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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osh Kim Apr 01. 2024

EP13:어려움은 내 곁에 진짜와 가짜를 가리는 기회

인생 바친 사업 끝에, 결국 사람에 대한 교훈만 남았다는 기사님 이야기

미팅 이동을 위해 사무실 밖에 나왔다. 어플로 호출하려고 했지만 마침 지나가는 택시가 있어서 바로 탑승하게 되었다.


나: 동대문 쪽으로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 네 알겠습니다. 동대문 가시는군요. 제가 또 동대문 잘 알죠.


나 : 그러세요? 거기 근처에 살고 계시나요?


선생님 : 아뇨, 제가 동대문에서 아주 오랫동안 일을 했었습니다.


나: 아! 그러셨군요. 이제는 은퇴하시고 택시 운행을 하시는 건가요?


선생님 : 아뇨,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결국 접고 택시 운행을 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오늘도 택시에서의 인생수업이 시작되었다.

나: 동대문에 오래 계셨다면 혹시 옷과 관련된 사업을 하신 건가요?


선생님 : 네, 맞아요. 동대문이 워낙 그쪽 분야로 유명하니까 바로 맞추시네요. 제가 젊을 적에는 우리나라가 이제 막 경제적인 성장을 위해 도약을 위해 수출을 위한 산업들이 발달하던 시기였고 그랬기에 섬유, 옷, 신발 등과 같은 경공업이 아주 호황이었던 시기였죠. 저희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바로 원단 공장에 취직하여 일을 시작했어요.


당시 사장님이 젊고 열심히 일하는 저를 좋게 봐주셔서 기술도 잘 배울 수 있도록 알려주시고 옆에 데리고 다니시면서 이쪽 산업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 주셨어요.


덕분에 제가 대학을 나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쪽 산업에 대해서 더 일찍 더 많이 경험하며 배울 수 있었죠.

연차가 좀 지나자 사장님이 가지고 계시던 작은 사업 하나를 인수해서 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 부분도 사장님께 너무 감사했죠. 제가 저의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고 또 인수 가격도 제 사정에 맞게 최대한 맞춰주셨고요.


얼마나 설레고 기대가 부풀어 오르던지 정말 제 젊은 에너지 모두를 집중해서 그 사업을 잘 만들어가는 데 사용했어요. 그간 사장님께 잘 배우고 좋은 인연들을 많이 소개해주신 덕분에 초반부터 큰 어려움 없이 성장시킬 수 있었죠.


이제는 직원도 고용해 가면서 그들의 월급을 책임지고 또 그들과 함께 회사가 더 성장해 갔어요. 내가 늘 우러러보던 그 사장님처럼 이제는 저도 다른 사람들을 챙기고 또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위치가 되어 얼마나 감회가 새롭던지요. 제가 모시던 사장님도 늘 위로와 격려로 응원해 주셔서 사업이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많이 있음에도 잘 견디면서 운영할 수 있었어요.


나: 대단하십니다. 정말 밤 낮 없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셨을지 짐작이 됩니다. 운영하시면서 어떤 게 가장 어려우셨어요?


사람에 대한 뼈 아픈 경험의 시작, 먼저 내 주위 사람들의 떠나기 시작하다

선생님 : 아고 감사합니다. 후회 없이 열심히 살았죠. 가장 어려운 건 역시 사람이었어요. 다른 건 다 버티고 견딜 수 있었는데 정말 사람에 대한 교훈이 가장 뼈아팠죠.


물론 사업이 잘 될 때는 모든 게 다 괜찮았어요. 주위에 사람도 늘 많았고 우리 직원들도 늘 애사심을 가지고 일하고 했기 때문에… 근데 이쪽 산업이 갑작스레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그 영향으로 우리 사업도 유지하는 것도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하면서 진짜 뼈를 깎는 아픔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이쪽 산업이 잘되다 보니 너무 많은 업체들이 생기면서 단가가 점점 더 내려가기 시작하고 내수시장 또한 한계가 오고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이나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너무나 저렴하게 국내로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을 한 거죠. 저희 주변 회사들도 점점 문을 많이 받기 시작하고요


저도 처음에는 벌어놓은 거 계속 회사에 사용하고 직원들 월급 놓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거래하는 거래처들과의 거래대금도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에 계속 사비를 투입해서 메꿔가면서 버티기 시작했어요.


나: 정말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상상만 해도 너무 마음이 어렵네요.


