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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kim Mar 30. 2020

스무 번째 산맥

21. 내 이름은 꾸꾸, 공주님이죠



강아지 키울래



그러니까, 우리는 집을 나오게 되었다. 일주일 만에 뚝딱 말이다. 제나 역시 독립을 흡족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제나는 독립 후 본인의 욕망 실현을 위해 매일매일 나에게 입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강아지와 함께하는 행복한 삶.


처음에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반대부터했더랬다. 이유라고 하자면 렌트한 아파트 바닥은 마루도 타일도 아닌 카펫이었고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려면 돈도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아지로 인하여 내가 행복해질 것은 확실하나, 부족한 내가 그, 혹은 그녀의 평생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본인이 다 커버하겠다며 구구절절 먹먹문을 써내려가는 제나에게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만다. 제나에게 일렀다. 데려올 아이가 크던 작던 아무 상관이 없다. 네가 원하는 아이로 해도 괜찮다. 그러나 반드시 파양 혹은 유기된 아이일 것. 강아지를 데려오는 비용에 있어 한주의 집세를 넘지 않을 것. 내가 내다건 두 가지 조건은 이러했다.


호주란 나라에는 유기묘는 많이도 유기견을 보기가 쉽지 않다. 이유는 별거 없다. 강아지에게는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 강아지를 샵에서 분양받는 데에 있어서 보통은 기본 이천 불(180만 원)부터 시작해 많게는 몇만 불(몇 천만 원 단위)까지 넘어간다. 종자가 희귀하거나, 혈통이 좋을수록 비싸진다.


그렇다 해도 버려지는 개는 있기 마련이다. 어릴 적 귀엽다고 데려와서는 조금 크니까 변을 많이 본다고 버리거나,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묻지도 않고서 덜컥 데리고 오고서는 무책임하게 맡아줄 사람을 찾아대는 등. 강아지를 가족이 아닌, 가축으로 보는 인간들이 이곳에도 있다는 말씀.


사실 입양을 하더라도 400불 이하의 강아지는 쉬이 찾기 힘든 조건이다. 보통은 책임비와 여태껏 키워준 노력에 대한 보상 등을 이유로 500불 이상은 받으려고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의지의 제나는 고작 $300불(28만 원)의 돈으로 이제 막 3달 된 애기를 파양 한다는 사람을 찾아냈다. 강아지는 여자아이고, 말티즈와 잭 러셀 테리어의 믹스로 처음 사진으로 봤을 땐, 사실 귀여워 죽겠다던지 얘와 나는 운명이다 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지금에 와서 그 사진을 보면 귀여워 미칠 것 같지만 말이다.)





짜릿했던 그녀와의 첫 만남



제나의 퇴근 시간에 맞춰 거진 30분을 차로 달려 도착한 곳은 유럽 여자들 몇몇이서 쉐어 하는 주택이었다. 아기 강아지는 그 더운 여름날 뒷마당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말을 들어보니 쉐어생 중 하나가 어디서 강아지를 사 왔는데, 하우스 메이트가 무서워한다나 뭐라나. 그래서 한 달도 못 키우고서 파양 하기로 했다고.


처음 제나가 사진을 보여줬을 땐, 그래 일단은 그냥 한번 보기나 해보자. 싶었다.


그런 내가 솜털처럼 가볍고, 가느다란 뼈에, 따끈 말랑한, 어쩐지 풀 냄새가 나는 그 보드라운 생명체를 품에 안아 들었고 내 입술에 촉촉한 강아지의 코가 닿는 순간 나는 K.O. 되어버렸다.


나는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는 애기 옆에서 밤을 지새웠다. 애기는 사료를 잔뜩 먹고서는 배를 까고 잠이 들었다. 그 옆에 누워 이름을 뭐로 할까 내내 고민했고 밤비, 망고, 버터 등 귀엽고 깜찍한 후보들을 재치고 이 아이는 너클이 된다. (너클의 뜻이 궁금하다면 검색해보시길.)

참고로 말하자면 그녀의 한국 이름은 꾸꾸되시겠다.


아무튼 작디작은 우리 꾸꾸는 매주 퍼피 스쿨에 나갔고 열심히 공부하여 반 아이들 중 가장 작은 몸으로 학사모를 쓰는 등 엄마 심장을 달구는 감동 실화를 일구어낸다.




꾸꾸 사랑해


1킬로가 갓 넘는 인상 더러워 보이는 아기 강아지는 현재 5.8킬로의 장성한 청년이 되어 성공적인 이갈이와 개춘기까지 무사히 넘겼고, 지금은 공하나를 물고서는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닌다. 때때로 나는 빠르게 뛰는 너클의 심장에 얼굴을 파묻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앞으로 십몇년을 함께하게 될 텐데 내가 돈이 없어 길바닥에 나앉게 되더라도, 둘 다 손가락만 빨며 살지라도 절대 절대로, 헤어지지 말자고. 서로가 서로를 끝까지 책임지자고.


어찌 보면 정말 이기적인 결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도 난 이 생각에 변함이 없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공주 꾸꾸, 엄마가 목숨보다 더 사랑해.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 꼭 같이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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