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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한 채씩 사면 부자 될 줄 알았습니다

프로포즈 한 남편에게 통장잔고 0을 고백하던 날

by 시크릿져니

"지금이 기회입니다. 다들 서울을 바라보고 있지만, 지방엔 아직도 덜 오른 단지가 많습니다."

부동산 강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전세가가 오르는 지역을 보세요. 2년, 또는 4년 뒤 내가 투자한 금액이 회수된다면 그 이후부턴 수익률이 무한대가 되는거죠"


순간 머릿속에서 숫자가 빛의 속도로 돌아갔다.


"1년에 한 채씩 투자하면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5%씩 올리면 되고..와...대체 이게 얼마야??"

강의를 듣고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혼자 속으로 외쳤다.


"그래, 정기예금 풍차돌리기 하듯이 1년에 한 채씩만 사면 되겠네...대박인데?"

그렇게 내 목표가 정해졌다.


곧바로 살던 오피스텔을 전세에서 월세로 바꿨다. 그 자금으로 1년에 한 채씩, 2년에 두 채를 샀다. 예정대로라면 내년에 한 채를 더 사야 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찾아왔다.




"OO아, 앞으로 저와 함께 해줄래요?"



부동산 투자를 시작한 지 2년 차,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사귄 지 8개월만에 그에게서 프로포즈를 받았다. 내 생애 결혼은 없을 것 같았는데, 운명처럼 찾아와준 그였다.


하지만 나에겐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었다. 그 주 저녁, 소주 한잔에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빠... 저 사실 현금이 0이에요."

남자친구가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봤다.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뜸을 들이다가 사실대로 털어놨다.


"부동산 투자하면서 마이너스 통장도 있어요..."


그렇다.


나는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맹비난하는, 혼수 대신 마이너스 통장을 들고 온 여자였다. 남자친구는 나를 만나는동안 부동산 투자를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영끌의 영영끌을 한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남자친구는 잠시 말이 없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집 두 채에 갭투자했는데 부족한 자금은 마통을 이용한거죠?"
"네"
"수중에 현금은요?"
"없어요. 월급 받는 족족 마통 이자 내고 있거든요..."


남자친구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알겠어요. 흠...그럼 계획을 잘 세워봐야겠네요"


쉽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가진 건 현금화가 안되는 집문서와 마통 빚뿐이었다. 남자친구를 만나는 동안, 투자한 아파트는 2억이 올랐다가 제자리로 돌아온 상태였다. 떵떵거리며 나의 투자 성과를 말 할 수 없는게 억울하고 속상했다.



계획은 완벽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생각했던 “부동산 다주택자 → 황금알 낳는 거위 → 여유로운 삶” 공식은 현실과 달랐다. 예단, 예물, 신혼여행, 이사비용 등 결혼 준비에는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내 통장에는 유동성 자금이 없었다.


남자친구 또한 모든 자산을 아파트 전세자금에 넣은 상태였다. 현금이 없으니 모든 게 답답했다.


"지방에 있는 집, 팔 생각은 없어요?"

고개를 저었다.

"오빠, 지금 팔면 손해에요. 아직 만기도 안돌아왔고...그때쯤에는 시장이 좋아질 거에요. 조금만 기다려봐요"


* 다행히 몇 달 뒤, 회사에서 받은 성과급으로 어찌저찌 결혼식 비용을 마련했다. 남자친구가 살고 있는 서울 18평짜리 소형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하게 되었다. 자취할 때 쓰던 그릇과 작은 가구들로 집을 채웠다. 혼수라고 할 만한 거는 임직원 특가로 저렴하게 구입한 침대 하나 뿐이었다.

최소한의 가구만 구입했다.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타이밍도 참 좋지...


결혼 준비를 하면서 수도권에 투자한 아파트가 역전세를 맞았다. 나가는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려면 현금 3천만 원이 더 필요했다.


"저 대출 받아서 보증금 돌려줘야 할 것 같아요."

"잘 모르긴 하는데..다주택자인데 대출이 잘 나오나요?"


나는 다주택자였고, 당시 정부 정책상 다주택자는 대출이 거의 끊긴 상황이었다. 이건 강의에서 배운 적 없는 현실이었다. 결국 태어나서 한 번도 대출을 받아본 적 없는 남편이 나 때문에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벽에 머리를 박고 싶었다. 이렇게 힘들게 버티면서까지 집을 여러 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이쯤에서 남편이 도망가면 어떡하지 걱정도 되었다ㅎㅎ)


1년에 한 채씩 사면 부자가 될 거라는 것을 철썩같이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급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사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취업, 결혼, 출산, 은퇴 등... 내 생애주기에 맞는 투자가 필요했다.



결론은 똘똘한 한 채가 답이었다.


그때는 옳다고 생각했던 투자방식이 시간이 지나니 다르게 보였다. 많이 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당연한 걸 뒤늦게 깨달은 부린이었다.



"이제 집 더 안 살 거죠?"

무사히 결혼 후, 남편이 나에게 말한 적이 있다.


"...아뇨, 살 거에요. 근데 이제는 좀 제대로 된 거 하나만요."

"그래, 그거면 됐어요."

남편은 만족한 듯 옅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부터는 신중하게 투자하자."





많이 사는 것보다, 한 채를 제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잘못된 타이밍에 집을 여러 채 사면, 남는 건 빚과 스트레스뿐이다.

부동산 투자, 숫자가 아니라 삶의 단계에 맞춰 하는 것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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