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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Apr 28. 2024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항, 브레머하펜

악명 높았던 유보트


“안개가 더럽게 많이 꼈네. 앞이 하나도 안 보이잖아.”

북해의 매섭고 차가운 칼바람과 함께 엘베 강에는 짙은 안개로 한 치 앞이 안 보였다.

캡틴이 혀를 차면서 삼항사에게 올 스탠바이를 지시했다.

“올 스탠바이, 써!”

삼항사의 절도 있는 복창 소리와 함께 ‘올 스탠바이, 올 스테이션!’이 선내 스피커에 울려 퍼진다.

이어 잿빛 수염을 멋지게 기른 도선사가 배에 올라오고 선수와 선미 그리고 선교에서 출항하기 위해 부두에 묶인 굵은 밧줄을 끌어 올리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항해사와 갑판부 직원들의 마이크 소리가 부두를 뒤흔들었다.

캡틴이 마이크로 항해사들에게 ‘안개 때문에 앞이 안 보이니 사고 나지 않게 모두 조심들 하시오.’라고 지시하는 한국말이 스피커에서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본선을 부두에서 떼어내려고 터그보트  척이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HAPPY LATIN’ 호를 강 한가운데로 예인하였다.

뱃고동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면서 무중항해임을 실감나게 해준다.

바로 앞도 잘 안 보이는 시계 제로.

이럴 때는 레이더를 주시하며 주위의 배나 구조물과 충돌하지 않게 온 신경을 집중하며 항해해야 한다.

함부르크에서 자동차를 무사히 선적하였다.

나머지는 자동차 운반선이 한꺼번에 15척이 접안할 수 있는 세계 최대의 자동차 수출 항구 중 하나인 브레머하펜에서 싣는다.

거기까지 100해리가 좀 넘으니 7~8시간 연안을 항해해야 한다.


서북유럽 수출입 화물은 모두 북해를 거쳐야 하기에 선박 통행량이 무척 많다.

‘HAPPY LATIN’ 호는 짙은 안개를 뚫고 북해의 거친 파도를 씩씩하게 헤쳐 나가며 지나가는 배의 뱃고동 소리를 끊임없이 들으며 항해했다.

캡틴이 무중항해에 얼마나 신경 썼는지 충혈된 눈을 깜박이며 본사와 용선주 그리고 대리점에 보낼 전보를 가지고 통신실로 왔다.

고개를 숙이며 눈인사하고 송수신기를 작동하 조난 호출, 응답 주파수인 500kHz에 자동으로 켜졌다.


여기서 잠깐 조난신호인 SOS에 대해 언급하자면, 속설에 ‘Save Our Ship.(우리 배를 구해주세요.)’ 또는 ‘Save Our Soul.(우리 영혼을 구하소서.)’의 약자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사실은 모스부호는 점과 선을 조합해서 만들어 그 부호 중에서 조난 시 가장 치기 쉽고 헷갈리지 않는 점 3개와 선 3개의 조합인 '돈돈돈 쓰쓰쓰 돈돈돈'을 쓰는 것이다.

항해 중에 SOS 신호가 나오면 조난선과의 통신 이외에는 국제 조난 통신 주파수인 500kHz 사용이 금지되며, 국제 해상인명안전조약인 SOLAS 규정에 따라 구조를 위해서 최선의 조치를 해야 한다.

아무리 운항 스케줄이 바빠도 선박 책임자들은 이 조난신호를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입장을 바꿔놓고 내가 조난했을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만일 육상에서 밤에 휴대전화도 안 터지는 곳에서 조난했을 때는 일단 주위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시라.

랜턴이나 불 들어오는 것으로 이 SOS 신호,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그리고 짧게 세 번 발광신호를 반복해서 보내면 누군가 조난을 알아채고 구조하러 올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가는 브레머하펜은 브레멘의 관문 항이다.

독일어로 ‘hafen, haven’은 항구를 뜻한다.

브레멘은 베저 강 입구 쪽에 있어 북해와 내륙 운하를 통해 수산업과 무역이 발달하여 엄청난 부를 쌓았다.

1800년대 질풍노도와 같은 나폴레옹 병사가 브레멘을 점령하면서 프랑스의 속국이 되었으나, 그의 몰락과 함께 다시 독일 연방에 속하게 된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운송업이 폭발적으로 번창하여 1827년 해운업을 좀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하노버 왕국의 항구 일대를 사들인다.

베저 강에서 북해로 빠지는 그곳이 바로 Bremerhafen이다.




요즘 유튜브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고 있는데, 발음이 비슷한 독일의 유보트는 1, 2차 세계 대전 중 엄청난 전공을 세우며 연합군에 악명이 높았다.

브레머하펜에는 2차 대전에 쓰던 독일군의 Under sea boat가 잘 보존되어 있다.

양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 함선을 무수히 격침해 한때 영국을 거의 패전 직전까지 몰아갔던 독일 해군의 일등 공신인 유보트.

전성기 유보트의 힘은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당시 독일 해군이 보잘것없는 전력이어서 유보트로 영국을 공격하는 작전이 매우 효과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최북단 스캐퍼 플로우 해군기지에 침투한 독일의 유보트가 전함 로열 오크 호를 격침하고 리펄스 호를 대파시켰다.

이때 영국 해군 800여 명이 전사했다.

그리고 날이 밝아오자, 영국군과 주민들이 보는 가운데 유유히 독일로 돌아가자 두 나라 다 난리가 났다.

‘독일에 100척의 유보트가 있으면, 수상함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고, 200척으로는 영국 바다를  차단할 수 있으며, 300척이 있다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독일 유보트 함대 사령관 카를 되니츠 제독이 장담했다.

히틀러는 너무 기뻐서 제독에게 300대를 만들어준다고 약속했다.

반면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경은 ‘전쟁 중 내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유보트였다. 그들이 우리의 생명선인 바다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독일이 유보트에 모든 것을 걸었으면 전쟁이 어떻게 끝났을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실제 독일의 유보트 수백 척 중 U-35 한 척이 연합군 선박 226척, 약 50만t을 격침했다고 전사에 기록되어 있다.


1943년까지도 유보트의 성과는 대단해 악명이 높았으나 창과 방패의 전략 대결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무기가 진화하였다.

유보트를 폭파하는 연합군의 폭뢰 성능과 폭격기의 장거리 비행 능력이 몇 배 우수해졌다.

영국의 암호 해독반이 독일군의 암호 발신 장치인 에니그마를 해독해 유보트의 위치, 목적지가 다 드러나게 되.

그 결과 독일은 천여 척의 유보트와 유능한 승조원 수만 명을 잃게 되었다.

전쟁 막바지에 북대서양에서 쓸 수 있는 유보트는 고작 열  남짓했다고 한다.

또, 미국의 무기 생산력이 절정에 달하면서 격침당하는 수보다 훨씬 많은 수송선이 유럽 항구에 속속 도착하게 되어 유보트가 더 큰 효과를 볼 수 없게 되며 독일이 패전의 길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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