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는다는 건

by 글그림



비를 정면으로 맞아야

떨어지는 빗방울의 무게를 알듯이


처마 같은 눈썹은

우산 없이 걷던 기억을 끌고 다닌다

부어오른 구름 아래

종아리까지 내려온 바지 자락이

무겁게 젖어든다


모서리에 쌓인 빗물이

버려진 신발에 담겨 있다

그 속에는 할머니의 무릎이 퉁퉁 부었다는 말

세탁기에서 꺼낸 빨랫줄의 속옷처럼

장마는 마르지 않고 늘어져 있다


정면으로 비를 맞는다는 건

고개를 돌리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하다

방울방울 고인 말들이

머리칼 속에서 부풀고 있다


비가 오면

빨래집게를 꼭꼭 눌러 꽂는다

바람이 불까 봐

이름이 날아갈까 봐


젖는 건

맨살이 아니라

바지단에 묻어온

그날의 이야기였다

비는 이마를 타고 돌고 돌아

목아래까지 젖게 만드는

추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