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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osh Kim May 29. 2023

EP2:은혜를 갚기 위해 택시 운전대를 잡다

사업실패로 온갖 수모들을 겪으며 택시 운전대를 잡은 선생님과의 수업

깔끔한 스타일과 온화한 인상을 지니신 중년의 선생님을 만나다.

날이 좋았던 어느 날, 미팅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부르고 마침내 내 앞에 멈춘 택시에 탑승했다. 타자마자 깔끔한 머리스타일과 복장을 입으시고 온화한 인상을 지니신 중년의 기사님이 나를 맞이해 주셨다. 기사님은 말투에 여유가 있으셨고 목소리 톤도 굉장히 안정되어 계셨고 딱 봐도 배려가 몸에 배어계시다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어떤 삶을 살아오셨을까, 어떤 경험들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해졌다.

선생님 : “어서 오세요.”

나 : “네, 안녕하세요.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나 : “이게 전기차죠? 저 전기차 택시를 처음 타봅니다.”

선생님 : “ 아 그러셨나요? 이제 택시 쪽에도 막 보편화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에요. 시에서도 보조금을 주고 있어서 좋습니다. 저도 택시를 해보면서 전기차를 처음 타보게 되었어요.”


나 : “그러셨나요? 실제 운전을 해보시니까 어떠세요?”

선생님 : “저도 이제 전기차를 운전한 지 몇 개월 정도밖에 안 되긴 했지만 직접 운전을 해보니 조용하고 전반적으로 잔고장도 없으니 따로 신경 쓸게 없어서 그런 부분들이 장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피로감도 조금 덜한 편이고요.”


나 : “그러게요, 저도 지금 잠깐 타고 있지만 정말 조용하네요.”


그 후 전기차를 타보시며 느끼신 본인의 생각을 알려주시고 심지어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이야기들도 말씀해 주시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택시를 하시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궁금증이 생겨 물어보기로 했다.


나 : “선생님 전기차를 운전하신 지 몇 개월 정도밖에 안 되셨다고 하셨는데 혹시 그전에는 내연기관 차로 택시를 운전하셨나요?”

선생님 :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택시운전도 몇 개월밖에 안 되었죠. 원래 다른 일을 했었습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아떨어지고 있어서 본격적으로 여쭤보기로 했다.


나 : “그러시군요. 다른 일을 하시다가 택시를 운전하시고 초반에 많이 힘드셨겠어요? 어떤 게 가장 힘드셨나요?”

선생님 : “초반에 많이 힘들었죠. 물론 어떤 일이든 안 힘든 게 어디 있겠습니다만 택시에 경우 하루 종일 앉아서 운전하는 것도 그렇고 손님을 태우고 안전하지만 빠르게 그럼에도 정확하게 목적지에 모셔드려야 하니 몸에 긴장도 많이 되기도 하고 했었죠. 그중에서 특히 화장실이 너무 힘들었어요. 요즘은 택시기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열려있는 화장실이 정말 없습니다. 빌딩에 들어가도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고 요즘 주유소도 이용을 하는 사람에게만 화장실 키를 넘겨주는 게 대다수이기도 하고요. 생리적 현상을 참아야 하는 게 참 어려웠어요. 화장실 이용이 어려운 것을 보면서도 세상이 참 박해졌다 이런 생각을 그냥 개인적으로 해보기도 했죠. 물론 화장실 관리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이해를 하지만요.”


나 : “그러게요, 참 힘드셨겠습니다.”

선생님 : “이것도 제가 감수해야 하는 것이고요.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참고 버티는 것이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그런 상황과 어려움들을 겪고 살잖아요?”


실패는 노력을 비웃듯 한순간에 찾아와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다

나 : “선생님, 아까 자동차 이야기에서 아예 산업이야기까지 넘어가 이야기를 하시고 택시도 이제 몇 개월 정도밖에 안 하셨다고 해서 궁금한 게 생겼습니다. 또한 저도 택시를 많이 타지만 선생님처럼 복장을 프로페셔널하게 입고 계시는 분을 마주치기 쉽지 않아서 더욱 궁금했습니다.  혹시 이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실례가 안 된다면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선생님 : “사실 제가 복장을 이렇게 입는 이유는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저도 예의를 갖춰주는 거라 생각을 해서 입고 있습니다. 이렇게 입고 깔끔하면 손님들도 더 좋은 인상으로 이용하실 수 있잖아요."

