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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osh Kim May 24. 2024

EP17:기사님 삶에 영향을 준 만년 지각생 친구이야기

만년 지각생이던 친구의 비하인드 스토리, 참을인의 참된 뜻, 그리고 부도

회사 일로 인해 늦은 시간까지 일하다가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마침 택시가 밤이지만 낮처럼 밝은 강남을 지나가고 있었다.


나 : 정말 강남은 불이 꺼지지 않는 것 같네요.


기사님 : 강남, 정말 천지개벽한 동네죠. 제가 고등학생 때 강남에 있던 학교를 다녔었거든요. 그때는 정말 논과 밭 그 자체인 동네였는데 말이죠, 정말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어요.


나 : 그러셨군요? 지금은 강남 하면 교육 그리고 잘 산다는 키워드가 있는데, 그때는 어땠나요?

선생님 : 지금은 강남 8 학군이라고 하면서 명문 학교들이 생기고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전한 학교들도 생기면서 교육의 성지가 되었지만 그때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거기 있는 고등학교를 다닌다고 해서 공부를 잘하거나 그랬던 건 아니었어요. 흔히 배정돼서 다니던 시절이었죠.


저희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절대 그러면 안 되지만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한테 참 많이 맞기도 하고 그랬어요. 제가 들어보니 지금은 뭐 교권 추락이라고 해서 아이들 건들기만 해도 부모님들이 변호사 대동하고 학교를 간다고 하는데, 저희 때도 심했지만 지금도 참 극단적인 것 같아요 중간이 없이.


당시 나라도 전쟁 일어나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불안정했고 다들 가난하던 시절이어서 그런지 특히 남자아이들이 많이 거칠고 반항기가 가득했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맞을 짓들을 참 많이 하긴 했어요 돌아보면 다 추억이지만요.


나 : 그러셨군요. 혹시 학창 시절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3년 내내 지각할 수 밖에 없던 고등학교 친구 이야기와 그의 부모님

선생님은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이내 다시 말씀을 이어가셨다.


선생님 : 오랜만에 고등학생 시절 기억해 보니 많은 것들이 떠오르는데, 그중에서 지금까지도 제 뇌리에 인상 깊게 남은 친구 한놈에 대한 기억이 있어요. 이 친구는 정말 늘 꼴찌로 등교하던 친구였거든요. 학교에서도 아주 유명했어요 만년 지각생으로. 그래서 졸업할 때쯤 진지하게 한번 물어봤었어요. 왜 이렇게 맨날 지각을 했었냐고, 어떻게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맨날 지각하냐고 말이죠.


그 친구가 웃으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알고 보니 그 친구는 경기도에 살고 있었어요. 통학하는데 걸어서 4시간씩 해야 했고 그렇기에 매일 새벽 4시에 출발했었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놀랐어요 왕복도 아니고 편도가 4시간이라니. 그런데 그걸 3년 내내 했다는 것이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느냐 물어보면서 그 배경을 알게 되었어요.


그 친구 집이 워낙 가난해서 버스를 탈 수도 없었고 버스 노선도 거의 없던 시절이라서 어쩔 수 없이 걸어 다녔더라고요. 아버지가 교육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셨기 때문에 고등학교를 꼭 졸업하길 원하셨고 그래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 먼 곳에서 매일 통학했다고 하더라고요. 늘 가장 늦게 등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으니 납득이 되는 동시에 정말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들었죠. 더더욱 그랬던 것은 그 친구가 늘 지각해서 학교에 왔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도 듣고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제가 잘 알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어요.


그러면서 그 친구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죠. 그 친구의 아버지는 군인 출신으로 전쟁에 참여하셨던 참전용사셨고 안타깝게도 그때 당한 부상이 호전되지 않고 악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전역을 하게 되었더라고요. 그로 인해서 집이 급격하게 어려워졌고요. 그런 아버지는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셨고 사랑하는 아이들이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어려운 시간의 터널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답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꼭 잘 배우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다고… 그렇게 생각만 하시고 강조만 하셨던 것이 아니라 어릴 적에는 아이들을 리어카에 실어서 통학시키실 정도 아이들 교육에 정말 진심이실 뿐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도 보여주셨다고 해요.


군인 출신이셨기 때문에 조금은 엄한 집안에 분위기긴 했겠지만 그로 인해서인지 친구 놈은 정신력도 참 강했고 흐트러짐이 없었어요. 또한 엄한 면모 반대편에 있는 자식들을 향한 그 사랑이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어서 그런지 그 친구를 보면 참 심성도 착하고 바르게 살았던 친구로 항상 기억되고 있어요.


그 친구도 교육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과 그 정성을 잘 알기에 누구나 포기했을 법한 상황 속에서도 통학을 꾸준히 하며 공부를 이어갔던 것이었어요.


그 친구는 고등학교에서 멈추지 않고 결국 우리나라 최고로 좋은 3개 학교 중에 한 곳에 들어갔어요. 고등학교 이후에 연락이 끊어지긴 했지만 나중에 건너 듣고 또 제가 찾아보기로는 훌륭하게 커서 멋진 일들을 많이 했더라고요. 그 친구는 잘 될 줄 알았고 멋진 삶을 살 것 같아서 늘 응원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잘 된 것을 보면 역시 아직 세상은 살만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희 세대가 부모가 되고 또 그 이후 세대인 요즘 부모들도 그렇고 자기 아이들이 편한 삶을 위해서 집이나 돈과 같이 재정적인 것을 악착같이 마련해서 물려주려고 노력하잖아요. 돈을 버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들은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에…그런데 제 친구만 봐도 가정의 경제력보다는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이 아이들에게 더 큰 삶의 영향력을 주더라고요. 바른 마음과 심성을 물려주는 것이 최고의 유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금까지도 하게 됩니다.


