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째날 - 기억의 편중
강릉으로 가는 기차에서
오전 일정을 마무리하고 강릉행 기차에 올랐다. 코로나 이전에는 친구와 여행을 일 년에 한 번은 갔었는데 그 후에는 각자의 일정으로 함께 하지 못하였다. 오랜만에 하는 여행이 많이 설렌다,
나는 일정으로 미리 집으로 와야 했어 교통편을 확인해 보니 숙소가 강릉역에서 가까웠다. 오랜만에 기차여행도 좋을 것 같아 강릉역에서 보자고 했다. 물론 가는 길도 여행이지만 이번에는 혼자 기차를 타보는 경험도 새로울 것 같았다. 친구도 홀로 호캉스를 계획 중이라 흔쾌히 동의했다,
그래서 강릉행 기차에 오르게 되었다. 나의 첫 기차는 서울로 전학 가는 겨울방학이 끝난 후였다.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서울로 오는 길이었다. 엄마와 남동생과 같이 탄 버스가 눈으로 중간에 멈추게 되었다. 다행히 기차역에 내려주어 환행 기차를 탔었다. 정말 가도 가도 끝없는 기차였다. 사람들로 얼마나 많았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교통이 편리하지 않아 중간에 갈아타기도 많았었고 가는 길도 쉽지 않았다. 한마디로 정말 고생스러웠다. 그 기억이 오늘 다시 생각이 났다. 그 후에도 부모님 댁을 다녔으니 자주 기차를 이용했겠지만 그 후의 기억은 거의 없다. 아마도 첫 기차였고 힘든 시간이었어 기억이 더 선명하다.
기억이라는 것이 다시 떠오를 때는 냄새나 단어, 시간의 거스름등 어떤 매개체가 필요하다. 오늘은 그것이 기차라는 공간이 되어준다. 왜 기억의 편중이 이렇게 심할까. 분명히 좋은 기억들도 많을 텐데 좀 더 상세하게 기억나는 것들은 부정적인 것 들이다.
아프고 힘든 것, 불편하고 괴로운 것, 솔직히 잊고 싶은 기억들인데 사소한 것들로 인해 다시 떠오르고 다시 아파한다. 물론 그때보다는 덜함이겠지만. 물론 지금 기차 안에서 그 기억들이 온전히 불편한 것은 아니다. 다만 기억이 떠오를 때 좋은 기억이 먼저가 아닌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은 기억들이 먼저 떠오르고 좋지 않은 것들은 좀 더 빠르게 잊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변화를 위한 목적의식에는 좋지 않은 기억을 쓴다. 그때 그렇지 못하였기에 바꾸고 싶은 생각들이 변화를 가져온다. 그럼 어떤 기억을 가져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며 기억들로 현재가 무너지게 되는 경우가 있으면 안 된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기억의 편중이라는 것은 내가 선택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조금은 밀접한 공간에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기차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나만의 공간을 형성해 집중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나중에 이 기억이 좋은 기억으로 바로 잊히지 않고 다음에 기차라는 매개로 떠오를 때는 이 시간이 먼저 떠오르길 바란다. 이 한 편의 글에 집중하며 기억들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보는 시간에 즐거웠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