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독서 #1. 숲에게 길을 묻다 (1/3)
일주일간의 사격집중훈련이 끝났다.
사격훈련은 작은 실수가 인명피해까지
날 수 있어 모두가 긴장하는 훈련이다.
일주일간 사격장에서 사격통제를 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금요일인 오늘,
일찍 퇴근하고 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오늘은
병사들과 처음으로 독서모임을 하는 날이다.
첫 번째 독서모임.
자유 도서로 모였다.
나는 『숲에게 길을 묻다』로 정했다.
『숲에게 길을 묻다』는
본깨적을 읽으며 저자가
책 속에서 추천한 책이다.
나처럼 절박한 상황인 우리 병사들에게도
공감이 될 만한 내용이 많았다.
모임 진행을 맡으며
나는 우리 각자의 생각을 물었다.
한 명 한 명 서로 책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질문을 했다.
평소 장교의 시선으로
병사들을 봐서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외로 깊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서 놀랐다.
안 그래도 처음 하는 독서모임이라
긴장하고 있었는데 병사들의 수준이
기대보다 높아 더 부담스러워졌다.
데이블 리더로서 내가 준비해
간 책의 내용을 나눴다.
2주 동안 많이 준비했다.
『숲에게 길을 묻다』를 읽고 또 읽고 매일 읽었다.
오늘 이 아이들의 마음에 와닿는 게 없다면
앞으로 독서모임을 영영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이 책을 고른 이유부터 말해줄게.
내가 하도 본깨적 본깨적 해서 너네들도
본깨적이 뭔지는 다들 알 거야.
그리고 본깨적을 쓰신 박상배 본부장님도
어떤 상황에서 다시 일어나신지도 알고 있지?"
"본깨적 책에 많은 추천도서가 나오지만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에필로그에 있는 한 줄 때문이야. "
'필자가 삶의 웅덩이에 빠졌을 때
큰 디딤돌이 된 책이 있다.
바로 『숲에게 길을 묻다』라는 책이다'
본깨적 p.248
궁금했다. 박상배 본부장님처럼 자살을
시도한 적은 없지만 나도 정말 매일
인생의 바닥이라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 디딤돌이 어떤 것인지 경험하고 싶었다.
『숲에게 길을 묻다』는
1막 태어나다
2막 성장하다
3막 나로서 살다
4막 돌아가다
로 구성되어 있다.
4개의 막을 22개의 단어로 설명한다.
22개의 단어 중 내가 나눌 단어는
숙명, 꿈, 놓음이다.
전에는 읽어보지 않았던 프롤로그
본깨적 책을 통해 그 중요성을 깨닫고
프롤로그부터 봤다.
p.13
"내가 정말 나답게 살 수 있을까?
이 새로운 길을 끝까지 걸어가면
내가 닿고 싶은 곳에 닿을 수 있을까?"
저자가 숲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나도 스스로 물었다.
나 다운 게 뭘까?
이 길을 끝까지 걸을 수나 있을까?
내가 닿고 싶은 곳은 있기나 한가?
부대 편제가 줄어들어 선배 둘이 전출 갔다.
내가 전역할 때까지 후임은 없다고 한다.
이제 갓 진급한 중위에게
부대 운영에 관한 많은 부분이 맡겨졌다.
자존감이 이미 바닥인 상황에서 많은 업무들을
하려다 보니 삶의 의욕이 없었다.
바라보는 목표도 없었고
걸어갈 힘도 없었고
기계처럼 살아가는 나였다.
p.15
'그들은 타자의 길을 부러워하지 않는 길을
택해 걷고 있습니다. 이 길은 저다운 꽃을 피워
자기를 실현하면서도 다시 숲 공동체를
살찌우는 방식입니다.'
나는 내 동기들이 부러웠다.
높은 성적으로 많은 경쟁률을 뚫고
군수병과에 들어왔다.
대부분 도시권에 있던 군수부대로
배치받고 싶었다. OBC(초등 군사반) 같은 반
35명 중에서 나 혼자 산골짜기 오지로
부대 배치를 받았다.
서울과 경기도권인 동기들,
강원도지만 춘천, 원주, 강릉 시내에 있는 동기,
같은 인제지만 서울에서 1시간 30분도
안 걸리는 동기.
왜 나만 이 곳에 온 걸까?
비교의식이 내 무의식 속에도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열심히 해야겠다' 마음먹은 지
1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내 무의식 속엔
동기들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이유는
이런 무의식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p.16
'오직 희망인 것들로 그대의 삶이
가득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희망인 것들로 가득 채워진 삶
얼마나 행복할까
희망이라곤 이런 군 생활이 길어봤자
1년 조금 넘게 남았다는 것뿐이었는데..
'나도 매일 희망을 느끼며 살 수 있겠지'
기대감이 생겼다.
프롤로그만 읽었을 뿐인데
이 책을 다 읽은 것 같은 느낌이다.
