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R코드로 만들어진 세상, 중국
2023년 9월 지인 결혼식으로 중국 베이징으로 향했다. 공항에 내리고, 한 작은 프랜차이즈 식당에 들어갔다. 앉아서 주문을 하려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직원분이 오지 않는다. 직원들이 보이지도 않았다. 기다리지 않고 내가 직접 주문해야겠다 싶어서 주위의 메뉴판을 찾아봤다. 식당 어디에도 메뉴판이 보이지가 않는다. 마침 한 직원이 있어서 메뉴판을 달라고 하니, 식탁에 붙어있는 QR코드로 주문을 하는 거라고 알려준다.
QR코드로 주문을 하라고?
QR코드를 보는 순간 핸드폰으로 작은 사잔의 메뉴를 보는 게 불편했다. 또 어떻게 무엇을 눌러야 할지도 막막했다. 처음에는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이런 시스템을 왜 사용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점주와 현지소비자를 생각해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종업원을 부를 필요 없이 내가 원하는 메뉴를 선택하고 결제까지 손쉽게 할 수 있다. 점주 입장에서 직원 수를 최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식사를 하고도 결제를 하지 않고 가버리는 상황을 방지하거나 메뉴판을 손쉽게 수정,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편하게 앉아서 모바일로 손가락만 튕기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주문, 편리한 결제, 식사 후 결제까지 보장을 해주는 셈이다.
예전에 길거리에서 노숙자가 QR코드로 돈을 구걸하는 것을 보고 편하게 구걸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활 곳곳에서 QR로 결제하는 시스템이 이미 자리 잡았다. 공공 화장실에서도 환경캠페인의 일환으로 QR코드를 인식하면 휴지를 제공한다. 지하철이나 기차를 이용할때도 기차표가 아닌 QR코드로 패스한다. 심지어 거주하는 아파트 현관문에도 QR코드가 있어 외국인들이 주숙등기를 모바일로 등록할 수 있다. (파출소에 갈 필요없이)
QR 코드가 중국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는 2016년부터다. 2020년에서 2023년까지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중국에는 무려 6천억 개의 QR 코드가 사용되었다. 이는 주민들이 핵산 검사를 받을 때나 건물 출입 기록을 남기는 데 사용되었다. 이런 기술이 얼마나 유용했는지, 팬데믹 동안 중국인들에게는 QR 코드로 관리되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22, 23년 코로나 기간에 외국인이 중국 공항에 입국할 때도 위챗으로 QR코드를 스캔하고 본인의 건강검사결과를 제출했다.
QR코드 시스템이 중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한 배경에는 몇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모바일 보급 및 소비자 편의성: 중국 내 스마트폰 보급률이 매우 높고, QR코드는 인터넷 연결이 없어도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이는 결제뿐만 아니라 공공 서비스, 보건, 상업 활동 전반에 걸쳐 QR코드가 널리 채택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비용 효율성: QR코드 시스템은 기존 POS(판매 시점) 단말기보다 설치와 운영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 특히 중소 상인들이 비용 부담 없이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도입할 수 있도록 도와, 경제 전반에 걸쳐 빠르게 확산되었다.
정부의 디지털 경제 정책: 중국 정부는 디지털 경제를 주요 성장 동력으로 삼아, QR코드와 같은 기술을 통해 국가 경제를 디지털화했다. 특히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통해 QR코드를 결제뿐만 아니라 보건, 공공 서비스, 교통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하고 있다.
COVID-19 대응: 팬데믹 동안 중국은 QR코드 기반 건강 코드를 도입해 감염자를 추적하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경제 활동 재개를 동시에 이루었다. 이 기술을 통해 공공 보건 시스템뿐만 아니라 경제 회복에도 큰 역할을 했다.
디지털 위안(DCEP): 중국은 QR코드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위안화(DCEP)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중앙 집중형 디지털 화폐로, QR코드를 사용해 현금 없는 사회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중국 기업이 QR 코드 주문 방식을 채택하는 이유도 정부의 디지털 정책뿐 아니라 QR 제작, 관리에도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많은 식당이 '메이퇀(美团)'이라는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는데 식당이 메이퇀 플랫폼에 등록하면 자동으로 QR 결제 시스템이 제공된다. 이 덕분에 식당은 주문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메이퇀도 그 과정에서 일정한 수수료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메이퇀과 '어러머(饿了么)'를 보면, 2014년부터 지속적으로 성장을 해온 두 외식 배달 플랫폼 기업이다. 1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두 기업을 비교해 보면 메이퇀은 배달 서비스뿐만 아니라, 온라인 주문, 현장 수령, 심부름 대행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공식품부터 신선식품까지 거의 모든 생활 분야를 아우르고 있다. 반면, 어러머는 주로 배달에 집중하며 사용자 경험과 신속한 주문 처리에 강점을 두고 있다. 두 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QR코드, 결제시스템으로 소비자의 생활편의성을 어디까지 확대했는가이다. 메이퇀은 단순히 소비자가 맛집을 찾고 즐기는 것을 넘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 점포와 소비자 사이의 접착제 역할까지 확대하여 거대한 생활플랫폼을 만들었다. QR코드라는 시스템을 적극 활용해서...
또 다른 사례로 Convenience Bee가 있다. 이 브랜드는 중국에서 무인 편의점 사업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으로, QR코드 결제와 디지털 기술을 통해 빠르게 성장한 사례 중 하나다. 2017년에 설립된 이 기업은 자동화 기술을 적극 도입해, QR코드 스캔을 통한 결제와 셀프 체크아웃 시스템을 제공하여 소비자가 매장에서 직접 제품을 선택하고 결제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게했다. Convenience Bee는 2021년까지 2,0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2023년까지 10,000개 매장을 목표로 하며 빠른 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주로 2, 3선 도시로의 확장을 통해 시장을 확대하는 중이다.
병원과 요양원에서는 QR코드를 사용하여 알츠하이머나 치매와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QR코드가 포함된 신원 배지를 착용하게 한다. 이렇게함으로써 병원에서 환자의 의료 정보, 긴급 연락처 등을 빠르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환자가 길을 잃었을 때 도움을 받거나, 의사와 간병인이 환자의 상태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어 생명을 구하는 데도 활용도가 높다.
상하이시가 2019년부터 QR코드 기반 쓰레기 분류 시스템을 도입했다. 각 가정은 쓰레기 봉투에 QR코드를 부착한다. 이를 통해 정확한 분류 상태를 기록하고 추적할 수 있으며, 올바르게 분류된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이 시스템은 재활용률을 크게 향상시키고, 더 효율적인 쓰레기 관리를 가능하게 했다.
코로나가 끝난 후에도 중국의 디지털화는 다양한 분야로 확대하고 있다. 디지털 경제정책의 확대 및 강화를 추진하는 중국이 QR코드를 활용해 전체의 지불시스템을 바꿔나가고 일상에 변화를 주는 모습은 가까운 시일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아 여전히 새로우면서도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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