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삶의 애착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의사 친구는 이야기 한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종교계의 성직자들도 죽음 앞에서 보통 사람들보다 더 거부하는 모습을 했다고 호스피스 봉사자는 전했다.


 1941년 여름, 악명 높은 나치 독일의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한 청년이 탈출을 했다. 수용소장 프리쉬는 재발 방지를위해 수감자 10명을 뽑아 금식 감방에 넣어 굶어 죽이도록 했다. 프리쉬가 수감자들을 세워놓고 한 사람씩 대상자를 지목해 갔다. 갑자기 청년 한 명이 울부짖었다. “나는 죽을 수 없어! 아내와 아이들을 만나야 해!” 그 때 한 사람이 프리쉬 앞으로 나섰다. “저 사람 대신 죽겠습니다. 그를 살려 주십시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프리쉬는 “좋다. 그렇게해라”고 허락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막시밀리언 콜베 수사 신부였다. 나치는 젊은 청년을 대신해 죽음을 자청한 콜베 신부를 아우슈비츠 수용소 11동18호 감방에 가두고 15일을 굶겼다. 그래도 콜베 신부가 죽지 않자 나치는 그에게 독극물을 주사해 마침내 살해했다. 1941년 8월14일이다.


<성인 막시 밀리언 콜베 신부>


 ‘나는 상태가 많이 좋아졌으니 다른 이를 풀어달라’, 다른 이에게 석방 양보


우리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다. 오래 산 노인이나 심지어 성직자까지도 죽음 앞에서 의연하기는 어렵다. 예수조차 죽음을 앞두고 ‘쓴 잔’을 피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물며 살아 있는 사람이 그 누구를 대신해 죽기를 자청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능과 의지의 한계를 초월한 행위다. 사랑으로 악에 맞선 콜베 신부는 많은 이의 존경을 받았고 마침내 1982년 가톨릭 성인이 됐다.

 지난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 억류된 한국인 여성 인질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의 석방을 다른사람에게 양보했다고 한다. 한국 정부와 탈레반간에 협상이 실패하면 살해당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석방’을 양보한 것은 보통의 상식과 의지를 뛰어넘는 행위가아닐 수 없다. 가즈니주 카라바그 지역 탈레반 사령관인 압둘라는 “지난 주말 석방 대상으로 뽑힌 여성 두 명에게 ‘집에 갈 준비를 해라’고 통보했더니 한 명이 ‘나는 상태가 많이 좋아졌으니 다른 이를 풀어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압둘라는 “그 여성은 매우 용감했다. 한국 이름이 너무 어려워 정확한 이름을 외지는 못하겠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행인 것은 그후 한국인 여성들이 모두 석방됐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석방 여부와 관계없이 그 여성의 용기는 참으로 대단하다. 성경은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했다. 용기 있는 그 여성이 진정 존경스럽다. 

                                                                                                          <미래교육연구소장 이강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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