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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기자 Oct 12. 2021

2시간째 상담 중


끝났어? 
아니요, 하실 말씀이 많으신가봐요. 커피 한 잔 드리려고요.


후배는 지친 얼굴입니다. 그럴만도 합니다. 벌써 2시간째 처음 보는 어르신의 하소연을 듣고 있으니까요. 다들 꺼리는 '악성 제보자'를 만난 겁니다.

지역에서 놀란 게 주민들이 언론에 제보하고 기자 만나는 걸 정말 적극적으로 한다는 겁니다. 서울에서도 제보는 많았지만, 이렇게 직접 회사까지 찾아오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대부분은 방송사로 제보 메일/팩스를 보내거나 전화를 거는 정도입니다. 직접 방송사까지 찾아가는 제보자는 거의 없었지요. 


지역은 다릅니다. 끊임없이 회사를 찾아와 기자를 찾습니다. 심지어 보도국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갑자기 누군가 불쑥 들어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뒤따라온 경비 실장님이 막아서지만, 기자를 만나겠다며 막무가냅니다. 이럴 때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일어서야 합니다. 회사까지 찾아온 경우는 대부분 짧게 끝나는 경우는 없거든요. 


우선 회사를 찾아온 뒤에는 자신의 얘기를 기사화할 때까지 매일 같이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중에는 저희 사무실 모두가 그 분을 알게 됐습니다. 전화가 걸려오면 자연스레 


저 A 인데요. B 기자 좀 바꿔줘요.


그러면 그 전화는 제게 돌아오는 겁니다. 이런 분들은 새로운 기자와는 통화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긴 이야기를 또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보통 처음 만난 기자와 계속 통화하고 싶어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일방적으로 끊을 수도 없습니다. 저희는 매일 받는 제보 전화이지만, 당사자에게는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제보니까요.


사실, 제보 내용을 들어보면 대부분 소위 '이야기가 안 되는' 내용들입니다. 제보자 입장에서는 '이건 분명 9시 뉴스 내보낼 만한 내용'이라며 잔뜩 흥분해서 찾아오지만, 기자가 보는 시각과는 차이가 있곤 하지요. 다소 다툼이나 사건이 있다고 해서 세상만사 모두를 뉴스에 내보낸다면, 방송 시간이 24시간이라도 모자랄 겁니다. 그래서 기자는 수많은 제보 가운데서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물론 기자에게 제보와 제보자는 소중합니다. 기자가 발견 못 한 사회의 모순을 짚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매번 그런 건 아닙니다. 이번에 후배를 찾아온 분은 81살 어르신입니다. 방송사까지 오겠다며 차량으로 2시간을 달려 오셨답니다. 얼핏 봐도 제보 내용은 사사로운 것이었지만, 좀처럼 돌아가지 않으십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가끔은 '기자가 아니라 상담사가 된 기분'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마치 한풀이하듯 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는 후련한 얼굴로 돌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그 분들도 제보 내용이 기사화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누군가' 들어줄 사람, '누군가' 말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후배는 결국 어르신을 잘 타일러 돌려보냈습니다. 말씀해 주신 내용은 고맙지만, 뉴스화는 어렵다는 말과 함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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