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만남 현아현
현아현님을 처음 <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문화 기획자> 편의 성은님에게 소개를 받았을 때는 내가 살고 있는 파리에 이런 분도 계시는구나 하고 신기했었다.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내게는 로레알 본사에서 인턴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거기에 희박한 경쟁률을 뚫고 정직원으로 전환이 된 것은 물론 디올에 스카웃이 되었다니... 이런 멋진 사람을 과연 내가 인터뷰를 해도 될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인터뷰 당시 현아현님은 디올로 이직하는 준비 과정 중에 계셨다. 그 과정에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나 영광이었다. 서론은 이만 줄이고 이제 현아현님을 만나보자.
안녕하세요 저는 파리 로레알 DMI(마케팅 글로벌 본부)에서 스킨케어 제품을 개발하고 있는 현아현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혹시 직접 개발하신 제품 중에서 시중에 판매 중인 제품도 있나요?
브랜드 자체가 리런칭 준비 중이라서 내년에 나오게 될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로레알 제품은 한국에서부터 꾸준히 써왔는데 그런 제품을 만드시는 분이라 하시니 신기합니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나오셨는데 학교생활은 어떠셨어요?
재미없는 대학 시절을 보낸 것 같아요(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학점에 집착을 했는지 모를 정도로 성적에 신경을 많이 썼었어요. 시험 기간 때는 친구도 안 만나고 공부만 하고 동아리 활동도 안 하고 그래서 후회가 많이 남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학점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었는데(웃음). 물론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했지만 좀 더 많은 걸 할 수 있었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계속 남아요. 그나마 부모님께서 워낙 교육에 관심이 있어서 방학 때 언어 공부하러 프랑스에 잠깐 나가 있거나 이러면서 좀 재미있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럼 그때부터 프랑스 유학을 생각을 하신 건가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때는 언어 공부는 핑계고 노는데 집중을 했거든요(웃음). 어학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여행 다니고 그랬었어요. 그래서 프랑스 유학은 생각도 못 했고 사실 대학교 한 2-3학년 때까지만 해도 저는 공기업에 가거나 아니면은 공무원이 되거나 그럴 거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생각을 했어요. 지금처럼 프랑스에 살 거라고 전혀 생각도 못 했고 제 친구들도 그렇게 말을 해요.
어학연수는 어느 도시에서 하셨나요?
저는 여러 번 갔는데 맨 처음에는 리옹에 갔었고요.
저도 리옹에서 어학 했어요 반갑네요.
리옹 너무 좋죠. 근데 한 번 갈 때마다 한두 달 정도 방학 동안만 다녀오는 거라서 짧게 있었어요. 그다음에는 디종에 갔었어요. 중국 베이징에 가기도 했었고요. 그러다 교환 학생으로 파리에 갔다가 쭉 파리에 눌러앉게 됐죠.
중국은 어떻게 가시게 된 거예요?
제가 막 학년을 앞두고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가고 싶어 진 거예요. 그런데 4학년 때는 못 가니깐 휴학을 해야 했는데 그럼 1년 정도 휴학하는 김에 무엇을 할까 생각하던 중에 부모님이랑 점심 먹다가 중국 이야기가 나와서 갑자기 떠나게 댔어요. 결정이 되고 거의 한 달 만에 떠났던 것 같아요. 근데 마침 제가 있던 곳에 파리에서 교환 학생 오는 친구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그때 프랑스 애들이랑 친해지면서 친구들이 교환 학생 원서 쓰는 것도 도와주고 그랬었어요.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고 그중 한 명은 지금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신기한 인연이네요. 중국 유학 생활은 어떠셨어요?
재미있었어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 뉴질랜드에 잠깐 살긴 했었지만 그때는 너무 어릴 때였으니까 기억이 많이 없거든요. 그러니 중국 생활이 처음으로 오로지 혼자 외국에 나가 사는 경험이었던 거예요. 친구도 사귀고 언어도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여행도 다니고 그랬었어요. 그래도 중국은 이웃 국가니깐 한국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다른 점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그리고 그때 만났던 인연들이 방금도 말했지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한 친구는 보증인을 해주기도 했어요.
보증인을 해줄 정도면 정말 돈독한 사이이신가 봐요.
그렇죠. 지금은 제가 회사가 있으니까 걱정은 없는데 학생일 때는 그럴 수 없으니깐 그 친구 덕분에 무사히 집을 찾을 수 있었죠.
보증인 때문에 고생을 좀 했던지라 너무 부럽네요. 2016년에 프랑스 시앙스포로 교환학생을 가셨는데 다음 해에 같은 학교 석사 과정으로 진학을 하신 걸로 보아서는 그때 기억이 좋으셨던 것 같아요.
제가 시앙스포로 교환 학생을 갔을 때 정치학을 공부했었는데 학생들이 정치에 굉장히 관심이 많고 토론도 좋아하는 거예요. 저는 정치에 대해 그 정도의 열정은 없으니까 그렇게 수업이 흥미롭지는 않았어요. 그러던 와중에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하나 들었었는데 굉장히 재미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커뮤니케이션 수업을 계속 들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학비도 다른 나라에 비해 저렴했고요.
미국이나 영국보다 저렴하긴 하지만 시앙스포는 프랑스 국립학교에 비하면 학비가 있는 편이잖아요. 혹시 학비가 얼마 정도 되나요?
제가 다녔을 때는 1년에 1만 4천 유로 정도였어요.
커뮤니케이션 수업의 어떤 점이 흥미로우셨었나요?