저 또한 그 친구로 인해서 제가 부모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고 그 친구의 부모님처럼 저희 자식들에게 해보았어요. 부모로서 참 부족함이 많았지만 크지 않은 집에서 함께 웃으면 밥을 먹을 수 있는 가족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지 그것들이 본인들의 잠재력으로 펼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며 진로를 찾아가도록 관심을 가지고요. 돈으로 많은 걸 해줄 순 있지만 아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들을 채워줄 순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부부사이, 정직함, 따뜻함 등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모범이 되어 보여주고 그런 아이들로 자라도록 노력했었어요.


그렇게 해보니까 정말로 아이들이 그 만년 지각생 친구처럼 늘 밝고 성실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좋은 영행을 주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지금 우리 아이들 각자 멋지게 잘 살고 있거든요. 지금도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 웃음 가득하게 대화하며, 예전 어려웠던 시간들에 대한 추억들도 계속 공유하고요. 경제적 기반을 물려주는 것, 물론 있으면 좋지만 그것보다 아이들에게 무엇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참을 인의 참된 뜻

그때 어떤 차가 교통법규를 무시한 채 갑자기 택시 앞으로 확 들어와 급 브레이크를 밟아 기사님과 나는 앞으로 쏠렸다.


선생님 : 손님, 괜찮으세요?


나 : 네네 괜찮습니다.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많이 놀라셨죠? 매일 이런 상황들이 마주 하실 텐데, 스트레스가 굉장하시겠어요.


선생님 : 다행히 제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성격이라서 괜찮아요.


나: 그러세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이겨내는 선생님만의 비결이 있으신가요?


선생님 : 사실 대부분의 스트레스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당겨서 걱정하고 힘들어하거나 다른 사람들로 인해 나를 아프게 하거나 등으로 인해 참고 참다가 병이 나는 것이죠. 결국 내 마음이 심히 요동함으로 인해서 그 파도에 내가 쓸려가 버리는 거죠. 그런 관점에 참을 인이라는 한자를 보면 마음심이라는 한자 위에 칼날 인이라는 한자를 쓰고 있어요. 내 마음 위에 늘 칼이 있다는 것이고 잘 다스리지 못하면 언제든 그 칼이 나를 다치게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나 또는 다른 사람이 그 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다치게 하면 안 되는 것이죠. 물론 어렵긴 하지만 생각이라도 그렇게 하고 사소한 것부터 연습을 하면 점점 더 평정심과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이 생겨날 거예요.


예를 들어, 손님도 운전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운전이 지금 제 주업이니까 매일매일 조금 전과 같은 상황처럼 얼마나 속으로 욕할만한 상황들이 많이 생기겠어요. 그럴 때 조금 여유를 가지고 욕하는 것부터 멈춰보기 시작하는 거죠. 내 마음 위에 있는 칼르리 저 사람이 쥐고 내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부도를 이기내며 느낀 점

나 : 선생님은 살면서 후회되거나 아쉬운 거 없으셨나요?


선생님 : 좋은 질문이신데, 제 삶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있다기보다는 제가 직면했던 상황에 대한 아쉬움은 있었어요. 이 택시 운전하기 전에 사업체를 하나 운영했었는데 그게 부도가 났었거든요.


무슨 대단한 기업을 이룬 건 아니고 작게 하나 운영했던 건데, 제 젊음의 시간과 땀과 눈물 모두 쏟아보았지만 결과가 그렇게 되고 말았죠. 후회되냐? 아니요.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그런 건 내 잘못도 있겠지만 운도 따르지 않아서 그런 거니까요. 저만 탓할 필요는 없는 거죠. 다만 내가 벌려놓은 일을 수습하고 돈도 갚고 해야 하는 게 중요하니까 그 문제를 얼른 처리해야겠다 하고 모든 걸 얼른 내려놓고 그때부터 택시를 시작했어요. 10년 좀 넘는 시간이 걸렸어요 그 모든 상황을 해결하는데. 후회하거나 아쉬울 시간조차도 아까워서 열심히 일하는데 집중했었죠.


부도를 겪고 나니까 정말 가족밖에 안 남더라고요. 사업을 하며 더 많이 챙기지 못한 제 와이프에게 미안함도 있고 그래서 더 악착같이 이 상황들을 빨리 해결하려고 노력했죠.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삶의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부도가 딱 난 순간 뭔가 자동으로 착착 정리되는데, 그 경험이 정말 신기했어요. 앞으로 어떤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간을 쏟고 살아야 할지 말이죠.


부도를 겪을 때 참 힘들었지만 덕분에 앞으로 남은 제 인생에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하고 중요한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삶에 한번 이상은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찾아오곤 합니다. 근데 그것 또한 인생의 한 부분이고 그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기회가 되기도 또한 절망의 깊은 수렁으로 빠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래도 잘 받아들이고 좋은 기회로 삼아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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