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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Jan 22. 2024

함부르크의 로망스


항구는 대부분 바다에 접해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곳이 간혹 있다. 미국의 뉴올리언스,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그리고 독일 최대의 항구인 함부르크 항도 엘베강 하구에서 100여 km 상류에 있다. 함부르크 항을 향해 북해를 항해하는 우리의 ‘HAPPY NINA’ 호 통신실 옆 에서 남희와 나는 네덜란드, 독일의 아스라하게 보이는 해변을 바라보며 깨가 쏟아지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행복이란 게 별 건가.


남희의 목덜미와 등을 가볍게 터치하며 ‘로망스’를 손가락으로 반주하다가 모스 부호로 ‘I love you.’를 눌렀다가 독일어로 ‘Ich liebe dich.’도 치고, 내 손놀림에 따라 눈썹이 파르르 떨리다가 까르르 넘어가는 남희. 이번에는 역습으로 남희가 뒤에서 안고 목을 입으로 간지럽힌다.

“어어, 난 온몸이 성감대라니까. 아이고, 배에서 떨어지겠다. 조심!

혹시나 남희가 바다로 떨어질까 봐 뒤로 안았다. 보통 길을 걸을 땐 차도 쪽으로 내가 걷는데 배 위에서는 그게 여의치 않았다. 아, 등이 왜 이렇게 따뜻한 거야. 바로 위층의 윙 브리지에서 전방을 견시하던 안 선장님이 헛기침하고 브리지 안으로 들어가는 발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찔끔하고 장난을 멈춘다.


더욱 가까워지는 함부르크 항. 엘베강 입구를 지나면 베델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함부르크 항구에 입출항하는 선박을 환영하는 'Welcome point'가 있다. 대형 선박이 함부르크 항에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이곳에서 해당 선박의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연주한다. 관광객들은 부두와 인근 레스토랑에서 선박의 승무원과 옆의 관광객이 손을 흔들며 소통하는 감동적인 장면을 맨눈으로 다 볼 수 있다. 남희가 함부르크에 있으면서 내가 탄 배가 이곳에 오는 것알았다면 다 팽개치고 맨 먼저 경찰차든 뭐든 타고 번개같이 왔을 것이다.  배는 차보다 몇 배 느리니까....


이 행사는 1952년부터 함부르크 출신 선장이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단다. 웰컴 포인트에서 가장 먼저 환영받은 선박은 일본 화물선이라고 한다. 그 이후로 전 세계 수많은 선박이 환대받고 작별 인사를 했다. 애석하게도 ‘HAPPY NINA’ 호는 한국 선원이 타고 있어도 배 적이 라이베리아라 애국가가 나오지 않았다. 남의 나라 편의치적선을 타는 선원의 비애이다.


편의치적선이란 선주가 경비 절감 등을 목적으로 배의 선적을 세금이 싼 다른 나라로 등록하는 배다. 배에는 선박세, 등록세와 여러 세금이 붙는다.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 제재를 하기 위해 북한 선박 'Jin Teng' 호를 필리핀 수빅 항에서 억류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배의 서류상 소유주는 중국으로 되어 있고 국적은 시에라리온인 국적 세탁선이라 수 없이 풀려난 적이 있다. 북한 선원 20여 명만 강제 추방당했다. 다국적 해운 산업에서는 흔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또한 국제 선박은 치외법권인 기국주의라 국기를 단 나라 법에 따르게 되어있다. 페이퍼 컴퍼니로 적을 빌려주는 나라는 사무실 하나 차려놓고 거의 공돈에 가까운 떼돈을 번다. 파나마, 라이베리아, 홍콩, 싱가포르 등이 많은 편의치적선을 보유하고 있다. 선주협회 자료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천여 척 이상이 파나마 국기를 달고 운항 중이라고 나온다. 역설적으로 우리나라도 각종 세금과 규제를 낮추고 편의치적선을 유치하면 이거 또한 손 안 대고 코 푸는 사업일 수 있다. 또한 다른 나라 국기를 달고 다니는 한국 선주 배도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고.


