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김밥 포장을 벗기며
너는 죽은 물고기처럼 눈동자를 굴렸다
반쯤 열린 자동문 사이로 드나들던 여름이
우리의 대화를 엿들었다, 뒤에 줄 서 있던 사람은
조금 고장 난 선풍기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지
복숭아 통조림을 먹고 나면 말수가 줄어든다며
너는 내 무릎 위에 손을 올렸다
너는 가끔씩 나를 ‘수납함’이라고 불렀어
넓고 서늘하고, 뭐든 던져 넣어도 아무 말 없이
채워지는 대로 잠잠히 가라앉는 커다란 배 같다면서
”그런 식의 애정이 오래 지나면 기념일이 되는 거야 “
“차가운 국수와 마른 파슬리,
오래된 사진과 엉켜버린 블루투스 스피커
버튼이 없는 리모컨처럼 말이지”
여름을 보낼 때마다 생년월일이 흐릿해진다
등 푸른 고등어처럼 빛나던 친구들의 이름도
편지를 넣은 사물함도
체육대회 때 찢어진 반티도
어느새 수납함 안에서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고
결국 너는 내 생일에 오지 않았지
그러나 우리의 마지막은
연립주택 옥상에서 빛나던 불꽃놀이처럼
서로의 여름을 환하게 태웠고
피부는 기분 나쁠 정도로 매끈해졌지
이따금 네 입술 끝에 맴도는
복숭아 향을 믿고 싶었지
여름은
껌처럼 씹다 버려진 잔해 같아서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복숭아 냄새가 나
그래도 마지막 한 입은
네가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유통기한이 지난 감정이라도
통조림처럼 단단하게 밀봉된 하루라면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