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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Jun 21. 2024

청순가련형 소련 아가씨 소냐

세계가 놀란 소련 해체


"조 국장, 어제 상륙 나가서 재미있었소?"

점심시간에 캡틴과 기관장이 웃으며 물었다.

"네, 캐비어에 킹크랩을 맛있게 먹고 이쁜 아가씨들 눈요기 많이 했습니다."

'"그래요? 킹크랩을 회로 먹어도 맛이 기가 막힌 데..."

기관장이 말하자 이어 캡틴이 미소 지으며 물어봤다.

"소련 아가씨들은 어땠소?"

또 입만 벙긋하면 뻥이 나오는 내 주특기가 나올 타이밍이다.


잠시 뜸을 들이니 초롱초롱한 눈이 모두 나를 쳐다본다.

"거 듣기로는 효리 같은 아가씨가 밭매고 똥 짐 진다는 나라 아닙니까? 서빙하는 아가씨들 정말 기차게 이쁩디다."

"국장님, 그래 말은 걸어 봤소?"

일항사의 질문에 졸아서 말도 못 붙였다는 말은 못 하고 '그럼요, 미모, 몸매는 메릴린 먼로 쩌리 가라 할 정도고, 은방울 굴러가는 목소리에 정말 쥑입디다.'라고 말했다.

일기사가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음식 주문한 거 말고 말도 못 붙여 봤는데 이름을 우찌 아노.

아, 명찰에 'Соня'라고 쓰여있었지.

"뭐라더라, 소냐라든가... 손금 봐주면서 재물 복이 있고 둘이 있을 거라고 죠."

모두 하하하~ 폭소를 터트리는데 일항사가 정곡을 찌른다.

"허~ 거참, 국장님은 숨 쉬는 거 빼곤 다 뻥 같아. 소냐는 '죄와 벌'에 나오는 이름 같고, 어제 같이 상륙 나간 갑판장 영감님 말로는 누가 잡아갈까 봐 졸아서 조신하게 앉아 있다 오셨다더니만, 언제 아가씨 손금까지 보고 오셨어?"


1917년 2월 혁명으로 러시아제국이 무너지고, 10월 혁명으로 레닌의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한다.

그러나 그렇게 생긴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는 낮은 생산성으로 궁핍에 쪼들려 이후 권위주의적인 독재로 간다.

레닌 사후 최고 지도자가 된 스탈린은 농업 국가인 소련을 공업 국가로 바꾸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서방에 50년은 뒤처져 있습니다. 그 격차를 따라잡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소련의 모든 산업과 경제 활동을 국가에서 통제하고 관리했는데, 결과적으로 단기간에 서구권을 위협할 만큼 성장했다.

2차 대전의 승리로 소련은 잃었던 영토를 거의 다 되찾고 동유럽이 전부 영향권으로 들어왔으며 아시아에서는 북한과 중국, 베트남 등지까지 세력을 넓혔다.

한편 미국 바로 아래 쿠바에도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혁명을 일으켜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 미국을 머리 아프게 했다.

전 세계의 좌익 운동과 좌파 정치 세력을 지원하며 소련은 공산 진영의 대표선수로서 반세기 동안 미국을 위시한 서방 세력과 한반도, 베트남,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이념 대립의 대리전쟁을 했다.


스탈린이 사망하고 흐루쇼프가 소련의 서기장이 되었다.

그는 스탈린을 잔인한 독재자로 깎아내렸으며 억압을 느슨하게 풀고 수용소의 죄수 800여만 명을 석방했다.

이러한 스탈린 격하 운동은 서방과 소련 내부는 물론이고 공산권에도 큰 충격을 주어 중국의 마오쩌둥은 흐루쇼프를 수정주의자라 비난하였고, 국경분쟁까지 터지는 등 사이가 멀어졌다.


스탈린 때 소련은 초강대국이 되었지만 정작 인민 삶의 질은 낮은 편이었다.

흐루쇼프 시대에 들어서 생활 수준도 올랐고 경제가 계속 발전하였다.

