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지각생이던 친구의 비하인드 스토리, 참을인의 참된 뜻, 그리고 부도
회사 일로 인해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가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마침 택시가 밤이지만 낮처럼 밝은 강남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 : 정말 강남은 불이 꺼지지 않는 것 같네요.
기사님 : 강남, 정말 천지개벽한 동네죠. 제가 고등학생 때 강남에 있던 학교를 다녔었거든요. 그때는 정말 논과 밭 그 자체인 동네였는데 말이죠, 정말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어요.
나 : 그러셨군요? 지금은 강남 하면 교육 그리고 잘 산다는 키워드가 있는데, 그때는 어땠나요?
선생님 : 지금은 강남 8 학군이라고 하면서 명문 학교들이 생기고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전한 학교들도 생기면서 교육의 성지가 되었지만 그때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거기 있는 고등학교를 다닌다고 해서 공부를 잘하거나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흔히 배정돼서 다니던 시절이었죠.
저희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절대 그러면 안 되지만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한테 참 많이 맞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가 들어보니 지금은 뭐 교권 추락이라고 해서 아이들 건들기만 해도 부모님들이 변호사 대동하고 학교를 간다고 하는데, 저희 때도 심했지만 지금도 참 극단적인 것 같아요 중간이 없이.
당시 나라도 전쟁 일어나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불안정했고 다들 가난하던 시절이어서 그런지 특히 남자아이들이 많이 거칠고 반항기가 가득했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맞을 짓들을 참 많이 하긴 했어요 돌아보면 다 추억이지만요.
나 : 그러셨군요. 혹시 학창 시절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이내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선생님 : 오랜만에 고등학생 시절 기억해 보니 많은 것들이 떠오르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도 제 뇌리에 인상 깊게 남은 친구 한놈에 대한 기억이 있어요. 이 친구는 정말 늘 꼴찌로 등교하던 친구였거든요. 학교에서도 아주 유명했어요 만년 지각생으로. 그래서 졸업할 때쯤 진지하게 한번 물어봤었어요. 왜 이렇게 맨날 지각을 했었냐고, 어떻게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맨날 지각하냐고 말이죠.
그 친구가 웃으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알고 보니 그 친구는 경기도에 살고 있었어요. 통학하는데 걸어서 4시간씩 해야 했고 그렇기에 매일 새벽 4시에 출발했었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놀랐어요 왕복도 아니고 편도가 4시간이라니. 그런데 그걸 3년 내내 했다는 것이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 물어보면서 그 배경을 알게 되었어요.
그 친구 집이 워낙 가난해서 버스를 탈 수도 없었고 버스 노선도 거의 없던 시절이라서 어쩔 수 없이 걸어 다녔더라고요. 아버지가 교육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꼭 졸업하길 원하셨고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 먼 곳에서 매일 통학했다고 하더라고요. 늘 가장 늦게 등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으니 납득이 되는 동시에 정말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죠. 더더욱 그랬던 것은 그 친구가 늘 지각해서 학교에 왔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도 듣고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제가 잘 알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어요.
그러면서 그 친구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죠. 그 친구의 아버지는 군인 출신으로 전쟁에 참여하셨던 참전용사셨고 안타깝게도 그때 당한 부상이 호전되지 않고 악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전역을 하게 되었더라고요. 그로 인해서 집이 급격하게 어려워졌고요. 그런 아버지는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셨고 사랑하는 아이들이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어려운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답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꼭 잘 배우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다고… 그렇게 생각만 하시고 강조만 하셨던 것이 아니라 어릴 적에는 아이들을 리어카에 실어서 통학시키실 정도 아이들 교육에 정말 진심이실 뿐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도 보여주셨다고 해요.
군인 출신이셨기 때문에 조금은 엄한 집안에 분위기긴 했겠지만 그로 인해서인지 친구 놈은 정신력도 참 강했고 흐트러짐이 없었어요. 또한 엄한 면모 반대편에 있는 자식들을 향한 그 사랑이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서 그런지 그 친구를 보면 참 심성도 착하고 바르게 살았던 친구로 항상 기억되고 있어요.
그 친구도 교육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과 그 정성을 잘 알기에 누구나 포기했을 법한 상황 속에서도 통학을 꾸준히 하며 공부를 이어갔던 것이었어요.
그 친구는 고등학교에서 멈추지 않고 결국 우리나라 최고로 좋은 3개 학교 중에 한 곳에 들어갔어요. 고등학교 이후에 연락이 끊어지긴 했지만 나중에 건너 듣고 또 제가 찾아보기로는 훌륭하게 커서 멋진 일들을 많이 했더라고요. 그 친구는 잘 될 줄 알았고 멋진 삶을 살 것 같아서 늘 응원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잘 된 것을 보면 역시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희 세대가 부모가 되고 또 그 이후 세대인 요즘 부모들도 그렇고 자기 아이들이 편한 삶을 위해서 집이나 돈과 같이 재정적인 것을 악착같이 마련해서 물려주려고 노력하잖아요. 돈을 버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들은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에…그런데 제 친구만 봐도 가정의 경제력보다는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이 아이들에게 더 큰 삶의 영향력을 주더라고요. 바른 마음과 심성을 물려주는 것이 최고의 유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금까지도 하게 됩니다.