실무 위주였던 점이 흥미로웠어요. 브랜딩 수업이 있으면은 이론을 배우기보다는 실제로 브랜딩 에이전시에서 일하는 분들이 오셔서 수업을 하고요. 과제도 에세이나 토론보다는 브랜드의 브랜딩 프로젝트를 할당받아서 발표하고 설득시키는 과정으로 진행되었거든요. 정말 실무처럼 진행을 한 거죠.
먼저 인터뷰하신 분 중에 시앙스포에서 일을 하신 분이 있었어요. 그분이 사기업이나 공기업 혹은 국가에서 프로젝트를 받아서 학생들에게 할당하고 또 거기서 발생된 수입으로 여행 프로그램을 짜고 그러셨거든요. 그 생각이 나네요.
학사과정은 그런 방식으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석사 과정은 그렇게 본격적이지는 않아요. 근데 시앙스포에 한국 분이 계신지는 몰랐네요.
시기가 안 맞았을 수도 있고 또 그분이 시앙스포에서 일하시다가 전에 다니시던 직장에서 다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돌아가셨거든요.
일을 굉장히 잘하셨나 보네요.
맞아요. 그분에게도 정말 많이 배웠어요. 프랑스의 첫인상은 어떠셨어요?
프랑스 첫인상은 리옹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때는 제가 되게 어리기도 해서 그냥 좀 신기하고 무섭기도 했어요. 말이 잘 안 통했으니깐요. 또 제가 쌍둥이가 있는데 쌍둥이는 그때 독일에서 공부 중이었거든요.
쌍둥이셨어요?
네 제가 몇 분 차이로 동생이에요. 지금은 런던에서 살고 있어요. 제가 리옹에 있을 때 같이 파리로 여행을 갔는데 그때 인상이 너무 좋았어요. 전반적으로 도시도 너무 예쁘고 예술도 쉽게 접할 수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저도 리옹에서 어학연수를 할 때 친구와 파리에 놀러 갔었는데 리옹과는 또 다른, 좀 더 웅장하다고 해야 할까? 건물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그래서 리옹이 프랑스의 제2의 도시지만 역시 파리와는 스케일 차이가 크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나네요.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에 시앙스포에 입학하기 전까지 한국에 있는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하셨는데 어떻게 취업을 하시게 된 거예요?
대학교 졸업 후에 진로를 어디로 틀어야 될지 잘 모르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대학원을 가보는 건 어떨까 싶어서 시앙스포를 준비하게 된 거죠. 멋있게 말해야 되는데(웃음) 약간 도피성으로 가게 된 면이 있어요. 시앙스포 입학이 9월이었거든요. 입학 전까지 회사 경험도 좀 하고 돈도 모으자 이런 생각에 회사에 다니게 됐어요. 그리고 그때의 경험으로 저는 디지털 마케팅보다는 조금 더 브랜딩이나 크리에이티브 마케팅이 더 맞는 것 같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고요. 회사에서 제 업무가 페이스북이라든지 구글 검색 같은 디지털 미디어 마케팅 쪽이었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영어를 좀 할 수 있어서 아마존 같은 회사를 맡았었고요.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회사 자체도 힘들기로 유명한 회사이기도 했고. 클라이언트 미팅 전날에 두 세시까지 야근하다가 아침에 미팅하고 그런 적도 있었고요. 그래서 퇴사할 때 미련 없이 할 수 있었어요. 다만 첫 동료들과의 헤어짐이라서 아쉽기도 했지만요.
한국에서 7개월 정도 일했던 경험이 나중에 프랑스 와서 취업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나요?
저는 사실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맨 처음에 프랑스에서 인턴십 찾을 때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고 또 그 경력들이 로레알 인턴십을 할 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시앙스포에 진학하실 때 프랑스에서의 취업을 염두하고 오신 건가요?
그렇죠. 만약에 제가 한국에서 있었던 회사가 워라벨이 잘 지켜지고 만족스러웠다면은 그냥 한국에 남았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또 다른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 중에 만족하고 다니는 친구들을 봐도 휴가가 일 년에 10-13일 정도밖에 없는 것도 답답했고요. 그래서 이럴 거면 차라리 해외에서 일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을 굳히게 됐던 것 같아요. 물론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을 더 배우고 싶기도 했고 해외에서 취직하려면 아무래도 그 나라 학위를 가지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프랑스 자체가 석사 할 때 인턴을 무조건 해야 되기 때문에 그걸 이용해서 취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시앙스포 입학이 쉽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혹시 어떻게 준비를 하셨나요?
일단 학교가 어떤 학생을 원하는지 분석부터 했어요. 시앙스포는 글로벌한 인재를 좋아하는 학교거든요. 학사 3학년 때는 무조건 해외에서 1년을 나가야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자기소개서에서 그 점을 많이 어필했죠.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뉴질랜드에서 산 경험도 있고 중국에도 갔었고 프랑스도 갔었고 이런 경험들을 접목시켜가면서 어떻게 해야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눈에 띌지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시앙스포 말고 준비한 다른 학교가 계신가요?
영국에 있는 학교도 고려해보긴 했거든요. 언어가 더 쉽기도 하니까. 그런데 제가 찾아본 바로는 이론에 조금 치우친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학교에 분산시킬 바에 하나에 좀 쏟아붓자 싶어서 시앙스포만 준비했어요. 다행히도 합격을 해서 프랑스에 왔습니다.
인터뷰어 조소희
파리 8 대학 영화과를 졸업한 후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이 현아현 @ahhyeonh
연세대학교 졸업
시앙스포 Communications, Media & Creative Industries 졸업
전) 파리 로레알 DMI 스킨케어 제품 개발 담당
현) 디올 스킨케어 제품 개발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