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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Apr 08. 2024

지젤 번천 닮은 아짐과 마의 버뮤다 삼각지대


포인트 우부 항에서 입항 수속을 마치고 접안하자마자 선창을 열고 순식간에 컨베이어로 쏟아붓는 숯덩이.

선창에서 숯 먼지가 시커멓게 올라온다.

갑판 당직자들은 눈만 빼꼼하고 하얀 안전모와 마스크, 스즈키 작업복이 검게 변해 마치 캄캄한 밤의 유령 같다.

‘HAPPY LATIN’ 호의 원색은 사라지고 흰색의 하우스 마린까지도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어 갔다.

숯 먼지가 선내 에어컨으로 슬금슬금 들어와 덥지만, 에어컨을 껐다.

숯 미세먼지에 도저히 배에 있을 수가 없어서 상륙을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 항구는 달랑 숯 하치장과 전용 부두만 있는 정글 속의 오지다.

사람 사는 마을까지 가려면 차 타고 한 시간은 나가야 한단다.

당직이 아닌 일항사와 일기사와 함께 대리점 차를 타고 나가다가 검은 진흙 길에서 차가 빠졌다.

근처에 있던 불도저가 도와줘 진흙탕 길을 빠져나왔으나 그 바람에 차가 좀 찌그러졌다.

주머니에서 20불인가 꺼내주었는데 미안해서 어쩌나...


한 삼십 분쯤 비포장 편도 일 차선을 살살 가니 작은 간판이 달린 집 한 채가 덩그러니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일단 차를 세워 들어가 봤다.

와우~ 간단한 음식을 파는 간이 카페였다.

게다가 서빙하는 아짐이 지젤 번천같이 키가 크고 미모의 글래머이다.

지젤 번천은 브라질이 낳은 세계적인 슈퍼 모델이시다.

패션계의 전설 클라우디아 시퍼와 나오미 캠벨도 지젤 번천이야말로 이 시대의 최고의 슈퍼 모델이라고 극찬했단다.

입이 쩍 벌어진 일기사가 술이 고팠는지 맥주부터 가지고 오라 했다.

입꼬리가 귀에 걸린 일항사님께서 여기 음식 맛있는 거 다 가지고 오라고 골든벨 울리듯이 호기 있게 말하고 지젤 아짐은 자기 옆에 앉으라 명했다.


조금 있으니, 안에서 웃어서 아름다운 젊은 아가씨 세 명이 방긋하며 나타났다.

눈동자가 홱 돌아간 일항사는 지젤 아짐에게 빨리빨리 음식 만들어 오라고 보채서 내보내고 웃는 모습이 예쁜 싱그러운 아가씨를 옆에 앉혔다.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호프와 옥수수를 발효해 만든 물 탄 맥주 같은 느낌이 나는 브라질 맥주를 박스로 갖고 오고 노란색의 걸쭉한 수프 타카가가 먼저 나왔다.

타피오카 가루를 끓이면서 말린 새우와 고추 등을 넣어 약간 맵고 감칠맛 나는 브라질 수프이다.

이어 꼬치구이 슈하스코가 따라 나왔다.

고기에 채소를 끼워 숯불에 구운,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브라질 대표 음식 중 하나이다.

포르투갈 사람이 아주 좋아한다는 대구 튀김도 나왔다.

레몬즙이 많이 들어갔는지 새콤하면서 맛있다.

한참 부어라 마셔라 먹고 있으니 우리나라 부대찌개 같은 서글픈 유래가 있다는 페이조아다가 대령했다.

페이조아다는 먹을 것이 부족했던 사탕수수밭의 흑인 노예들이 주인들이 먹지 않는 돼지 코, 귀나 꼬리 등을 에 넣고 검은콩, 햄, 소시지와 함께 푹푹 끓여서 여러 사람이 먹는 음식이다.

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 음식은 워낙 칼로리가 높고 소화가 금방 안 돼 브라질 레스토랑에서 토요일 점심으로 먹는 요리로 자리 잡았단다.

우리나라의 의정부 부대찌개 유래와 비슷하다.


시간이 번쩍이는 번개같이 흘러 젊은 지젤 번천 같은 아가씨들과 행복한 육상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문 앞까지 나와 미소 반 눈물 반으로 바이바이하는 이국의 아리따운 아가씨들과 아짐에게 애처로운 포옹과 볼 키스를 하고 차에 탔다.

