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삶의 테두리 안에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기사님 이야기
야근을 하다가 날이 넘어가려는 시점에 이제야 집에 가고자 피곤한 몸을 이끌고 택시를 탔다. 시간이 늦었지만 택시 이용량이 많아서 그런지 몇 번에 시도 끝에 잡힌 택시는 도착하는데 7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나왔다. 오래 걸리는 시간으로 인해 취소하고 다시 잡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잡힌 것에 감사하며 기다림 끝에 택시에 탑승했다.
기사님 : 너무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많이 기다리셨죠? 손님 오래 기다리실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또 얼른 왔습니다.
밝은 미소를 지어 주시며 말씀하셨다.
나 : 괜찮습니다. 택시가 너무 안 잡혀서 걱정했는데 멀리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사님 얼굴을 바라보니 선한 인상을 가지고 계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기사님 : 퇴근하세요? 많이 늦으셨네요?
나 : 네, 야근하고 이제 퇴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기사님도 야근이시네요?
기사님 : 하하, 네 맞습니다. 저는 오늘 야간이라 늦게까지 운행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을 때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 : 선생님, 혹시 젊은 시절 아쉽거나 후회되는 것들이 있으신가요?
선생님 : 공부죠.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나 : 이렇게 망설임 없이 말씀하시는 거 보면 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셨을 봅니다.
선생님 : 네 맞아요. 제 나이 때 많은 분들이 그랬지만 저도 어릴 적 집안 형편이 너무 좋지 않아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어요. 공부를 통해서 머리에 지식을 쌓지 못했던 것이 사회생활 하면서도, 사람들과 대화할 때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하거나 깊은 이야기를 하지 못했어요. 또 손님이 이런 질문 주셨을 때 뭔가 명확한 답이나 명쾌한 말들을 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워요.
나 : 아유 선생님,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답을 원해서 질문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생님 :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인생에서 공부는 끝이 없지만 그래도 기반 지식을 잘 쌓을 수 있는 시기에 저는 일을 하는 바람에 그 시기를 놓쳤죠.
저희 부모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그 시절에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미래를 생각하며 미리 교육에 투자를 하거나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발견해서 그쪽으로 밀어준다던가 이런 개념이 사실 잘 없었어요.
이건 부모님 잘못도 아닌 게 부모님도 잘 모르시기 때문에 그러신 거니까요. 원망되진 않아요. 제 주위도 대부분 비슷한 환경과 상황이다 보니까 꿈을 좇아간다는 것이 현실과 조금 괴리가 있던 일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어쩌면 누군가 만들어 놓은 안전한 테두리를 그대로 내 삶에 가져와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죠. 그 당시에는 얼른 취직해서 기술을 배우거나 돈을 일찍 버는 게 안전한 테두리고 대다수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 주위 그 누구도 대학에 대해서, 장래 희망이나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뭘 좋아하고 잘하고 열정이 있는지 등과 같은 질문들을 저에게 해준 사람이 없었어요. 이런 인생에 중요한 질문들을 던저주는 사람, 요즘 흔히 이야기하는 멘토 같은 사람이 제 곁에 없었던 거죠.
내 주위에 그런 질문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세상이 너무나 크고 다양하고 재밌는 것들이 가슴 뛰는 일들이 가치 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어쩌면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결국 멘토가 없었다는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잔잔한 물은 고이면 결국 썩은 물이 되듯이 잔잔함에 돌을 던져주거나 새로운 물을 계속 부어 넘치게 하거나 때론 뚝을 부셔서 물이 흐르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게 공부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환경이나 나와 다른 사람 또는 나 보다 훨씬 넓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 그리고 아까 말한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을 던져줄 수 있는 사람 등을 통한 자극이 될 수 있겠죠.
물론 잔잔함은 좋습니다. 근데 잔잔함만 있고 자극이 없으면 내 세상에 갇히고 인간으로서 더 성장할 수가 없겠더라고요.
선생님 : 주위에 멘토로 삼는 분들이 있으세요?
나 : 네 있습니다.
선생님 : 운이 좋으십니다. 사실 멘토라는 게 거창하게 생각 안 해도 되는 것 같지 않나요? 뭔가 멘토라고 하면 유명하거나 대단한 사람만이 멘토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편하게 연락할 수 있고 서로 부담되지 않게 만날 수 있는 가까운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죠.
나 : 맞습니다. 저도 정기적으로 연락드리고 또 찾아뵙기도 하고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혹시 인생에 많은 선택과 결정들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좋은 선택과 결정을 위한 선생님만의 기준이 있으신가요?
선생님 : 사실 저는 딱히 그런 기준은 없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9 남매인데 그 속에서 자라면서 오로지 매일매일 살아가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딱히 뒤를 돌아보거나 깊은 고민 가운데서 신중하게 결정할 시간이 없었어요.
늘 뭐든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게 있다면 되게 심플하게 생각했어요. 오히려 길게 그리고 깊게 고민할수록 미궁으로 빠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보통 1안이 있고 2안이 있다면 둘 중에 고르면 되는데 사람들은 굳이 계속 고민하면서 3안과 4안까지 만들어 버리니까 힘든 것 같아요.
인생도 인간관계도 선택과 결정도 심플하면 심플할수록 좋아요. 물론 제 개인적 의견입니다.
우리나라는 인간관계도 복잡하고 도시도 복잡하고 암튼 여러 가지로 복잡한 사회잖아요? 그런 환경 속에 있다 보면 생각도 시간도 삶도 계속해서 복잡하고 번잡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때론 심플하게 정리하는 시간들이 한 번씩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 : 공감이 많이 됩니다.
선생님 :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시는 거 보니까 요즘 고민이 많으신가 봐요? 살아가기 참 힘들죠?
순간 울컥했지만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 : 네 선생님…
선생님 : 많이 힘들고 어려우시겠지만 매 순간 열심히 그리고 조금 버텨가다 보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저희가 9남매잖아요. 생각만 해도 참 막막하잖아요? 어릴 적에도 그렇고 참 걱정이 될 때가 많이 있었거든요. 다들 잘 살 수 있을지 굶지 않고 먹고살 수 있을지. 근데 돌아보면 다들 각자 자리에서 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면서 중간중간 이런저런 기회들과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 결국 별문제 없이 다들 잘 살고 있어요.
사람이 정말 죽는 법이 없더라고요. 절벽에 몰린 것 같을 때 동아줄이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도 살면서 좋은 날들은 한 번씩 오더라고요. 이래서 인생이라는 게 참 어렵기도 재밌기도 한 것 같아요. 내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말이죠.
다만 삶을 대하는 태도와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기회와 좋은 날에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