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고 밤이고 인간이 비겁해지는 시간은 항상 있는 법

알베르 카뮈 <페스트>

by 조쉬코쉬

2025년의 3월이 끝나갈 무렵, 1월부터 시작된 바쁜 시즌은 끝나가는 중이었다. 여느 시즌처럼 어떤 날은 밤을 새기도 하고 어떤 날은 식사를 거르고 종일 일만 한 적도 있었다. 그런 날들이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견딜만했기에 힘들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경험이 쌓이면서 성숙해진 탓인지, 단순히 이 시간이 익숙해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스스로 한 약속이 있었다. 그래도 세 달 동안 세 권은 읽어보자고. 그리고 3월 30일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겨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번 시즌도 어쨌든 끝났다는 생각에 후련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알지 못했다. 바이러스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격렬한 기세로 다시 재발하듯 4월에 예기치 못한 문제들이 벌어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 문제는 5월이 돼서야 겨우 마무리될 수 있었는데 아마도 단일 건으로 보자면 회계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마무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평화를 찾은 듯하다가 다시 예기치 못한 재발로 고생하는 양상이 소설 <페스트>의 흐름과 유사하여 다시 그때의 감상을 되짚게 되었다.


여전히 기억에 남을만한 훌륭한 소설임에는 틀림없지만 초반과 중반에 걸쳐서 가독성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 몇 장 넘기지도 못한 채 내 문해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되었지만, 다행히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증언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위안이 되었는지 그냥 끈기를 갖고 읽기로 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이 친절하냐는 문제는 여전히 다른 문제였다. 특히, 등장인물들을 다양하게 지칭하는 방식이 그렇다. 주인공인 의사 리외의 경우 단순히 ‘리외’라고 지칭할 때가 많지만 어딘가에서는 앞뒤 설명 없이 ‘의사’라고도 지칭하기도 하므로 잠시 멈칫하게 될 때가 있다. 코타르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코타르’라고 지칭할 때가 많지만, 어딘가에서는 그의 형식적인 직업으로 묘사된 ‘대리 판매원’으로써 지칭될 때도 있다. 인물들 간의 대화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도 그런 면은 있었는데 몇몇 대화는 누가 말한 내용인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아서, 다시 읽어봐야 한다거나 대강 알아들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런 부분은 단순히 번역의 문제라고는 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점 역시 큰 틀에서는 보자면 내 부족한 문해력과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점이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효과도 있었는데 나는 부디 이것이 의도된 것이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술술 읽히지 않는 소설은 도저히 집중하지 않고는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내 몸은 바짝 긴장한 상태로 바뀌곤 했다. 문득 매끄럽지 못한 문장 연결과 불친절한 인물들의 명칭 그리고 다소 산만한 분위기가 어쩌면 페스트를 맞이한 한 소도시의 분위기를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한 의도적인 연출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그 소도시에는 페스트를 제대로 경험한 의사가 부족했고 시의적절한 행정 조치도 없었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다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권자들은 그전에나 통할만한 합리성으로 적절한 조치의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이성과 지성으로 똘똘 뭉쳤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내세우는 합리성이라는 것도 결국 경험해 본 일에나 유효한 것이고,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는 여전히 무지한 존재와 다를 바 없음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무지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순수하게 무지한 존재보다 못한 존재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짐작컨대 알베르 카뮈는 그가 표현하고자는 페스트 상황의 분위기를 단순히 이야기 자체뿐만 아니라 문장 스타일에서까지 의도하여 불안, 혼란, 긴장, 속도감을 극대화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이런 짐작을 하던 중에 초반에 나왔던 "서술자"에 대한 설명이 기억나서 다시 펼쳐 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비록 아마추어라고 해도 역사가는 당연히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의 서술자 역시 그 나름의 자료를 가지고 있다. 우선 그 자신의 증언, 그다음으로 자신의 임무로 인해 이 연대기에 나오게 되는 모든 인물의 사적인 이야기의 수집 결과인 다른 사람들의 증언,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수중에 들어온 서류들이다.


이것은 이 소설의 서술자가 나름의 자료들을 가지고 서술하고 있지만 ‘아마추어’라는 한계점을 명확히 함으로써 이야기가 매끄럽지 못하고 애매한 부분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임을 암시한다. 생각해 보면 그 ‘아마추어’적인 서술 방식 덕분에 <페스트>의 현실감이 극대화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페스트>를 알게 된 건 코로나가 세상을 뒤덮었던 때였다. 놀랍게도 60년 전에 나온 이 소설은 최근에 겪었던 코로나의 상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원문 그대로를 살리려고 한 번역의 노력 덕분이었는지, 이 책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는 내가 온전히 읽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체감해 나가는 것에 가까웠다. 불편함이 있기는 했지만 어느 시점부터 언어적 전달을 넘어서 체감하는 방식으로도 소설을 경험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었다.


이 소설을 다 읽은 직후 떠오르는 단어들을 한번 나열해 보았다.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사랑과 아픔,

도덕적 기준의 부재,

인간의 나약함과 강인함의 공존,

추상과 실체,

폭력과 불의.


마지막으로 뇌리에 깊게 박힌 문장 세 가지도 적어보았다.


“종국에 이르러 페스트에 승리했다는 인간의 흔한 어리석은 착각일 것이다.”

“낮이고 밤이고 어느 인간이나 비겁해지는 시간은 항상 있는 법.”

“인간이 페스트나 삶과의 경기에서 얻을 수 있는 전부는 경험과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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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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