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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Apr 07. 2024

브라질 오지에 있는 우부 항으로



육지와 아름다운 다리로만 연결된 대서양의 작지 않은 섬인 비토리아 항에서 비료를 다 풀어주었다.

하얀 티의 브라질 소녀와 꿈같은 만남을 뒤로한 채 포인트 우부 항을 향해 떠나는 'HAPPY LATIN' 호는 공선으로 배가 높이 떠서 쓸쓸하게 보인다.


비토리아 항과 포인트 우부 항은 같은 주로 70여 km 떨어져 있다.

불과 몇 시간만 항해하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라서 갑판부원들이 갑판과 선창 물청소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다행히 포대에 담긴 하얀 비료를 풀어주어 선내가 그다지 더럽지는 않다.

선교에서 작업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캡틴과 기관장이 마이크로 일항사에게 소리친다.

“어이, 쵸사! 마이크 들리나?”

우의를 입고 헬멧을 쓴 일항사가 손을 번쩍 든다.

“바쁘게 출항하고 워싱하느라 수고가 많네. 오늘 점심은 아사도를 굽고 있으니 같이 식사하게 얼른 오소.”

다시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어 알았다는 시늉을 하는 남미 카우보이 가우초같이 까맣게 탄 항사 얼굴에 하얀 이가 반짝인다.

참 나이에 비해 동안으로 보인다.

배 타고 있으면 육상에 비해 근심 걱정은 별로 없겠지.


캡틴과 기관장이 식당으로 내려가면서 통신실 앞에서 밥 먹으러 가자고 큰 소리로 말한다.

본사에 보낼 보고서와 입항서류를 작성하고 있는데 금방 끝날 일이 아니라서 얼른 대답하고 따라나섰다.

당직 교대를 위해 먼저 식사하는 이항사와 이기사가 반갑게 인사한다.

캡틴과 기관장이 먼저 앉고 내가 자리에 앉자 피곤해 보이는 일항사와 일기사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이어 금방 구운 아사도가 먹음직스럽게 큰 접시에 담겨 식탁 위에 놓인다.

사탕수수로 만든 브라질 삥가 잔을 부딪치며 달짝지근한 반주를 한 모금씩 하고 칼질을 시작한다.

브라질의 국민 칵테일이라 불리는 까이삐리냐는 포르투갈어로 ‘시골 아가씨’라는 뜻이다.

사탕수수를 증류한 까샤사는 브라질의 국민 소주인데 도수가 40%가 넘는다.

까샤사는 민속주, 삥가라고도 다.

브라질 교민들에 삥가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면 ‘마시면 뿅 가서 삥가지’라고 대답한단다.

유럽, 미국 등지에서도 매우 인기 있는 까이삐리냐라칵테일은 삥가에 라임과 설탕을 넣으면 된다.

브라질 정부에서는 오직 까샤사로 만든 칵테일만이 까이삐리냐로 불리도록 관련 법을 만들고 국제표준화기구(ISO)에 등록하였다고 한다.


일기사는 앞에 있는 엔살라다가 부족해 보였는지 옆에 대기 중인 싸롱에게 양상추와 토마토를 더 가져오라고 하면서 입을 연다.

“외국에선 토마토가 과일이 아니고 채소인데 선원들은 많이 먹어야 해요. 쇼군이라는 일본 소설 보니까 장기 항해 중에 배에 과일과 채소가 떨어져서 선원들이 괴혈병으로 잇몸에서 피가 나고 이가 뭉텅뭉텅 빠진다고 쓰여 있더라고요.”

“그려, 장기 항해할 때는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어야지.”

거구의 캡틴이 계속 말한다.

“어이, 이번에 비토리아에 상륙해서 재미들 봤나? 모두 영 피곤해 보여.”

사관들이 식사하며 모두 한바탕 웃는다.


“말이 나온 김에 일기사, 자네가 좋아하는 바나나가 나무여, 뭐여?”

“네, 그거 바나나 나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일기사 대답에 캡틴이 웃으며 말했다.

“그게 말이지 도시 아이들이 벼를 보고 쌀나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네. 바나나는 나무가 아니고 여러해살이풀이라네. 열매가 많이 맺히게 수확하고 매년 베어버려서 그렇지, 그렇다고 토마토같이 채소라고 하지는 않고 과일이 맞네.


브라질!

정말 대단한 나라이다.

노란색과 축구, 삼바 축제를 연상시키는 나라.

어디 축구만 있나?

농구, 배구도 얼마나 잘하는데.

칠레와 에콰도르를 제외한 모든 남미 국가와 국경선을 접할 만큼 땅이 넓은 나라.

지구의 허파 아마존을 품고 있으면서 엄청난 자연의 보고이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미지의 나라.

그리고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고 있는 정다운 나라.

학교 다닐 때 우리나라 정반대 편이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 남동 해상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제주도의 대척점이 브라질 남부라는 사실은 잘 모른다.


포르투갈어는 브라질, 마카오, 동티모르 그리고 일부 아프리카에서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고 사용자가 이억 사천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 국가 중에서는 브라질의 인구가 이억 이상으로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인구 겨우 천만인 포르투갈 본토보다 브라질식 포어가 대세이다.

두 나라 간에 포르투갈어 이해도는 70% 정도로 영국식 영어와 미국식 영어로 비교하면 될까.


맛있게 밥 먹고 커피 한잔 마신 후 잠시 쉬었다가 출항 전문을 보냈다.

입항 서류와 본사 보고서를 다 작성하고 어둑어둑해지는 창밖을 보고 방광 커튼을 쳤다.

조금 있으면 포인트 우부 항에 도착한다.


복도에서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한바다에서 웬 매미?

통신실 문을 여니 수백 마리는 됨직한 왕매미가 복도 형광등 앞에서 춤을 추고 있다.

나라가 크니 매미도 오지게 크네.

그들에게는 기나긴 세월인 칠 년을 땅과 물속에서 살다가 그 허물을 벗고 날개가 생겨 고작 칠 일을 맴맴 다 간다는 그 매미들이 어찌하여 안식처인 나무 그늘을 못 찾고 여기 배까지 와서 생을 마치는고.

이것도 그들의 삶이 빛을 찾아 열정적으로 살다가 가는 아름다운 갈무리인가.

걱정할 것도 두려워할 아무것도 없이 그저 화려한 인공의 빛 앞에 본능의 날갯짓을 하는 왕매미.

너의 몸과 옷은 자연이 준 것.

어미가 그랬듯이 너도 덧없이 홀로 무념무상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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