특히 우주 분야에 있어서 소련은 인공위성을 처음으로 쐈고, 인류 최초로 우주비행사를 탄생시켰으며 우주선이 달에 착륙해 미국과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흐루쇼프는 농업정책에 실패했고, 군을 감축하려다가 군부의 반발로 실각했다.

흐루쇼프의 뒤를 이어 서기장이 된 브레즈네프는 침체의 시대를 비교적 길게 통치했다.


1970년대 말 이란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하자 아라비아해의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 미국은 대소련 봉쇄를 결정했다.

우선 식량부터 봉쇄하였다.

소련의 농업은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의 대대적인 농지 개간과 개혁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이 떨어져 식량 자급을 하지 못했다.

러시아제국 시대에는 유럽을 먹여 살렸는데 소련은 미국에서만 매년 수천만 톤의 곡물을 수입해야만 했다.

막대한 수입량을 다른 곳에서 대체할 수 없으리라 판단한 카터 행정부는 소련에 대한 곡물 수출을 중단했다.

그러나 수출 중단으로 인해 곡물이 남아돌아 가격이 폭락하여 소련은 다른 나라에서 예전보다 쉽고 싸게 식량을 수입할 수 있었다.


미국은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가니스탄 반군에 무기를 지원했다.

상당한 무장력을 갖춘 반군이 게릴라전으로 대항하자 소련은 그저 돈만 쏟아붓는 소모전이 됐다.

결국 전면적인 경제 봉쇄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막대한 재정 출혈을 하게 해 원자재 수출로 간신히 버티던 소련 경제가 붕괴하게 된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석윳값이 일정 수준은 되었기 때문에 버틸 수는 있었다.


그 후 젊은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이 되어 1985년부터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시행했으나 석윳값이 폭락하여 세수가 크게 줄어버린 데다가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가 터지면서 결국 소련은 망조로 간다.

고르바초프는 연방 체제만은 유지하려 했으나 보수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러시아 대통령 옐친이 진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그가 뜨고, 고르바초프는 지며 소련은 공중분해 되었다.

소련이 가진 모든 권리와 의무는 러시아 연방이 이어받았고 나머지 공화국들은 다 독립하였다.

소련은 세계에서 영토가 가장 크고 자원도 많아 미국과 함께 초강대국이었는데 망하리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으나 결국 해체되어 나도 놀라고 세계가 경악했다.




노벨 연구소가 세계 최고의 소설 중 하나로 선정한 도스토옙스키가 쓴 '죄와 벌'의 주인공 소냐는 알코올 중독 아버지와 병에 걸린 계모, 헐벗고 굶주린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거리로 나선 아가씨다.

그녀는 타고난 선함으로 그 힘든 삶을 견뎌낸다.

소냐는 전당포 노파와 동생을 도끼로 죽인 라스콜니코프에게 자수하라고 설득한다.

초인사상에 젖어 자신은 비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잉여 인간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던 라스콜니코프는 혼란 속에 방황한다.

그러다 소냐의 대로 자수하여 시베리아 유배 8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후, 비로소 정신적인 자유를 찾는다.

소냐는 그를 따라 시베리아까지 가 감옥 수발을 다.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가난한 데다가 간질병과 도박벽이 있어 늘 궁핍했다.

그래서 그의 글은 길고, 수정이나 퇴고를 안 했단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원고 글자 수대로 원고료를 주었고, 그나마 빚 갚느라 선불로 당겨쓰고 늘 마감에 쫓겨 교정 볼 시간이 없었다.

그가 죽기 직전 남긴 걸작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눈이 어두워져 앞이 안 보여 혼신의 힘으로 구술하는 것을 속기사 출신인 부인이 받아 적어 완성하였단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선생은 지금까지 쓰인 소설 중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느 자리에선가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기가 막힌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책 한 권을 내려면 골방에 처박혀 백여 권의 책을 밑줄 쳐가며 읽고 영감을 받아 글을 쓴다고 들었다.

한 사람의 지식과 경험으로 여러 권의 책을 쓰는 것이 한계가 있는 만큼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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