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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Nov 29. 2023

너와 나의 유쾌한 바다 이야기


한바다에서 건져 올린 그리움


외항선을 타면서 한 바다에서 정박 중에 낚시하던 이야기를 빼면 한약에 감초가 빠진 격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낚시를 바다에 넣고 고기가 입질할 때 느껴지는 그 짜릿한 손맛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잘 알 수 없을 터이다. 는 판자촌에 살던 촌놈 출신이라 배를 타기 전에 낚시해 볼 기회가 별로 없었고 회도 먹을 줄 몰랐다. 환경이란 개념도 별로 없을 당시, 다니던 중학교 옆의 냄새나고 시커먼 하천에 붕어가 숨이 가빠 뻐끔뻐끔하는 것도 왜 그런지 모르고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리고 어머니가 해주시는 임연수나 짜디짠 자반고등어 한 토막 얻어먹으면 족했었다. 통신과 동기들과 남희와 몰려다니다가 무교동에서 낙지볶음을 처음 먹고는 매워서 돌아버릴 뻔했다. 그 매운 걸 뭔 맛으로 먹는지. 배를 처음 타고 일요일 점심에 참치회와 코끼리 조갯살이 나오면 물컹하고 니 맛인지 내 맛인지 몰라서 라면이나 끓여달라고 했다. 그러다 세월이 지나니까 배가 항구에 정박했을 때 물고기나 미끼를 만지기 싫어서 꺼리던 낚시도 하게 되고, 회도 먹게 되었다. 호주에서 정박 중에 항사가 해수 염분 농도를 확인하려고 바닷물을 뜨러 갱웨이로 내려갔다가 고기가 너무 많아서 바닷물을 양동이로 쳐서 고기들이 놀라 도망간 틈새로, 숟가락으로 물을 떴다는 뻥 말고, 무쏘보다 더 큰 고기를 잡았던 이야기 하나.




콜롬비아 까르따헤나 항에 ‘NAMMI SPIRIT' 호를 타고 원유를 실으러 가서 외항에 대기 중에 대리점이 갖고 온 편지를 받았다. 그전에 미국에서 편지 서너 통 받고, 답장을 보낸 후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남희 친구로부터 편지가 왔다. 승선하고 거의 육 개월이 다 될 즈음에 받은 답장에 그동안 서클에서 연극인가 한답시고 바빴다나. 석 달 동안 회사 일 마치고, 연습하느라 파김치가 되어 공연이 끝나고 쫑파티 하자마자 쓴다고. 그 아가씨는 그렇게 썼어도 이미 남희가 보낸 속이 뒤집히는 편지를 먼저 읽은 후였다. 거의 모욕에 가까운 내용이었다. "뭔 사내자식이 차려준 밥상도 다 못 처먹고 만날 영양가 없는 물개나 맛없는 대왕오징어 이야기만 하고 시시덕대다가 또 배 나갔느냐고..."

아니, 얘가 동기 맞아? 남의 집 귀한 자식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병 주고 약 주나, 기분 나빠서 편지를 구겨 바다에 던져버렸다. 젠장, 학교 다닐 때 늘 구석에 조용히 처박혀 있는 나를 따라다니면서 선머슴같이 못살게 굴던 애였다. 졸업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만날 김 팍팍 새는 소리만 하네'라는 생각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애고, 나는 왜 이렇게 지지리도 여복이 없냐고 생각하면서 밀워키 캔 맥주를 따서 입안에 털어 넣었다.


반이나 마셨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은 조리장 영감님 전화였다. 

“국장님, 양놈 어선이 와서 뭐라고 하는데 내려와 보세요. 

성조기를 단 작은 어선에서 술이 떨어졌다고 새우랑 바꿔 먹잔다. 얼마나 술이 고팠을까 싶어 같은 선원 입장에서 맥주 5박스를 내려주었더니 거의 한 드럼 가까운 새우를 주었다. 어선 선원들이 머리도 안 깎고 수염도 무척 길어서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Where're you from? You look like Cuban President Castro.”

그랬더니 'We're American fishermen! You speak English very well.'이라며 너털웃음을 웃고는 새우 한 양동이를 더 올려주었다. 조리장이 선원들 들으라고 한마디 했다. 

“그건 국장님 혼자 드세요. 말 잘해서 더 얻은 건데요.”

“아이고, 영감님. 이 많은 걸 어떻게 먹어요. 새우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냥 선원들 주세요.”


방에 돌아와서 혼자 캔 맥주를 더 마시면서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동기인 남희한테 만날 조 터지는 건지, 내가 자기한테 뭐 잘못한 게 있다고...’라는 생각이 들어 또다시 부아가 치밀어 의자에 눕다시피 앉은 채 탁자에 발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불편한 자리라서 뒤척이다가 일어나니 창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고 엔진이 멈춘 조용한 배 위로 달빛이 휘영청 비쳤다. 눈을 비비고 기지개를 켜며 선실 바깥 갑판으로 나갔다. 까르따헤나의 야경이 검은 바다와 함께 아스라이 안경 너머로 보였다. 아, 바다와 어우러지는 육지의 야경은 이렇게 아름답구나.