함부르크 항에 다다르자, 컨테이너가 산더미같이 부두를 메우고 있다. 남희가 탄성을 지른다.

~, 바다에서 보는 육지는 넘 환상이다.”

“응, 육지에서 보는 바다도 아름답지만 이렇게 배에서 바다와 어우러져서 보이는 육지가 더 아름다울 거야.”

“전에 해양수산부 장관이 함부르크에 방문했을 때 취재하러 와서 여길 와 봤는데 그 경치보다 훨씬 죽인다.”

“응, 그 양반? 나도 전에 부산에 입항해서 선 타고 세관 부두로 상륙한 적이 있었어. 그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따라갔었지. 배 타다 오랜만에 상륙 나가면 다 새롭고 신기하잖아. 동구 국회의원 선거 유세하는 자리인 모양인데 보안사 장군 출신 후보는 조리 있게 말을 잘하더구먼. 근데 변호사 출신인 그 후보는 준비가 덜 됐는지 원고를 책 읽듯이 그냥 읽던데 인기는 좋은가 보더라.”


부두가 가까워지자 'ALL STATION, ALL STAND BY' 상황이 떨어졌다. 우리도 내 위치인 통신실로 들어갔다.

“브리지 여기 풉, 감도 있습니까?”

“풉, 감도 좋아요.”

선미에서 이항사의 마이크 소리에 삼항사가 바로 대답했다.

남희가 생글거리며 묻는다.

“자기야, ‘POOP’ 뭐라 하는데 그게 뭐야?”

“응, 하하하~. 이거 나미 때문에 다시 재방송해야겠구나. 옛날에는 배 뒤꽁무니에서 일을 봤대. 그래서 선미를, 엉덩이를 뜻하는 영어로 ‘POOP’이라 한대.”  

“뭐, 선미? 하하하. 아이고, 배야.”

“너무 그러지 마라. 듣는 선미 씨 기분 나쁘겠다.”


선박 무선 전화 VHF에서 선박과 함부르크 무선국 그리고 Port Control과 교신하는 소리가 치이~ 하는 잡음과 함께 시끄럽게 들린다.

“자기야. 정말 배에서 하는 무선전화는 다 들리네. 어디 어디서 는 거야?”

남희가 묻기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가까이 있는 배에서는 다 들리고, 우리 배에서는 브리지, 통신실, 캡틴 집무실 그리고 화물 당직실에 저게 있어.”

“어머머, 이를 어째? 그럼, 로테르담에서 무전으로 한 내 이야기 다른 사람들이 다 들었겠네.”

분홍빛으로 변하는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남희가 종알거린다. 그런 그녀가 귀여워서 가볍게 안아주며 이마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하하하. 로테르담에서 한국말 알아듣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김치찌개 만들어줄게, 같이 갈래?”

남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로 대답했다.

“그래, 가!”

“그래, 그럼. 보통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외부 사람이 들어오는 걸 좀 싫어하는 편이거든. 내가 사주부 부서장인데 설마 눈치야 줄라고. 더군다나 공주님이 같이 있는데, 하하하~.”

도봉산에서 과 친구들과 놀러 가서 했던 것처럼 삼겹살 푹푹 썰어 삭힌 김치와 볶아서 김치찌개를 금방 끓여 남희와 간을 보고 있는데 선내 방송이 들렸다.

“국장. 수속관과 방송국 직원들 갱웨이 밑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얼른 가 보소.”

나는 급히 입을 물로 헹구고 넥타이를 고쳐 매며 남희와 같이 현문으로 나갔다.


배에 올라온 수속관, 대리점 직원과 인사를 하고 방송국 직원들과도 반갑게 악수했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방송국 직원이 남희에게 급하게 한다.

“어이, 나미 씨. 내일 본에서 G8 외무 장관 회담이 있다고 지사장님이 내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오라고 하네요. 그리 알고 준비해요.”

“어머~ 어린 왕자의 북유럽 항해일지는 어쩌고?

남희가 아쉬운지 들릴 듯 말 듯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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