선생님 : "전에 하던 일은 이제 다 지나간 일이고 뭐 결과적으로 실패한 일이라 편하게 답변드릴 수 있죠. 저는 사업을 했던 사람입니다. 바로 이 택시를 하기 직전까지 말이죠.”


나 : “그러셨나요? 어쩐지 비즈니스 트렌드와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좀 남다르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서비스에 대한 마인드도 남다르신 것 같았고 풍기시는 온화함과 말투에서도 뭔가 내공이 엄청나다고 느껴졌습니다.”

선생님 : "사업하면서 많이 내공이 쌓이긴 했죠. 그리고 산업에 대한 이해도는 다른 분들도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 과찬이세요. 제가 했던 일에 대해 조금 설명을 드리자면 저는 해외에서 의료기기를 수입하여 국내에 판매하는 사업을 운영해 왔어요. 꽤 오랜 시간 사업이 지속되었고요. 비록 시작은 미약했지만 젊은 시절 열심히 노력하여 꽤 잘 나가는 회사로 성장시켰었죠. 다른 회사들이 수입 못하는 제품들도 수입해서 판매를 할 정도로 나름 신뢰도 있고 안정적인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어요. 거의 50여 명의 직원들이 있었고요. 그 오랜 시간을 열심히 해오면서 잘 안정화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사업은 정말 한 순간에 꼬꾸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어요.”

선생님 : “망하려니까 아주 순식간에 망하더라고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록 말이죠. 회사가 안정되었다고 절대 제가 덜 열심히 하거나 놀러 다니거나 하지 않았아요. 회사가 커지니까 책임감을 가지고 더더욱 열심히 했었죠. 하지만 제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그냥 한 순간에 사업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 어쩔 수 없이 택시 운전대를 잡게 되었던 거죠.”


나 : “그러셨군요. 정말 얼마나 힘드셨을지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선생님 : “사실 아직도 가끔 믿기지 않을 때가 있기도 합니다. 실패라는 낙인이 찍힌 후 정말 죽고 싶은 순간들이 많이 찾아왔었어요. 참 신기한 게 제가 그래도 사업을 하며 이런저런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나름 정신력이 많이 강한 편인데, 이제는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 무기력함이 저를 점점 위험한 순간으로 몰고 가더라고요. 다행히도 제 가족들과 주위 몇 안 되는 감사한 사람들 덕분에 살았고 그렇게 다시 일어나서 힘을 내게 되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친구로 그리고 형님 동생으로 지냈는데 결국 정말 몇 사람 말고는 그 위기에 순간에 옆에 없더라고요.”


선생님의 멘탈관리 비법을 물어보다 : 첫째, 둘째, 셋째도 등산!

나 : “세상에, 인생의 경험도 있으시고 사업적 경험도 있으신 분께서 그렇게 까지 스트레스를 받고 벼랑 끝에 몰릴 정도면 정말 힘든 시간이셨겠습니다. 사실 저도 창업을 해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의 그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습니다.”

선생님 : “젊은 분이 벌써 창업을 하셨군요. 요즘 같은 시기에 다른 또래분들은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데 대단하네요. 그 선택에 응원을 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사업을 하고 계시다니 해드리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나 : “아닙니다. 요즘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선택을 하고 있어서 그렇게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선생님은 사업하시면서 그리고 사업이 무너져 버린 상황에서 어떻게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으셨나요?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선생님 : “우선 제가 사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안 풀리는 문제를 마주했을 때 가장 많이 찾았던 방법은 바로 등산입니다. 우리 젊은 창업가 손님도 꼭 등산하세요. 정말 강력하게 추천을 드립니다. 등산을 하면 물론 체력적으로도 탁월한 효과를 주지만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과정에서 그 작은 성취감들이 자신감을 회복시켜 주는 좋은 효과를 주었어요. 또한 정상에서 아래를 바라볼 때 내가 현재 하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들 정말 작게 느껴지고 꼭 해결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주었습니다.”


나 : “오 등산을 굉장히 좋아하셨군요? 지금도 하시나요?”

