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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언자 Oct 13. 2024

여덟째 날 - 나의 책상

시간과 공간이 주어져도

나만의 책상을 처음 가져본 것인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형제가 많았지만 집에는 책상이 언제나 하나였다. 그래서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언니들이 시집을 간 이후에 나만의 책상을 가져보지 않았을까 한다. 지금도 기억하는 것은 둘째 언니가 결혼한 날 집에 와서 나만의 방을 꾸민 것이다. 


함께 자라는 공간에 나만의 공간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지 않는다. 그러나 책상에 앉아 있는 동안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나만의 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꼭 나만의 책상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면 많은 것들을 편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도 마음껏 읽고, 글도 편하게 쓰고. 그 공간만 주어지면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만의 책상과 방이 주어졌다고 하여 내가 꿈꾸는 그런 시간들이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혼자가 되어보고 알게 되었다. 장소와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면 가치가 없어져버린다. 책을 읽어도, 글을 써도 그 시간이 만족스럽지 않다.


이제는 혼자의 시간이 너무나 확실히 주어지고 나만의 책상도 잘 꾸며져 있지만 내가 꿈꾸는 그런 모습은 아니다. 혼자이고 싶은 마음이 외로움이 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오로지 집중하고 싶은 세계는 잡다한 생각으로 허물어지기를 반복한다.


내가 생각한 그런 공간은 누구와의 관계로 만들어지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꿈꾸는 공간을 만들어 가는 나의 집중이 그곳을 채워야 한다. 


나는 그동안 하지 못한 이유를 오로지 밖에서 찾고 있었다. 책상이 없어서, 나의 공간이 없어서. 그 이유가 사라지고 나는 다시 다른 이유를 찾고 있다. 내가 집중하지 못해서, 내가 재능이 없어서. 


가만히 내 책상에 앉아 이유를 찾는 시간이 아니라 짧게 집중하지만 책을 한 장 한 장 읽고, 글을 한 자 한 자 써보는 그 순간에 집중하자. 하지 못한 시간에 아쉬워하지 않고 채워나간 시간들을 먼저 생각하고.


이상하게 나는 외우는 것을 숫자로 하면 쉬웠다. 필요한 것들을 항목으로 외우면 어려웠는데 숫자로 하면 기억이 났다. 그렇다고 탁월한 암기력을 가진 것은 아니다. 갑자기 이 생각이 떠올른 것은 그동안 꾸준히 글 쓰는 것이 어려웠는데 오늘로 여덟째 날이란 글을 써면서 너무 낯설게 보였다. 내가 8일 동안 꾸준히 쓰고 있다니 스스로 기뼜다. 그동안 하지 못한 것을 지금 하고 있는 이유는 나의 절실함이 더해진 것인지, 아니면 숫자로 기록해 가는 의미가 좀 더 쉬이 글과 마주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찾은 방법이 이유가 되어 계속해서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다만 어떤 방법이 통하였던 유효기간이 있을 테니까 꾸준할 수 있는 다른 방법도 찾아보아야겠지만. 계속 글을 쓰는 것이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쓰는 것이다. 하지 않을 이유를 찾지 않고 할 이유를 계속 찾는 매일이 되도록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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