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의 거울이 되는 타인의 이야기
소설은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준다.
20대에는 소설에 대한 감동이 크고, 느껴지는 감정이 더 풍부했다.
지금은 감정이 메말라서인지 예전만큼 소설을 읽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의 이야기는 늘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게다가 소설은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통로가 된다.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보고, 관객도 되어 보며 입장의 차이도 느껴본다.
그래서 더 삶에 대한 이해와 감정을 넓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듯하다.
이번에 읽은 <탕비실>은 일명 빌런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속도감 있게 흘러가는 하이퍼리얼리즘 합숙 리얼리티 쇼로 돌아왔다. 이일권 PD의 QBS 오리지널 예능 '탕비실'. 탕비실 사용 매너로 각자의 회사에서 가장 많은 욕을 먹은 '빌런' 일곱과 가짜 빌런인 '술래' 한 명이 섞였다. (MD책소개)
밀리의 서재에 베스트로 있길래 요즘 인기 있는 책이구나 싶었다. 독특한 제목과 만화 같은 책표지가 눈길을 끌었다. 읽을까 말까 고민하던 중에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북클럽 도서로 소개한다기에 읽어보았다.
주인공 얼음은 요즘 유행하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에 참여해 ‘누가 더 이상한가?’를 두고 마피아 게임처럼 술래를 찾는다.
공용 얼음 틀에 커피, 콜라를 얼리는 사람. 인기 커피믹스만 몽땅 가져가는 사람. 전자레인지 코드를 뽑고 충전하는 사람. 싱크대에 안 씻은 텀블러를 늘어놓는 자칭 환경 운동가. 사용한 종이컵을 버리지 않고 물통 옆에 쌓아두는 사람. 탕비실에서 온종일 중얼중얼 떠드는 사람. 냉장고에 케이크 박스를 가득 넣어두는 사람. 싱크대에서 아침마다 요란하게 가글하는 사람. 이들과 함께 탕비실을 쓴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누가 가장 싫습니까?
가장 이상한 사람만 모아놓았다. '빌런'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얼음은 동료들을 위해 콜라와 커피를 정성 들여 얼려놓는다. 자신은 배려지만 받는 사람은 섬뜩할 정도의 공포와 불편함을 준다. 나 역시 주인공 얼음이 왜 자신이 한 행동이 이상한지를 생각하는 대목에서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는 ‘그게 왜 잘못된 거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억울해한다.
내가 아직도 그(얼음)의 진심을 이해하지 못한 걸까?
<탕비실>을 읽고 내가 느낀 것은 불편함이었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마음은 불편한데 재미있고 결말이 궁금해 끝까지 읽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궁금해 밀리의 서재 댓글을 살펴보니
“참으로 불편하고 재미있네요”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잘 표현하다니.
“실제라면 소름 돋을만한 얼음님.. ㅋㅋㅋ”이라는 댓글은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구나 안도하게 한다.
요즘은 꼭 독서모임을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좋다.
나는 살면서 싫어하는 사람을 더 알아보려고 한 적이 없었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쉽지만 정말로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건 어렵다. 나는 이 게임이 단순히 탕비실에서 열리는 진상 콘테스트가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p.77)
이 대목이 발목을 잡는다.
작가는 그럼에도 그 사람의 진심을 살펴보라고 조언해 주는 기분이었다.
'그래 누구나 다 사연이 있지.'
'이유 없는 행동은 없지.'
얼음도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오던 버릇대로 행동한 것뿐이다.
근데 배려해 주려고 다른 사람이 남긴 자장면까지 뒤져보는 건 좀 지나치지 않나?
역시나 배려와 간섭 사이에서 헷갈린다.
나의 생각을 바꿔보기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