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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안나 신 Mar 06. 2018

내가 한국을 떠난 이유 (2)

홀로 해 온 10년간의 해외 생활, 그 뒤에 감춰진 '진짜' 이야기

대학은 서연고가 최고라던 주변 사람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혔고, 홍콩행 비행기에 오르는 내 발걸음은 가볍고 설레기보다는 무겁고 서글펐다. 몇 년간 꿈에서도 그렸던 유학길은 생각보다 훨씬 차갑고, 또 외롭게만 느껴졌다.


첫 번째 위기

입학 첫 해, 인사(HR) 쪽 공부가 하고 싶어 선택한 경영학과 수업은 내 예상과 달랐다. 세부 전공에 관계없이 경영 공통 과목을 필수로 수강해야만 했는데, 통계, 재무, 회계 등 한국어로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을 수업들만 시간표에 빽빽했다. 운 좋게 낙제는 면했지만 2점대의 학점으로 1학년 1학기를 마쳤다.


누가 봐도 낮은 학점이었지만, 당시 내게 취업 따위는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장학금이었다. 학교 규정상 장학금 수혜자는 항상 일정 이상의 평균 학점을 유지해야 했는데, 나는 첫 학기부터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잖아

장학금 중단 통보 이메일을 받고 난 후 별의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냥 다 놓아버릴까 하는 약한 생각도 잠깐 해보았지만, 평소 지기 싫어하는 내 성격상 이렇게 아무런 시도조차 없이 마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넘기고 살아남아야 했다. 아니, 넘기던 못 넘기던 적어도 무언가 해보긴 해봐야 했다.


갓 스무 살을 넘긴 내가 낯선 땅에서 홀로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인간대 인간으로 이야기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어드바이저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왜 내가 첫 학기부터 이런 성적을 받게 되었는지, 내년에는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바꿔 더 나은 성적을 받을 것인지, 이 학교와 장학금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참 많이도 썼다.


편지를 전하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나는 기적처럼 한 번의 기회를 더 얻었다.


변해야 산다

한국의 교육환경이 싫어 떠나왔다고는 하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낸 나의 몸과 마음은 이미 그곳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다.


강의 시간에 교수님이 던진 질문이 과연 정말 대답을 요구하는 질문인지 수사적 질문인지 고민하는 사이 다른 누군가에게 답변을 뺏기기 일쑤였고, 강의와 같이 공개적이고 즉각적인 환경에서의 의견 나눔이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자연스레 떨리는 목소리와 달아오르는 얼굴이 부끄러워 강의 내내 침묵을 지키곤 했다. 오랜 시간 갈구했던 '배움의 장'에서, 나는 혼자 눈치를 보며 관찰만 하고 있었다.


의식적으로 달라져야 했다. 장학금을 위해, 졸업을 위해, 그리고 돈 없고 인맥 없는 '나 같은 사람'도 많은 걸 가진 너네만큼, 혹은 어쩌면 너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2학년이 된 그날부터 나는 수업 내용을 미리 예습하고 방 안에서 혼자 말하기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강의 중 디스커션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운 날이면 교수님들께 이메일로 내 의견을 전하곤 했다. 그렇게 간접적으로 내 머릿속을 몇 번이나 훑고 간 수업 내용은 일부러 외우지 않아도 외운 것처럼 기억이 쉬웠다.


자연스레 성적은 올랐다. 2학년 1학기는 1학년 때보다 딱 1점이 오른 3.7점의 학점으로 끝이 났고, 2학년이 다 끝나갈 무렵, 어느덧 나는 성적 우수자 (Dean's Honours List)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끝?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학사 졸업을 한 나는 곧장 한국으로 향했다. 홍콩은 영어가 완벽하게 통하는 나라가 아니었고 나는 광둥어를 아주 기초적인 수준으로만 구사했기에 어차피 홍콩은 오래 있을 곳이 못된다 생각했다. 사상 최악이라는 취업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도 물론 없지 않았지만, 내 나라가 최고라는 누군가의 말을 되뇌며 홍콩 생활을 정리했다.


그리고 딱 5개월 뒤, 나는 홍콩에서 한국으로 갈 때 가져간 똑같은 짐가방에 짐을 싸 홍콩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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