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전시회
최근 나는 몇몇 그림 전시회를 다녀왔다.
설 연휴라 아이들은 할머니 댁에 가고 남편과 둘이 자유 시간이었다.
둘이서 고기를 먹거나 커피를 마시는 것 말고 뭔가 좀 다른 걸 해보고 싶었다.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근처 미술관에 가보자고 했다.
유이치 히라코의 그림은 독특하면서도 친숙해 재미있었다.
일본 느낌 가득한 그림들이라 더 그랬을지 모른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닌텐도 게임 <동물의 숲> 캐릭터들이 떠올랐다.
역시나 부모는 아이들 생각이 났다.
두 번째는 아이들과 함께 방문했다.
아이들 역시 그의 그림들에 친숙한 느낌을 가졌다.
시간에 맞추어 간덕에 도슨트 설명도 들었다.
나도 전시회에서 도슨트의 설명을 듣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아이들이 지루해할까 조마조마했는데, 귀 기울여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자기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그림을 감상했다.
마지막에는 대형 핀볼 뽑기가 있었다.
요즘은 전시에서 이렇게 재미 혹은 체험의 요소를 넣어 관람객이 함께한다는 느낌을 주는 게 많아졌다.
아이들은 뽑기 하는 재미와 함께 기념품을 남겨왔다.
혼자만의 시간이 생겨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 다녀왔다.
세계 여러 나라의 그림책 원화를 보며 나라별, 작가별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림책의 삽화가 하나의 작품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도슨트 대신 GuideOn(가이드온) 앱으로 그림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림에 담긴 주제나 작가의 작품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어떤 느낌이나 색감의 그림들을 좋아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전시장 마지막 코너에는 원화의 그림책들을 진열해 놓았다.
원화로 보았던 작품들을 다시 그림책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회에 다녀온 뒤에 그림책에 <볼로냐 원화전 수상 작가>라는 마크를 보게 되면 예전과 다르게 다가왔다.
이번에는 그림책 모임 선생님들과 함께 전시회에 갔다.
미르코 마치코 작가의 전시였다.
이 작가는 그림책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셨던 작가이다.
그런데 처음 본 그림책에 검은색이 가득하고, 난해해서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한 권 또 한 권 작가의 다른 책을 보면서 조금씩 다른 느낌을 갖게 되었다.
한국에서 전시가 열린다고 해서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우리는 각자 그림을 감상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전시회 만남은 이런 묘미가 있구나!
함께하지만 각자의 생각할 시간과 기회를 가졌다.
작가가 실제로 섬에서 살며 자연에 대한 느낌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좋아하는지 않는 것도 바뀔 수 있다는 것, 부분만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전시였다.
내가 사람들에게 그림책을 권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림책 한 권으로 전시회에 다녀온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예전에는 그림책이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좋은 그림책 한 권은 그 작가의 전시회를 둘러보는 것과 버금간다.
최근에 읽은 그림책 <오리건의 여행>의 표지는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끝없이 펼쳐진 밀밭에 서있는 곰과 광대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왜 이렇게 외롭고 뭉클할까? 나는 마음이 서글퍼졌다.
나중에야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를 오마주한 것임을 알았다.
고흐의 그림들은 고독과 외로움을 잘 담아내고 있다.
마치 그의 서글픈 삶이 그림에 녹아 있는 것만 같다.
이 그림책 역시 마음이 서늘할 정도로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어린 왕자>의 밀밭 풍경도 연상됐다.
여우와 어린 왕자는 밀밭을 보면 서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이별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밀밭이 아니라 그리움의 풍경이 된다.
명작은 이렇게 계속해서 변형되고 다시 창조된다.
작가는 그림 하나를 남겼지만, 사람들에겐 각기 다른 느낌으로 계속해서 다시 태어나는구나 싶다.
이런 감동과 생각들을 그림책의 표지 하나에서 시작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가!
*어린왕자 이미지: 인디고 illust:김민지 design.인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