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해 온 10년간의 해외 생활, 그 뒤에 감춰진 '진짜' 이야기
내가 한국의 취업 전선에 뛰어든 뒤 가장 극복하기 어려웠던 것은 잘못되고 불필요한 요소들이 너무나도 깊게 자리 잡고 있는 한국의 채용 문화와 이를 당연시 여기는 대다수의 사람들이었다.
취업용 증명사진에만 10만원이 훌쩍 넘는 돈을 쏟는 우리나라의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사진란이 있지조차 않은 이력서를 들고 면접장에 간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외모가 암묵적으로 스펙의 일부로 평가되고, 무조건 복종이 곧 열심으로 간주되며, 낯가림 없이 분위기 주도하는 것이 신입의 패기로 인정되는 사회가 그저 아리송하게만 느껴졌다.
대기업부터 외국계까지, 서류에서 면접까지 줄곧 낙방만 하다가 생각지도 않게 컨설팅사 RA 일을 하게 되었다. 사실 한번 떨어진 회사였는데, 면접 때 나를 좋게 봐주신 면접관님께서 참 감사하게도 다른 프로젝트에 나를 소개해주셨다. 처음으로 접해본 산업과 업무였던 만큼 실수도 많았지만 사수를 잘 만난 덕분에 많이 배우며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약 두어 달만에 하루 다섯 시간 잠을 자며 매진했던 프로젝트는 끝이 났고, 이사님께 컨설턴트로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밝힌 나는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모든 리더가 내 첫 사수와 같지는 않았다. 첫 만남부터 자신의 능력을 자부하며 나의 존재에 의구심을 보였던 차기 프로젝트의 매니저는 본인이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것 같다'는 그 자료를 찾아내지 못하는 내가 무능하다며 모욕을 주곤 했다. 그와 함께 일한 지 일주일 즈음되었을까. 혼자서도 식은 죽 떡먹기로 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왜 일도 못하는 나 따위가 필요한 지 모르겠다는 그의 말에, 그간 나를 지탱해왔던 무언가가 산산조각이 난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날 이후 일주일 정도를 앓아누웠다. 취업 준비 때부터 쌓인 불만과 스트레스가 이미 엄청났던 나는 마침내 한국에서의 구직 활동에 마침표를 찍었다.
나는 대학에서 인사를 전공했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일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면접 도중 능동적인 성격이 장점이라고 소개하던 내게 '저희는 능동적인 신입을 원치 않아요'라고 했던 한국 모 회사부터 인사 직무에 있어 광둥어와 중국어가 필수라는 다수의 홍콩 회사들까지, 내가 인재상에 맞지 않다고 하나같이 말하는 회사들을 보며 실전은 학문과 다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시야를 넓혀야만 했다. 저금한 돈은 슬슬 떨어져 가기 시작했고, 언제까지 백수로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세일즈, 마케팅, 고객지원 등 소프트 스킬(soft skill)로 커버가 가능한 직무에 모조리 지원하기 시작했고, 운 좋게 한국어 능통 마케터를 찾던 홍콩의 한 이커머스 스타트업을 만나게 되었다.
그저 한국을 떠나고 싶었던 마음이 간절했던 나는 그 흔한 공모전 경력, 마케팅 수업 수강 경험 한번 없이, 전공과 무관한 직무로, 그것도 해외에서, 어느 순간 신입 디지털 마케터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참 우연찮은 기회에 나의 업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