긴 항해에 지쳤던 선원들이 선미에서 고기를 낚으며 한쪽에는 술판이 벌어진 것이 보였다. 혼자 담배를 피워 물고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내가 왜 그 애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어느 잡지에선가 본 글이 생각났다.

"남에게 관심이 없으면 그냥 친절하게 대하고, 반대로 관심이 있으면 상대방의 주의를 끌기 위해 의외의 행동을 한다."

"아! 그런 거였나?"

나는 머리가 복잡해져 안 되는 머리로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편지라도 쓸 생각 했으면 적어도 편지지와 볼펜을 준비하고 담은 몇 분이라도 나를 생각했을 거 아닌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검푸른 바다에 갑자기 남희와 아름다울 ‘미’인가 아닐 ‘미’ 자가 들어가던 기억이 희미해진 아가씨 얼굴과 겹쳐 보였다. 남희의 별난 행동, 봉긋한 가슴에 안고 있던 교재, 웃을 때 입을 가리던 갸름한 손, 나를 놀리며 ‘아이고 배 아파라.’라고 말하던 그녀. 그리고 카리브해의 밤하늘에 비치는 까르따헤나의 아름다운 달처럼 눈물 그렁그렁한 맑은 눈. 아, 내가 실수했나? 주소라도 남겨 놓을걸.


"국장님! 거기서 혼자 뭐 하셔? 잠 안 오면 내려와서 술 한잔하세요!"

조리장 영감님이 부르는 소리가 저 밑에서 들렸다. 제정신이 돌아오자, 표정을 바꿔 웃으면서 선원들이 모여 있는 선미로 내려갔다.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권하는 맥주 캔을 받아 들고 임자 없이 묶여있는 낚싯줄을 끌러 손가락으로 가름해 봤다. 낚시 추가 바닥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건져서 미끼를 갈아 끼우고 멀리 던졌다.


밝은 달을 쳐다보며 아까 생각에 잠겼던 남희와 그동안 있었던 수년간의 일들을 돌이켜 봤다. 맞아! 그녀가 겉돌고 있던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편지를 써가면서까지 욕하는 것은 나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피곤해서 피해 다니고, 그러면 그럴수록 짓궂게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남희. 서로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타러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 마지막 보았을 때 먼 산 보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촉촉한 눈으로 하던 말.

"나, 잊지 마!"

갑자기 머리 한쪽에서 뭔가 번쩍 스쳐 가는 것 같았다.

"아하!"


그 순간 손에 묵직한 입질이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낚싯줄을 잡아챘는데 도대체 손맛이 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바위에 걸린 것도 아니고, 바닷속에 떠다니던 거대한 부유물이 걸린 것 같은 묵직한 느낌. 낚시 경험이 적은 나는 다른 선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누가 좀 봐주세요. 뭐가 걸리긴 걸린 거 같은데…”

배를 오래 탄 선원 몇이 옆에 와서 낚싯줄을 당겨보더니 조기장 영감님이 비키라고 했다. 뭔지 모르지만, 엄청나게 큰 놈이 걸렸다고 낚싯줄을 당겼다 놓았다 실랑이하기 시작했다. 다른 선원들도 주위로 모이더니 한마디씩 거들었다.

“일단 갱웨이 쪽으로 끌고 갑시다.”

“갑판부 누구 하나 가서 갱웨이 바짝 내려라.”


옆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맥주 두세 캔을 더 마셨을까, 노련한 조기장이 한참 낚시와 씨름하더니 지친 놈이 수면 위에 떠 올랐다. 엄청나게 큰 물고기였다. 갱웨이를 물 밑으로 내려 낚시에 걸린 물고기를 그 위에 얹혀서 배 위로 끌어 올렸다. 선원들의 함성이 터졌다.

“우와! 고래만 하네.”

아귀 비슷하게 생겨서 입이 한 아름도 더 되고 몸통이 거대하면서 꼬리 쪽으로 점점 가늘었다. 자던 선원들도 함성에 놀라 뭔 일인가 나오고 갑판에서는 때늦은 선상 파티가 열렸다. 그동안 잡았던 물고기를 회치고, 아까 맥주와 바꿨던 새우도 갖고 오고, 월급 많이 받는 사람은 품위 유지한다고 위스키나 맥주 상자를 들고 왔다. 술 마시면서 거대한 물고기를 해체하는 선원들에게 누군가 한마디 했다.

“거 이왕이면 내장하고 곤이도 먹자!”

그 입 큰 물고기의 엄청나게 큰 위 안에 그동안 배에서 버린 음식물 찌꺼기며 아직 소화되지 않은 오만 것들이 보였다. 아! 그 순간, 아직 다 소화되지 않은 남희와 ‘미’ 자가 들어가던 그녀들의 구겨진 편지가 내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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