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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osh Kim Apr 10. 2024

EP15:사번 60번으로 들어간 회사가 대기업 되기까지

사번 60번 기사님이 대기업의 흥망성쇠 보며 느낀 것들 part.1

퇴근을 준비하는 와중에 날씨 예보에도 없던 소나기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얼른 택시를 호출했다. 택시가 도착하자 나는 냅다 뛰어 빠르게 탑승했다.


나 : 안녕하세요.

기사님 : 네, 안녕하세요 우산이 없으신가 봐요? 갑자기 비가 많이 오죠?


나 : 네, 좀 기다렸다 가려고 했는데 영 그치지 않아서 얼른 택시를 불렀네요.

기사님 : 잘하셨습니다. 여기서 회사 생활하시는 거예요?


나 : 네 맞습니다.

기사님 : 저도 여기 근처에서 오래 회사생활 했었는데, 이 건물은 스타트업 많이 있는 곳이죠?


: 오 네! 잘 아시나 보군요. 이 동네 오실 때마다 옛 생각들이 많이 드시겠어요?

기사님 : 그럼요. 제가 여기 근처에 있는 회사에서 첫 커리어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있었으니, 이 동네는 빠삭하죠. 제 젊음의 시간들을 다 보낸 곳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억이 많이 나죠.


나 : 그러시군요. 여기 대기업이 주로 많이 있었던 곳이라고 들었는데, 유명한 곳에 계셨던 모양입니다.


선생님 : 하하 뭐 나름 그렇죠. 대기업에 취직해서 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근데 신입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게 자회사로 분리되면서 아예 그 회사 소속으로 가게 되었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조금 불만이 있었죠. 들어간 대기업에서 일을 하길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갑작스레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 거니까요. 왜 나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어요. 근데 결과적으로만 말씀드리면 사실 제 인생에서 가장 행운이었던 순간이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면서 인생의 너무 감사한 순간이 되었어요.


나 : 그러셨군요? 돌아보시니 어떤 부분에서 행운으로 생각이 되셨나요?


때론 인생에 뜻하지 않은 두 갈래 길이 찾아온다.

선생님 :  그 당시 이 프로젝트가 미래 산업, 미래 먹거리를 위한 프로젝트였고 결과적으로 그룹에서 가장 훌륭하게 성장하고 돈이 되는 회사가 되었어요. 제가 그 과정 속에 있었다는 게 여러 가지 의미로 행운이었죠. 물론 회사가 흥망성쇠가 있었고 제가 퇴직하던 쯔음에는 다른 회사로 매각되기도 했지만요.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제가 만약 이 프로젝트에서 그냥 원 소속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다면 아마도 오히려 좀 더 일찍 다른 곳으로 이직을 했어야 했거나 나가게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비록 조금의 리스크는 있었지만 결국 좋은 리턴으로 저에게 돌아온 것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낍니다. 한때 직원이 거의 만 명 가까이 되었는데, 처음 제가 합류할 때는 약 5~60번대 사 번을 받고 들어갔어요. 물론 만 명이라는 게 정규직 말고 비정규직까지 포함해서 숫자입니다. 회사가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경험을 한다는 건 정말 행운이죠.


때론 인생에 이렇게 뜻하지 않은 두 갈래 길이 자연스레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보장된 길이고 모두가 가고 싶어 하는 길이고 또 한 길은 어떻게 될지 미래를 알 수 없는 불안정한 길이지만 아무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걸어가야 할 때 말이죠. 근데 인생에서 한 번쯤은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가본 적 없는 길을 내가 걸어가는 도전은 한 번쯤 꼭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끝에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인생에서 그 보다 귀한 경험은 얻기 어렵다는 생각이에요.


나 : 좋은 말씀이십니다. 와… 50~60번대 사 번에서 1만 명까지.. 새로운 프로젝트로 시작해서 큰 기업이 되는 과정 속에서 배우고 경험하신 것들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것들이 기억에 남으시나요?


작은 조직에서 커리어 시작을 두려워하는 분들께.

선생님 : 제가 처음 합류할 때에는 100명도 안 되는 지극히 작은 조직이다 보니까 서로 이름도 잘 알고 같이 밥도 많이 먹고 하면서 인간적으로도 잘 알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서로 되게 소통이 잘 되었어요. 이게 작은 조직 규모에서는 되게 좋은 장점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일을 진행하며 답답함을 거의 느끼지 못했었죠. 지금으로 치면 약간 스타트업? 같은 느낌이었는데 신사업처럼 여러 변화와 불확실성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빠르게 성장하기에 정말 딱 좋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서로를 잘 아니까 신뢰감도 있고 그게 업무 하면서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대기업에서 진행하는 신사업이라 솔직히 무조건 성공시켜야 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불확실성이라는 바다를 함께 항해해야 하니까 전우애가 가득했었죠. 그때 그 기억이 참 좋은 추억으로 아직까지 남아있어요.


작은 조직 규모에서의 좋은 기억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다들 너무 대기업 대기업 하면서 큰 조직에 가길 원하잖아요? 그냥 월급 따박따박 받고 무난하게 안정된 회사 생활하고 싶다면 별로 상관없다고 생각됩니다만 혹시나 개인적인 역량 강화나 실력 향상에 욕심이 있다면 이런 작은 조직에서 경험을 쌓아가는 거 정말 추천드립니다.  그래서 어른들도 그렇고 젊은 분들도 그렇고 무작정 작은 조직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반감은 정말 잘못된 생각인 것 같다는 게 제 개인적 의견입니다.


