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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Jan 23. 2024

너무 사랑했기에 못다 한 말


바다 같은 강을 바라보고 있으니, 바다가 보고 싶다. 남희와 마주 앉아 있는데 그녀가 애타게 그리운 건 왜일까? 함부르크의 노천카페에서 아 말 없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시나몬과 스위트 바질이 들어간 따뜻한 글뤼바인을 두 병째 시킨다. 서서히 익숙해지는 어둠 속의 촛불처럼 무엇인가를 향하여 불타고 있는 남희의 이글거리는 눈동자.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자기,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고 있어?”

“....”

“말해 봐! 아무 이야기든.”

“....


함부르크는 독일의 북쪽에 위치한 큰 내륙항구이다. 해안으로부터 110km 가까이 강을 타고 들어가야만 한다. 내륙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무역항으로 육로와 철도, 운하로 이어지천혜의 환경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대전쯤에 대형 화물선이 드나든다고 생각하면 될까.


부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시청사 건물로 쓰고 있는 19세기에 지었다는 라타우스를 지나 광장 옆에 화사한 파라솔을 쳐놓은 카페에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길  시간 넘었을까. 옆에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액세서리를 파는 에게 머리의 젊은이들 있고 가난한 거리 예술가들의 버스킹 공연도 보인다. 선착장에는 기다리지 않아도 탈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유람선이 보였다. 큰 도시지만, 여느 작은 도시와 같이 조용하고 깨끗하게 느껴진다.


테이블에는 반쯤 먹다 만 햄버거가 슬프게 놓여있다. 햄버거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다. 아마 13세기 몽골 제국의 칭기즈칸이 유라시아 대륙을 정벌할 때 며칠씩 쉬지 않고 말을 달리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만들어 몽골이 모스크바를 점령하면서 러시아에 전해졌다고 한다. 후 17세기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 알려졌다. ‘함부르크 스테이크’는 선원들을 통해 뉴욕에 전파되어 요즘의 햄버거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 선원들이 역사에 쓰여있지 않은  역할을 한 작은 일화이다.


“나미야! 나 배 내릴까?”

“....”

“나, 이대로 내일 나미를 못 보낼 거 같아.”

“....”


떠들썩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옆자리에 앉는다.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의 축구 시합이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벨기에로 팔린 브레멘의 유명한 맥주 BECKS DRAFT를 시켜 마시면서 주위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흥분해서 왁자지껄하니 떠들어댄다.


손흥민 선수의 전설은 함부르크 SV에서 원더 보이로 시작되었다. 비틀스 또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무명 시절 함부르크의 한 클럽에서 공연 중간 쉬는 시간에 심심풀이 땅콩 자격연주했단다. 그러나 비틀스는 그곳에서 쉬지 않고 매일 연습하 라이브 공연을 소화했기성장하여 고향 리버풀돌아가서 뜨기 시작했. 그리고 비틀스의 전설이 익어갔다. 1960년대 미국 레코드 판매의 반 이상이 비틀스의 노래였고, 그들이 방송에 출연한 날 밤에는 미국의 10대가 저지른 강력 범죄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역사를 새로 썼고 전설이 완성되었다. 비틀스가 무명 시절 연예계 선배였던 가수 윤복희 씨가 초대되어 그들의 무대를 빛내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때 그들이 그렇게 클 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세상은 살아봐야 아는 모양이다. 타이슨 더글러스 선생에게 아작나 쓰러지기 훨씬 전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누구나 다 처음에는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처맞기 전까진...."


너무 시끄러워 눈짓으로 남희에게 일어나자고 신호를 보냈다. 멀지 않은 곳에 성 니콜라스 교회가 보였다. 12세에 지어졌다고 하는 이 교회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모두 파괴되고 147m 높이의 종탑만 남아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자 유지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아라비아 상인에 의해 KURIA로 서양에 알려지기 시작한 고려 시대에 해당하는 시기라니 그 역사와 높이에 압도당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물론 입장료를 내야 들어간다. 그러면 당연히 그 안에 있는 아주 오래된 역사적인 사진을 다 볼 수 있다. 희한하게 시내 먼 곳 어디에도 산이 보이지 않는다.


“자기야!”

남희가 팔짱을 낀 채 부른다.

“응....”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데?”

“아니, 뭐. 할 말이....”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알고 있지? 동숭동 눈 오던 그때보다도 더 오래전, 아니 강촌에 엠티 갈 때 그전부터....”

“....”

“내 가슴 한쪽은 늘 네게 가 있을 거야. 이제 우리는 혼자가 아니야. 너는 혜린이 언니의 고통을 이겨내고 키일 운하에서 당당히 정면을 마주 보고 설 수 있었잖아.”

“....”

“너는 너의 자리에서 나는 나의 자리에서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는 날까지, 이렇게 서로를 가슴으로 안고 사는 거야.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고 싶어.”

“....”


“자기야, 그만 자.”

그렇게 돌아서는 남희의 모습이 왠지 처연하게 느껴진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검푸른 엘베강이 도시의 불빛에 거울처럼 반사되어 반짝이고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탈래탈래 물먹은 솜 모양 힘없이 ‘HAPPY NINA’ 호에 돌아오자, 항사가 입을 함지박만큼 벌리고 둘을 반긴다.

“특파원 아가씨! 어린 왕자의 항해일지는 어케 되지요? 마눌님에게 우리 배 테레비에 나올 거라고 자랑해 놓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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