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속에 숨겨진…

by 글그림



왜 우리는

환한 웃음보다

어둠 속 깊이 드리운 슬픔의 그림자에

더 익숙한 발걸음을 내딛는 걸까


아직 샛별처럼 반짝이는

기쁨의 언어를 배우기도 전에

절망의 그림자를 먼저 알아버린

어리석은 마음의 습관처럼


분명 세상은

매일 아침 창턱에 내려앉는 숨결 속에

길가에 핀 풀꽃의 수줍은 떨림 속에

낯선 아이 눈빛의 투명한 호기심 속에

스쳐가는 바람 향기 속에

작고 섬세한 조각들을 숨겨두었을 텐데


젖은 흙냄새처럼,

고요한 아침 공기처럼

차가운 밤 속에 나눈 손길처럼

낡은 우편함 속 잊고 지낸 안부처럼

문득 찾아오는 평온 속에

소리 없이 잠든 빛의 조각


시간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 검은 실로 내 발을 꿰어

절망의 골목길,

낯선 어둠 속으로 끌고 간다


새로운 시간의 모퉁이에서

어쩌면 발견할지도 모를

빛의 조각을 기대하며

묵묵히 그림자를 따라 걷는다


길 끝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여전히 뿌연 먼지와 회색빛 바람

무거운 현실의 빗방울이

지친 어깨 위로 쏟아지는

익숙한 슬픔의 얼굴


돌아설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좁은 그림자 길 위에서

발은 끈적한 절망과 엉켜 붙고

거세지는 무력감의 바람에 마음이 꺾이고

차가운 고독의 빗방울에 영혼이 젖는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오늘도 검은 실에 이끌려

낯선 시간을 헤매는 나는

이 고된 굴레에서

멈춰 서고 싶어진다


삶의 어둠 속에서 작은 조각들이 모여

새벽으로 깨어나기를

위태로운 꿈을 몰래 품어본다


그림자야

어쩌면 나는

두려움에 낯선 시간을 걸으며

숨겨진 조각을

진심으로 만날 수 있으리라

믿었는지 모른다


익숙한 그림자가 드리운 삶

길을 걷는 주체는 과연 나일까

아니면 그림자일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을 안고

삶은 천천히 흘러간다


작은 희망의 조각을 품은 채로 말이다


202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