이제 이 브라질의 아리따운 아가씨들을 언제 다시 만나려나...


배로 돌아오니 부두 가로등과 배의 강렬한 백열등에 숯가루가 검은 안개처럼 보인다.

브리지에 있던 캡틴과 기관장이 우리를 보고 반가워서 맥주 한잔 더하자고 해 모두 기관장 방으로 갔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기관장님이 물었다.

"조 국장님, 거 국장이 인터넷에 항해일지를 올린다면서 누가 보긴 봐요?"

"에이, 잘 안 보죠. 아~ 바쁘게 팍팍 돌아가는 육상에서 뱃놈들 바다 이야기를 볼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내 대답에 안 선장님이 말했다.

"재미있으면 다 보게 돼 있어요. 뻥도 치고 웃겨야 하는데 재미있게 쓰질 못하는 모양이구먼."

"그러게요. 그런데 우리 항해일지를 관심 있게 보는 분들이 몇 있긴 해요."

일항사가 '뭔데, 뭔데?' 하면서 급관심을 보였다.

"얼굴은 모르지만, 싱가포르 사셨던 종씨 한 분이 정성 들여 댓글을 쓰시면서 어렸을 때 책에서 봤다는 버뮤다 삼각지대에 관심을 두고 계시더라고요."

일기사가 '종씨라니?'라고 물었다.

"네, 닉네임이 조명 님이라고 절간 같은 곳에 사시나 봐요."

일항사가 웃으며 거들었다.

"뭔 종씨? 인터넷에서 얼굴도 이름도 모르고 아이디로만 소통하니까 장례식에서 사달이 났다지. 봉투에 본명을 쓰자니 모를 테고 해서 닉네임을 적었는데 '내비도, E좋은세상' 이런 것은 애교로 봐줄 수 있는데 초상집에서 '저승사자, 마귀할멈' 같은 것은 웃기지도 않는 거지요."




버뮤다제도와 플로리다, 푸에르토리코를 잇는 삼각형의 해역을 버뮤다 삼각지대라고 말한다.

대항해시대부터 캐리비안 해적과 싸워 죽거나 각종 질병, 기아에 죽고 백골만 남은 유령선이 떠다닌다는 바다 전설이 있던 곳이다.

1945년 미 해군 항공대 1개 편대가 버뮤다 해역에서 사라지고 구조하러 간 비행기까지 감쪽같이 없어진 사고를 마이애미 헤럴드지 기자 에드워드 존스가 마의 삼각지대라고 보도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특종에 목매는 기자들이 재미있게 각색하고 왜곡하면서 미스터리한 장소로 소문이 났다.

그 뒤로 항해하던 배가 어느 날 갑자기 감쪽같이 사라졌다, 여객선에서 유령이 나타났다, 벽에 걸어놓은 초상화가 순식간에 좌우가 바뀌었다는 등의 온갖 헛소문과 소설, 영화가 나왔다.

그때부터 많은 사람이 그곳이 4차원의 문이라는 이야기에서 UFO 해저 기지 설, 수수께끼 같은 해양 괴물 설까지 나왔다.


그러나 미국 해안경비대가 조사해 보니 순전히 우연이라고 결론 내렸다.

 항로로 비행기와 선박이 워낙 많이 다니는데 육지와 멀어서 사고가 일어나도 금방 발견하거나 구조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버뮤다 해역은 허리케인이 많이 발생하는 곳이어서 사고가 더 잦다.

이렇듯이 통행량이 많은 만큼 사고도 잦다는 당연한 사실이 과대 포장된 것이다.

또 평범한 사건에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미스터리 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엉터리 기사를 써 독자의 관심을 끌려는 경우도 많았다.  

세계의 불가사의 편에는 버뮤다 삼각 지대가 마치 사실인 양 쓰여있다.

어린아이나 학생들이 보면 진짜처럼 믿기 다.

지금도 이 좋은 세상에 버뮤다 삼각지대 부근에는 하루 수천, 수만 대의 비행기나 배가 다니고 있다.

글쓴이도 카리브해나 버뮤다 삼각지대를 배나 비행기 타고 여러 번 지나다녔지만 암시랑 안 했다.

밤에 항해할 때는 은근히 겁이 나긴 했지만...

방귀가 잦으면 건더기가 나올 수도 있는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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