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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Jan 26. 2024

Fedra, 죽어도 좋아

노르웨이의 어틀란틱 로드


‘HAPPY NINA’ 호는 함부르크에서 하역을 마치고 엘베강을 빠져나와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북해로 들어갔다. 다음 하역지인 바이킹의 나라 노르웨이의 크리스티안순드와 트론헤임을 향해 전속력으로 항해하고 있다. 남희를 보내고 정신 놓고 살다 보니 말을 하도 안 해 입안에 거미줄이 쳐진 것 같다. 북해를 항해하니 역사학자 토인비 선생이 말하던 사딘 비애가 생각난다. 북해에서 청어잡이를 하는 어부들은 런던까지 고기를 싱싱하게 살려서 갖고 와야 좋은 값을 받았다. 어부들이 아무리 빨리 와도 배가 런던에 도착하면 성질 급한 청어들은 거의 다 죽었다. 그러나 한 어부의 청어만 싱싱하게 산 채로 도착하는 것이었다. 동료 어부들이 부러워서 그 비결을 물어보니 그는 한참 망설이다가 어창에 작은 상어를 한 마리 집어넣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동료 어부들이 놀라 물었다.

“그러면 상어가 청어를 다 잡아먹지 않나요?”

똑똑한 어부는 말했다.

“네, 상어가 사딘 몇 마리는 잡아먹습니다. 하지만 그 어창 안에 있는 수많은 고기는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치지요. 좁은 어창에서 그렇게 도망 다니다 보니 먼 런던에 도착해도 청어는 여전히 살아서 싱싱합니다.”

상어의 공격에 살아남기 위한 긴장의 연속이 결국 청어의 생명을 연장한 것이다. 노르웨이는 미세먼지가 없는 청정지역으로 손꼽는 나라인데 빙하가 만들어놓은 말갈기 같은 피오르 지형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 그리고 우리 밥반찬이나 술안주로 자주  고등어와 연어가 이 청정지역에서 잘 자라 우리나라에서 수입을 많이 한다.


‘HAPPY NINA’ 호의 노르웨이 첫 하역지인 크리스티안순드 항에서 삼사십 킬로 떨어진 곳에 Atlantic Road가 있다. 자동차나 타이어 광고 촬영지로 유명한 그 해안도로 말이다. 그 도로는 작은 섬들을 연결한 7개의 다리로 약 10 정도 된다. 거친 바닷바람과 파도영향을 덜 받게 하려고 구불구불하게 만든 다리로 위험해 보이지만, 보이기에 그럴 뿐 실제로는 매우 안전하다고 한다. 해안으로 폭풍이 몰아칠 때 운전자들은 성난 파도를 눈으로 보면서 그 속을 뚫고 질주하는 쾌감을 맛볼 수 있다. 이탈리아 알프스 산기슭에 지그재그로 나 있는 스텔비오 패스, 캐나다의 겨울에 얼어붙은 아이스 도로, 뉴질랜드 해안의 환상적인 그레이트 코스트 로드 등과 함께 세계에서 손꼽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이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우리 대한국인 마도로스가 이런 곳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항해 중 모처럼 싸롱 사관이 모두 한자리에서 식사할 때 캡틴이 말을 꺼낸다.

“크리스티안순드 도착하면 어틀란틱 로드를 가 봐야지?”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캡틴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기관장님, 어떻소?”

기관장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한다.

“캡틴. 미안하지만, 우리 배가 낡아서 배 붙이면 엔진 오버홀을 해야겠소. 일기사도 마찬가지고.”

“그래요, 미안해서 어쩌지. 쵸사는?”

캡틴의 질문에 일항사가 방긋방긋 웃으며 대답한다.

“아, 저야 선장님만 허락하시면 어디든지 따라가지요. 하하하~.”

“그려, 그러면 국장은?”

“가지요!”

대답에 안 선장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국장은 대리점에 연락해서 Jeep 차 한 대 렌트해요. 우리 셋이 갑시다. 패스포트와 국제 운전면허 다 챙기고.”


입항하고 뒷날 아침, 일항사는 이삼등 항해사와 갑판장에게 작업 지시를 하고 캡틴과 같이 에이전트가 가지고 온 지프로 다. 차 옆에서 바다를 보며 스트레칭하는 나에게 캡틴이 말을 건다.

“운전은 누가 하지?”

나는 인사를 하면서 일항사 얼굴을 쳐다보자, 손사래를 치고 웃으며 말한다.

“갈 때는 국장이 하소. 거기서 맥주 한 잔이라도 하면 올 때 또 졸라.”

계면쩍게 웃으며 내가 대답했다.

“그러죠, 뭐. 가다가 안 선장님도 심심하시면 운전하시고요.”

아기자기한 64번 도로를 달리는 사륜구동 지프 앞과 옆으로 푸르른 침엽수림과 깎아지른 듯한 피오르, 그리고 상큼한 바다에 그동안 애끓던 가슴마저 뻥 뚫리는 기분이다. 아~,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또 어디 가서 볼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 멘도사에서 안데스산맥을 넘어 산티아고 데 칠레 가는 길도 장엄하고 아름답지만, 이 길 또한.


나는 운전하면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낀다. 남희와 헤어지며 느낀 아픔이 성장통이 아닌지 차라리 고맙게 느껴진다. 그녀가 두고 간 마음 한쪽이 내 가슴에 언제나 살아서 숨쉬기에....

“어이, 국장! 운전 연습하는 거요?”

어쩌다 보이는 차들이 모두 앞질러 가자, 일항사가 조바심이 난 듯 말을 건다. 이어 캡틴의 말.

“냅둬, 저 범생이. 어틀란틱 로드까지 삼사십 분이면 갈 텐데. 전에 요코하마에서 온천 갔다 밤에 돌아올 때 보니까 신호 고장 났는지도 모르고 차도 없는데 마냥 기다리고 있던데....”


! 정말 대단하다.”

어틀란틱 로드가 보이자 모두 탄성을 지른다. 곳곳에 각양각색의 차들이 보이고 차에서 내려 사진 찍는 투어리스트커플이 많이 보인다. 묘기 대행진에서나 볼 수 있는 경사 곡선로에 다다르자, 파도가 다리 위로 넘나드는 것이 보인다. 남희의 환영과 파도가 넘실대는 어틀란틱 로드의 가파른 경사길에 내 가슴도 뛰어 기어를 바꾸고 액셀레이터를 꾹 밟으며 고함을 질렀다.

“페~드라~~~!”

옆에 타고 있는 캡틴과 뒤에 타고 있는 일항사의 당황하면서 다급한 소리가 바람과 파도에 묻혀 사그라진다.

“어~ 국장, 왜 그리 빨리 가나?”

캡틴의 말과 동시에 일항사도 소리 지른다.

어어이~ 나미 씨는 안 고 웬 댕댕이 이름을 부르고 난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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