저 또한 그 친구로 인해서 제가 부모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고 그 친구의 부모님처럼 저희 자식들에게 해보았어요. 부모로서 참 부족함이 많았지만 크지 않은 집에서 함께 웃으면 밥을 먹을 수 있는 가족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지 그것들이 본인들의 잠재력으로 펼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며 진로를 찾아가도록 관심을 가지고요. 돈으로 많은 걸 해줄 순 있지만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들을 채워줄 순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부부사이, 정직함, 따뜻함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모범이 되어 보여주고 그런 아이들로 자라도록 노력했었어요.
그렇게 해보니까 정말로 아이들이 그 만년 지각생 친구처럼 늘 밝고 성실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좋은 영행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지금 우리 아이들 각자 멋지게 잘 살고 있거든요. 지금도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 웃음 가득하게 대화하며, 예전 어려웠던 시간들에 대한 추억들도 계속 공유하고요. 경제적 기반을 물려주는 것, 물론 있으면 좋지만 그것보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그때 어떤 차가 교통법규를 무시한 채 갑자기 택시 앞으로 확 들어와 급 브레이크를 밟아 기사님과 나는 앞으로 쏠렸다.
선생님 : 손님, 괜찮으세요?
나 : 네네 괜찮습니다.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많이 놀라셨죠? 매일 이런 상황들이 마주 하실 텐데, 스트레스가 굉장하시겠어요.
선생님 : 다행히 제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성격이라서 괜찮아요.
나: 그러세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이겨내는 선생님만의 비결이 있으신가요?
선생님 : 사실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당겨서 걱정하고 힘들어하거나 다른 사람들로 인해 나를 아프게 하거나 등으로 인해 참고 참다가 병이 나는 것이죠. 결국 내 마음이 심히 요동함으로 인해서 그 파도에 내가 쓸려가 버리는 거죠. 그런 관점에 참을 인이라는 한자를 보면 마음심이라는 한자 위에 칼날 인이라는 한자를 쓰고 있어요. 내 마음 위에 늘 칼이 있다는 것이고 잘 다스리지 못하면 언제든 그 칼이 나를 다치게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나 또는 다른 사람이 그 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다치게 하면 안 되는 것이죠. 물론 어렵긴 하지만 생각이라도 그렇게 하고 사소한 것부터 연습을 하면 점점 더 평정심과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이 생겨날 거예요.
예를 들어, 손님도 운전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운전이 지금 제 주업이니까 매일매일 조금 전과 같은 상황처럼 얼마나 속으로 욕할만한 상황들이 많이 생기겠어요. 그럴 때 조금 여유를 가지고 욕하는 것부터 멈춰보기 시작하는 거죠. 내 마음 위에 있는 칼르리 저 사람이 쥐고 내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나 : 선생님은 살면서 후회되거나 아쉬운 거 없으셨나요?
선생님 : 좋은 질문이신데, 제 삶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있다기보다는 제가 직면했던 상황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어요. 이 택시 운전하기 전에 사업체를 하나 운영했었는데 그게 부도가 났었거든요.
무슨 대단한 기업을 이룬 건 아니고 작게 하나 운영했던 건데, 제 젊음의 시간과 땀과 눈물 모두 쏟아보았지만 결과가 그렇게 되고 말았죠. 후회되냐? 아니요.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그런 건 내 잘못도 있겠지만 운도 따르지 않아서 그런 거니까요. 저만 탓할 필요는 없는 거죠. 다만 내가 벌려놓은 일을 수습하고 돈도 갚고 해야 하는 게 중요하니까 그 문제를 얼른 처리해야겠다 하고 모든 걸 얼른 내려놓고 그때부터 택시를 시작했어요. 10년 좀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 모든 상황을 해결하는데. 후회하거나 아쉬울 시간조차도 아까워서 열심히 일하는데 집중했었죠.
부도를 겪고 나니까 정말 가족밖에 안 남더라고요. 사업을 하며 더 많이 챙기지 못한 제 와이프에게 미안함도 있고 그래서 더 악착같이 이 상황들을 빨리 해결하려고 노력했죠.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삶의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부도가 딱 난 순간 뭔가 자동으로 착착 정리되는데, 그 경험이 정말 신기했어요. 앞으로 어떤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간을 쏟고 살아야 할지 말이죠.
부도를 겪을 때 참 힘들었지만 덕분에 앞으로 남은 제 인생에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하고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삶에 한번 이상은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찾아오곤 합니다. 근데 그것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이고 그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기회가 되기도 또한 절망의 깊은 수렁으로 빠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래도 잘 받아들이고 좋은 기회로 삼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