선생님 : “저는 지금도 주기적으로 등산을 갑니다. 한창 사업을 할 때 등산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결했고 머릿속이 복잡하고 해결하고 싶은 문제들을 가지고 등산을 시작하면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나기도 하고 멘탈적으로 확 회복이 되는 경험들이 많아요. 사업이 망하고 한동안 못 가다가 제 와이프가 강제로 같이 가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다시 가게 되었는데요 그때부터 또다시 멘털이 회복되고 힘이 나고 자신감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어요. 사실상 등산 덕에 저는 정말 많은 효과를 보았죠. 이건 손님 말고도 다른 젊은 분들께도 꼭 추천드리고 싶어요. 가서 혼자 힘든 거 털어놓기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자신과 싸움도 해보고 말이죠."

선생님 : "산에 가서 거기에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다시 와서 열심히 하세요. 정말 도움이 많이 됩니다.”


실패를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교훈은 결국 '사람'에 대한 것

나 : “네 선생님, 꼭 명심하고 저도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사업에 실패하시고 어떤 게 가장 힘드셨나요?”


기사님은 약 1분 정도 말이 없이 깊은 생각에 감기시는 듯했다. 그러고 다시 나의 질문에 답을 하시기 시작했다.

선생님 : “가장 어려운 건 당연히 사람이었죠… 사람.. 그것밖에 없었어요. 돈이 날아가고 빚이 생기는 거 힘들었죠. 그렇지만 사람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선생님의 목소리가 조금 떨리는 것을 느꼈다. 이내 다시 말을 이어가셨다.

선생님 : “이 택시를 시작했을 때 운전대를 잡은 저를 보면서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수군수군했는지 몰라요. 비웃고 조롱하고 저를 하대하고 정말 자존감이 너무 무너지는 순간들을 사람들이 주었어요. 택시 하는 게 천한 직업도 아니고 무슨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그 표정들, 말투를 정말 잊지 못합니다. 제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연락도 안되고 돌아서는 것들을 너무 많이 경험했어요. 그래도 이런 것들을 저만 알고 겪으면 괜찮아요. 정말 힘들고 저를 무너지게 했던 것은 우리 가족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들이 들릴 때 그것만큼 가슴이 찢어지는 일은 없죠. 지금도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생님 : "사업이 위기가 닥치자 직원들 한순간에 저를 모든 문제의 범인으로 몰아갔고 저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죠. 저는 그 힘든 순간에도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물론 정말 소수의 직원들은 저를 돕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해줬어요. 그분들은 제가 지금도 잊지 않고 제 마음속에 세기고 있는 사람들이죠."

"실패를 하고 가장 크게 얻은 교훈은 사람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지금도 참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면 무서운 마음이 있습니다. 실패를 해보니 그제야 사람의 진심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간 어떤 사람들이 진심이었는지, 자신의 이득을 위해 관계를 유지해 왔는지 말이죠.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한때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제 곁에 있었어요. 근데 큰 일을 겪고 나니 옆에 남아주는 사람은 몇 없더군요.

선생님 : "손님.. 정말 사람 조심하세요. 정말 진실된 사람들을 찾으시고 모든 사람들에게 한 명 한 명 다 잘할 필요 없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고 도움이 필요할 때 손발 걷고 나서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을 찾으시고 옆에 두세요. 인생이 너무 짧기에 정말 중요한 사람들에게 시간을 쓰고 함께할 수 있는 순간들을 놓치지 마세요.”

선생님 : “그런 수모를 당하며 시작한 택시이기에 처음에는 정말 운전대 잡기도 싫더라고요. 하지만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 내가 은혜를 갚아야 하는 사람들 내가 정말 힘든 순간에 손발 다 걷고 내일처럼 아파해주고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천천히 갚아 나가기 위해서... 그들을 위해서 오늘도 저는 택시 운전대를 잡습니다.”


나 : "선생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정말 그간 얼마나 힘든 순간들을 보내셔야 했을지 제가 직접 경험하지 못해 완벽하게 느낄 수 없지만 짧은 이야기 속에서 참 많은 감정들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힘든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그 모습에 마음이 시립니다. 좋은 말씀들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 "문제도 사람이지만 해결도 결국 사람입니다. 그러니 손님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시고 좋은 사람들을 찾아다니세요. 꼭 등산하시고요! 손님과 대화하면서 제 젊은 날도 생각이 나고 저 또한 손님은 저와 같은 경험들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응원의 마음이 듭니다. 꼭 대성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이렇게 두 번째 인생수업을 마쳤다. 수업이 끝난 후 그날 선생님이 담담하게 전해주신 아픈 이야기들이 한동안 마음에 깊게 자리 잡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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