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살

고통을 걷어낸 자리에 새살이 돋을 때

by 조용한 조작가


새벽 5시. 모두가 잠든 깊은 고요 속에서 홀로 눈을 뜹니다. 잠 기운을 몰아내고 양치를 한 뒤, 어제와는 조금 달라진 거실의 공기를 마주합니다.


어제는 집안 가구들의 배치를 바꿔보았습니다. 구석에 있던 묵직한 식탁 테이블을 낑낑대며 창가 넓은 곳으로 옮겼습니다. 자리를 옮기고 나니 신기하게도 테이블이 유난히 크고 근사해 보입니다. 그동안 좁은 공간에 갇혀 그 온전한 가치를 빛내지 못했던 것이지요. 사물이든 사람이든, 저마다의 가치를 가장 빛나게 하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나 자신을 깊이 알수록 내가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지 선명해집니다. 만약 지금 내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면, 과감히 자리를 옮겨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무거운 테이블을 옮길 때처럼 힘겹고 망설여지는 선택이겠지만, 한 번 마음먹었다면 뒤돌아보지 않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낯선 자리에 놓인 의자에 앉아 명상을 시작합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 탓인지, 바뀐 환경 탓인지, 아니면 마음을 짓누르는 복잡한 일들 때문인지 좀처럼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탓을 하기 시작하면 변명은 끝도 없이 생겨납니다. 오늘은 원인을 찾는 대신, 그저 묵묵히 집중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나 자신을 느껴봅니다. 알아차렸다면, 다시 호흡으로 부드럽게 돌아옵니다.


오늘의 명상 문구처럼, 우리의 고통이 가장 크게 울부짖을 때가 어쩌면 우리의 존재가 가장 얇아지는 순간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실수를 하고, 후회를 하고, 깊은 상처를 입습니다. 누군가는 그 상처를 평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끌어안고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그것을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상처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상처를 입더라도 다시 돌아오는 힘을 말합니다.


상처 그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을 성장의 경험으로 삼기로 선택할 때, 상처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닌 단단한 '새살'이 되어 우리 삶의 빈 공간을 채웁니다. 흉터로 남길 것인가, 더 튼튼한 새살로 만들 것인가. 그 결정권은 오롯이 나에게 있습니다.


환경과 타인을 탓하며 바뀌지 않는 것들에 에너지를 쏟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세상에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이며, 나를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 세상이 어둡고 캄캄하게 느껴진다면, 먼저 내 안의 빛을 밝혀보세요. 고통을 덜어낸 자리에 환한 빛이 스며들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하루에 상처를 딛고 일어선 빛나는 당신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