혼 자 끙끙 앓던 병을
몇 페이지의 책이 싹 낫게 해 준 기분이다.
p.31
모든 생명체의 삶은 숙명으로 시작된다.
누군가는 비옥한 시대, 기름진 자리를 받고
다른 누군가는 가뭄의 시대,
척박한 자리를 받고 태어난다.
금수저, 흙수저 하며 자신들의 가치를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정해버리는
이 시대에 숲이 말하는 한마디가
가슴을 파고든다.
우리는 살면서 매일 매 순간
수많은 선택들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탄생'이다.
인간도, 나무들도 자신이 태어날 자리를
선택할 수 없는 건 똑같다.
p. 35
' 이 숲의 정상부에는 아주 특별한 수형을 지닌
소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그는 여느 소나무처럼
곧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가지를 좌우로 거의 180도쯤 꺾고,
다시 전방으로 90도쯤
꺾은 채 자라는 모습입니다.
대략 20여 년쯤 자란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제 어미 나무 아래에서 발아했습니다.'
어미 나무 아래서 발아한 어린 나무는
어미 나무의 그림자를 피해 빛을 찾아
줄기를 이리저리 꺾으며 자란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어린 나무가 살아남기 위해
투쟁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람이 부모는 선택할 수 없듯이
식물도 자신이 발아할 장소를 선택할 수 없다.
자신이 발아한 그 자리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아무리 척박하고 부족한 자리라 해도
억울해하거나 불평할 수 없다.
오직 어린 나무처럼 매일 투쟁하며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
어린 나무를 통해 나의 지난날을 돌아봤다.
지금 이 곳에서 내가 살아내야 하는
삶은 뒤로한 채 돌이킬 수 없는 과거와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불평하며 억울해하기만 했다.
누구도 내게 ROTC를 하라고 권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될 때,
모든 선택은 나의 자유였다.
선택권이 없던 어린 나무와 달리
이 모든 상황은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진 결과이다.
p.37
생명 각자는 발아한 그 자리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나는 아직 주어진 자리가 억울하다고 분노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나도 우리 부대 병사들도
억울함이 많았다.
아니 남자라면 누구나 억울해할 것이다.
20대 초반 가장 귀한 시간에
군대에서 2년이라니...
병사들은
매일 전역까지 남은 일수를 세기 바쁘다.
일과 후 그들의 가장 큰 낙은
관물함에 있는 달력을 꺼내
지난 하루에 엑스표를 그리는 것이다.
나도 다를 건 없었다.
틈만 나면 핸드폰 배경화면에 있는 어플로
전역 날짜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깐..
그렇게 우리는 2년이라는 시간을
하루하루 빨리 지워나가려 했다.
어리 나무를 통해 본 '숙명'
우리가 지금 이 곳에 있는 것도
숙명이다.
싫든 좋든 군인으로서 지금의 삶을 살아야 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는 주어진 숙명을 살아내야 한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낼지는
내게 주어진 숙명이 아닌
오로지 내 마음에 달려있다.
어린 나무처럼 투쟁하며 이겨내며
하루를 살아낼 것인가
환경에 처한대로
내게 주어진 상황대로 살아질 것인가
내 선택에 달렸다.
퇴근길,
습관처럼 했던 말.
'오늘 하루도 잘 지나갔다...'
숙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자에게
하루는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 1분 1초가 쌓여 하루라는 귀한 선물이 된다.
먼 훗날,
과거를 회상할 때
최선을 다해 쌓은 오늘 하루보다
더 귀한 선물은 없을 것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1년 반이 남은
우리 군 생활을 어떻게 보낼래?
너희도 나도 정말 귀한 시기자나
우리가 이 곳에서 불평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반대로 감사할 이유도 정말 많아.
........ "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불평하기 바빠 지나쳐버린
지난날의 감사한 일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일병, 이등병들만 모인 오늘.
숙명이라는 단어가
나뿐만 아니라 이들의 마음에도
깊은 울림을 준 것 같다.
군대에 한창 적응해갈 시기,
이들에게 숙명이라는 단어가
감사로 다가오길 바라며
숙명에 대한 나눔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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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130
바람 세차게 불어가던 날
내 어미 나를 보내며 기도하셨으리라
너는 부디 그늘지지 않는 땅에 달하라.
숲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하늘의 뜻
커다란 바위, 한 줌 고인
흙 위에서 바람은 멈추었다
나도 멈추었다
빛은 찬란했으나 흙은 목마른 곳,
나를 붙잡은 바위 위에서 나는 울었다
이끼가 부여잡는 물만이 내 목을 적시는 삶
나의 선택은 늘 사막처럼 가난했다.
비바람에 넘어지지 않기 위해 키를 낮추었다.
바위 위에 뿌리를 박기 위해
단 하루도 허리를 펴지 못하였다.
바위를 뚫고 내 삶을 세웠을 때
신과 내 어미, 미소 지었다
나는 바위를 뚫고 자라는 나무다
1. 책으로 인생이 바뀔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