선생님 : 그렇죠. 사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니까 그때부터 인간관계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더군요. 여기서부터 사람에 대한 아주 뼈저린 교훈을 얻어가기 시작하는데, 어려워지니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였는지 아주 한눈에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맨날 앞에서 늘 형님 형님 하면서 멋지시다 롤모델이시다 이렇게 흔히 아부성 말들을 하던 사람들이 연락도 뜸하고 점점 찾아오는 빈도수도 적어지기 시작하더니 아예 연이 끊어져 버린 경우가 대다수가 되었죠. 제가 늘 모시던 형님 같은 분들도 맨날 여려울 때 도와줄 테니 늘 걱정 말고 연락하라고 하면서 진짜 도움이 필요할 때는 또 연락이 잘 안 되셨었죠.


어려움이 닥치니 보이는 두 부류의 사람

나: 정말 상심이 크셨겠어요.


선생님 : 그랬죠. 분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근데 그건 시작이었어요. 그다음 제일 타격이 컸던 건 제가 고용해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었죠.


딱 두 부류가 있었어요. 일 열심히 하는 거 티 내기 좋아하는 사람들 있죠? 그러면서 정말 회사에 뼈를 묻겠다, 사장님이랑 평생 가겠다고 말로 막 표현하는 사람들, 그런데 뒤에서는 괜히 사소한 불만 불평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가장 먼저 배신하고 나가기 시작하면서 회사 분위기를 망쳐놓기 시작했고 나가면서도 노동청에 신고를 해서 저를 범죄자 마냥 몰아가더군요.


다른 부류는 조용히 자기 일 묵묵하게 하면서 회사 일을 불평불만 없이 잘 감당하는 사람들. 가끔은 직원들이 보지 않을 때 찾아와 사장님 월급 잘 챙겨주시고 이런저런 사정들 잘 봐주셔서 감사하다면서 몸 건강 챙기시라고 비타민이나 음료수 같은걸 사와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자 오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찾아와 회사를 위해서 월급도 일시적으로 줄여서 받겠다면서 회사를 위해 어떤 걸 더 했으면 좋겠는지 물어오더라 거요.


겉으로 봤을 때는 첫 번째 부류의 사람들이 회사를 주도하는 것 같고 특히 작업반장 같은 것도 가장 먼저 되기도 하죠. 저도 그들이 평생 함께 하겠다는 말을 믿고 신뢰했으니까요. 하지만 회사의 어려움이 찾아오니 그때부터 정말 누가 진심으로 회사를 생각했는지, 제가 한 배려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함을 가지고 있는지 한눈에 보였어요.


얼마나 마음이 어렵고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는지 몰라요. 다 포기하고 내려놓고 싶은 생각도 많았는데, 그래도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 즉 진짜였던 사람들을 위해서 이 어려움을  끝까지 잘 감당하면서 마무리하기로 결심하고 빚 변재, 퇴직금, 월급 등 정산하느라 참 고된 생활을 했습니다.


덕분에 사람 보는 눈도 달라지고 또 이 어려움 속에서 묵묵하게 끝까지 곁을 지켜주거나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깊은 감사가 생겼고 이제는 정말 평생 함께할 좋은 사람들이 걸러져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형님 형님하면서 저를 따랐던 동생들이나 모시던 형님들 그리고 배신한 직원들이 모두가 다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정말 일부는 끝까지 저를 도와주기 위해 노력하시던 분들이 있으셨어요. 지금까지도 너무 감사한 마음으로 연락드리고 한 번씩 만나곤 합니다.


나 :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주시고 계시지만 정말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셨을지 감히 상상이 안됩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나를 알아봐 주신 사장님께 묻다, 왜 저에게 잘해주셨나요?

선생님 : 제가 이 일들이 다 마무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한창 찾아뵙지 못했던 사장님을 찾아뵙는 거였어요. 이미 제 사정을 잘 아시는 사장님은 저를 정말 한창 따뜻하게 안아주시더군요. 그래서 왜 젊은 저에게 그렇게 잘해주셨는지 여쭤봤었죠.


그랬더니 그 사장님이 그러시더군요. 자네의 태도와 행동 그리고 말씨를 지켜보니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딱 알았다면서 마음이 선하다는 걸 느끼셨다는군요. 사장님도 오랜 시간 사업을 하시면 이미 이런 사람 저런 사람 경험이 많으셔서 대략 느껴지는 게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 저를 알아주시고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어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꼈습니다.


나 : 선생님을 알아봐 주신 분이 그렇게 든든하게 계시고 끊임없이 응원해 주시고 또 따뜻함으로 감싸주시니 그 관계가 너무나 부럽습니다.


선생님 : 사람 사는데 사람만큼 무서운 게 없지만 또 사람 때문에 살기도 합니다. 인생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마주치지만 얼마나 계산하는지 몰라요.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내 옆에 있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많이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어려움이 있는 건 하늘이 한 번씩 나에게 진짜 필요한 사람들만 남겨주기 위한 기회가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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