큰 조직에 들어가 어느 정도 직급이 올라가지 전까지는 뭔가 주도적으로 일을 하면서 좋은 실적을 만드는 모습을 보일 수 있는 기회는 정말 많이 없거든요. 그래서 회사 부품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냥 매일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인생에 대한 무력감도 느껴지기도 하고요. 근데 작은 조직일 때는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성과나 실적이 너무나 명확하게 보이고 리더들에게도 금방 인정받고 주위 팀원들에게도 그럴 수 있으니 그 성취감과 심리적 보상은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그게 자꾸 일을 더 잘하게 만드는 원동력도 되고 저 자신을 성장시키는 좋은 자양분이 되었죠.


좋은 리더와 열정 가득한 팀을 만나는 건 큰 행운.

그 무엇보다 사실 가장 좋았던 것은 새로운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유능하신 분들이 대거 팀을 이끄는 리더로 합류되어 정말 좋은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어요. 이런 리더분들과 가까이서 함께 업무를 하고 그들의 일하는 방법들을 옆에서 직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어요. 저 같은 신입에게는 이게 정말 행운이었죠. 제 개인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그리고 좋은 리더들이 팀을 이끌다 보니까 자연스레 팀에 열정 많고 배우고 싶고 뭔가 증명하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어요. 뛰어난 리더와 열정 많은 팀원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정말 힘들기도 하지만 개인들에게는 이만큼 좋은 환경이 없죠. 인생에서도 어떤 환경에 태어나고 자라는지가 중요하다고 하듯이 회사도 어떤 환경인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훌륭한 사람들 옆에 있으면 내가 부족해도 그들을 자꾸 따라가고 그들과 경쟁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크게 성장해 있는 자신을 보고 가끔 놀라곤 했어요.


따라서 결국 리더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죠. 좋은 리더들이 조직 내에서 어떤 효과들을 가지고 오는지 그리고 그게 각 팀과 사업에 얼마나 중요한 구심점이 되는지 많이 깨달을 수 있었어요.


작은 조직에서 일을 시작했다 보니, 리더들에게 많은 영감을 받고 따로 중간관리자 교육 프로세스가 잘 잡히지 않았어도 자연스레 중간관리자로 잘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너무 좋았어요. 중간관리자 역할이 너무 중요하거든요. 근데 좋은 리더들과 옆에 붙어 일하다 보니 그들의 리더십과 중간관리자로서의 역량을 저도 많이 따라 하고 있었어요. 자연스레 아래 팀원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그러면 조직이 커짐에 따라서도 계속 좋은 실적과 평가를 받을 수 있었죠. 그게 정말 감사해요. 그래서 제가 중간에 이직을 하거나 쫓겨나지 않고 정년까지 마칠 수 있었으니까요. 행운이죠.


회사의 망과 쇠를 지켜보며

반대로 안 좋았던 기억들도 있어요. 회사가 좀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고용되고 점점 조직이 커지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작용들이 있었죠. 사람들 간에 건강한 경쟁이 이제는 정치가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 회사를 떠나게 하는 이슈들도 발생했었죠. 서로 또는 팀에 대한 신뢰감보다는 이제는 대기업화 되어서 자기의 이익이나 월급을 어떻게 하면 편하게 받아갈지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열정보다는 각자도생의 느낌이 강하게 되었죠.


오히려 제가 존경하고 우러러보는 리더들의 시간은 참 짧았어요. 정말 열심히 일하시고 좋은 결과들을 만드셨는데, 다른 곳들로 많이 흩어지셨거든요. 좋은 리더들이 빠지니 자연스레 인재들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외부 임원들이 들어오면서 실적에 대한 압박감이 조직에 엄청 커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 리더들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실적 부풀리는 것이 중요했어요. 이게 엄청난 실수였어요. 사실 겉으로, 숫자적으로는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 국내 최대라는 타이틀이 멋진 성취라고 보이지만 그게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와 회사를 벼랑 끝 위기까지 몰렸었거든요. 실적 불리기 위해 사용된 여러 방법들이 여러 부작용과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을 했고 그게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위기를 만들기 시작했죠. 그게 계기가 되어서 결국 다른 곳으로 인수되는 일까지 벌어졌고요. 회사가 성장하는 데는 정말 많은 이들의 희생과 어려움이 있지만 정말 추락하는 건 한순간이더라고요.


다행히 인수하는 회사가 정규직 전원 고용 인수를 발표함으로 저도 계속 일을 하고 결국 인수된 회사에 조금 더 다니다 정년을 하게 되었어요. 참 안타까웠죠.


나 : 선생님의 경험을 듣고 있으니까 정말 흥망성쇠에 대한 인사이트가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회사 생활 하시면서 뿌듯했던 순간 없으신가요?


선생님 : 회사 생활하면서도 뿌듯한 게 당연히 있었지만 그 질문을 받으니 갑자기 최근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나네요. 제가 팀을 이끌 때 들어왔던 막내 여자직원이 있었어요. 막 대학 졸업하고 들어온 신입 직원인데,  어느 날 신문을 보니까 임원으로 되었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는데 얼마나 뿌듯하던지요. 실수하고 잘못해서 혼나고 그랬던 순간들이 아직도 기억나거든요. 다만 굉장히 똑똑했고 끈기 있고 밝고 사회성이 굉장히 좋은 친구여서 잘할 거라 생각은 했는데, 그런 친구가 임원까지 되었다니까 너무 기분 좋았던 기억이 있네요.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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