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의 중요성은 과장됐다! 비전문가를 꿈꿔도 괜찮은 이유
난 지금까지 쭉 디지털 마케팅 직종에서 일해왔지만 디지털 마케팅의 그 어떤 분야에서도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을 쌓을 만큼 오래 일한 적이 없다. 첫 직장에서는 새로운 서비스의 MVP 테스팅을 담당하다가 4개월 만에 본래 서비스의 소셜미디어 광고를 집행하게 되었고, 두 번째 직장에서는 모바일 앱 마케팅을 담당했다. 세 번째 직장에서는 잠깐 사업 개발을 하다가 그로스 해킹팀을 만들어 총괄했고, 네 번째 직장에서는 콘텐츠 기반의 채용 마케팅을 하다가 이메일 마케팅을 했다. 그리고 다섯 번째인 현 직장에서는 제휴 마케팅을 하고 있다.
이렇게 내 직무는 약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몇 번이 바뀌었는지 세기조차 어려울 만큼 자주, 그리고 많이 바뀌었다. 아마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성공한 인생이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커리어를 설계해 나가야 한다고 외치는 이들은 이런 내 이력을 커리어가 아닌 단순 경력이라 부를지 모른다.
사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수차례의 이직 중 거의 모든 경우가 계획된 이직이 아니었고, 어느덧 반십년의 마케팅 경력을 지녔음에도 자신 있게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산업도, 분야도 없었기에 마음 한편에서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새로운 직장에 입사한 뒤 새로운 동료들을 만날 때마다 일반적으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예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인데, 내가 새로 맡게 될 일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을 했던 사람이라는 답변을 들으면 아주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특히나 내가 지금 있는 제휴 마케팅 업계는 생각보다 좁아서, 신입을 제외하고는 업계 내에서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업계에 어떤 고객층과 경쟁자가 존재하고 우리 회사는 그 경쟁 구도에서 어떤 우위를 가지는지 이미 잘 알고 있는 동료들 사이에서 외부자로서 자리를 잡고 인정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다 잘 알지만 나만 모르는 업계의 지인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구글링을 해도 잘 나오지 않는 업계의 전문 용어들에 파묻혀 한동안 회의감에 휩싸였다. 자꾸만 과거 면접 때 지원 직무 경력이 너무 짧다며 내게 면박을 줬던 모 면접관과 요즘 같은 시대엔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나만의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는 수많은 자기 계발 도서들이 떠올랐다.
하루하루가 배움의 연속이었지만, 나는 새롭게 배운 것들을 마냥 흡수하고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다. 배움은 오히려 궁금증을 낳았다. '왜 빠르게 자동화할 수 있는 작업을 불편하게 수동으로 일일이 하고 있을까? 왜 이 지표는 따로 측정하지 않지? 왜 이쪽 분야로는 사업 개발을 시도해보지 않는 걸까?'
답답함을 느낀 나는 내가 모르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직속 상사를 비롯한 팀원들에게 궁금증을 나눴고, 돌아온 답변은 의외로 간단했다. 지금까지 그래 왔기 때문에.
나는 무엇이든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지금 당장의 성과가 아무리 좋아도 이는 절대적인 최고치가 아니며, 테스팅과 최적화를 통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단지 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시간을 불필요하게 소비하고 사업 개발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입사 2개월 차쯤부터였을까. 나는 내 나름의 가설을 세워 시도하기 시작했다. 자동화할 수 있는 내부 작업은 자동화하여 시간이 얼마나 단축되었는지 비교했고, 측정하지 않았던 지표는 측정하여 이를 통해 KPI상으로 얼마나 유의미한 인사이트가 도출될 수 있는지 확인했다. 제휴를 통해 엄청난 시너지가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던 잠재적 파트너에게는 무작정 콜드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덧 1년이 지났다. 처음 입사 후 불편하고 시간 낭비라고 느꼈던 작업은 이제 꽤나 자동화가 되었고, 관심을 두지 않았던 지표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여 새롭게 제안할 기회가 있는지 살피게 되었다. 인맥 없이는 절대 못 뚫는다던 유수 기업과는 링크드인을 통해 인연이 닿아 결국 얼마 전 독점 제휴까지 맺게 되었다.
그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노력과 성과에 대한 인정도 어느 정도 받았지만, 나는 아직도 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알 수 없는 패배감이나 조바심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전문성의 틀에 갇혀있지 않기에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는 걸 배웠으니까. 그래서 난, 앞으로도 쭉,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하며 비전문가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